오마이뉴스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법조 출입 기자단에서 1년 동안 출입정지를 시키는 중징계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가 경찰청 출입기자단 투표 결과 출입 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삼성과 관련된 기사 때문이다.

경찰청은 지난 2일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와 관련한 수사 결과를 8일 발표한다고 출입기자단에 공지했다. 이건희 회장의 자택공사사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었던 경찰이 자금흐름을 쫓다 차명계좌를 발견했는데 이건희 회장의 기소 내용을 포함한 수사 결과를 최종 발표한다는 통지 내용이었다.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건은 국세청 조사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규모보다 더 크다는 점, 정치권에서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 등이 부각돼 관심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경찰 최종 수사 결과 이건희 회장의 기소 처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사법 처리 직전 단계로 수사 당국의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관련돼 있는 인물로 삼성 출신인 황창규 KT 회장 등 삼성 고위급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단독 보도를 통해 차명계좌 불법성을 드러내는데 취재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에 한겨레는 8일 경찰 수사 발표하기 전 조간 신문에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새로운 ‘수천억 차명계좌’ 이건희 기소의견 송치될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 회장이 2008년 삼성 특검 이후로도 200여개에 이르는 차명계좌를 유지하면서 최소 10억원 이상의 조세를 포탈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경찰은 200여개 차명계좌 가운데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일부 차명계좌를 근거로 이 회장에게 조세포탈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보도는 전체 차명재산 규모는 정확히 추산하진 못했지만 이 회장이 상속‧증여세 등을 회피하기 위해 삼성 특검 뒤로 차명계좌를 유지한 것으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것이라고 최초 밝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한겨레 보도 내용은 경찰 수사 결과 발표와 무관하게 자체 취재를 통한 것이었지만 상당 부분 맞아 떨어졌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새로 발견된 삼성그룹 차명계좌 규모가 4천억대로 파악됐고, 삼성그룹 임원들 명의로 다수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세금을 탈루한 사실이 확인돼 이건희 회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수사 결과 발표 내용에는 차명계좌가 72명의 임원 명의로 돼 있고 260개에 이른다는 점, 세금 탈루액이 82억원에 상당한다는 점 등 한겨레 보도 내용보다 정확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경찰청 출입 기자단은 경찰이 8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미리 공지했는데 한겨레가 ‘엠바고’(보도유예)를 깨고 관련 내용을 보도해버렸다면서 지난 12일 출입기자단 투표를 통해 3개월 출입정지를 시키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한겨레는 반발하고 있다. 우선 해당 내용이 ‘엠바고’에 해당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부처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엠바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자단에 요청하고 이에 동의하면 엠바고라는 신사협정이 성립된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수사 결과 발표는 통지만 있었을 뿐 엠바고 설정에 대한 동의 절차는 없었다는 게 한겨레의 주장이다.

수사 당국이 기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 공개 시점을 정하면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하면 엠바고가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건은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와 별개로 예측가능한 수준이었고, 경쟁적인 취재로 중요 내용도 드러나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발표와 별개로 자체 취재한 결과물은 엠바고와 무관하다는 게 한겨레의 주장이다.

한겨레는 또한 KBS 추적 60분팀과 공조해 한달 넘는 시간 동안 제보자와 논의해 보도 시점을 조율했고, 경찰 수사 착수 시점 및 압수수색 일정까지 고려해 보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로 봤을 때 이재용 부회장의 판결문을 공개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와 관련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될 것이라는 기사를 경찰 수사 발표 전 못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충분한 취재를 통해 경찰 수사 발표일이라는 엠바고와 무관하게 보도를 한 것뿐인데 출입기자단이 엠바고를 들어 공정한 취재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 당국이 수사 결과 발표날을 특정일로 잡고 통지하면 관행적으로 엠바고가 성립돼 오히려 취재를 막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기자는 징계 논의에 앞서 “한겨레는 오래 전부터 차명계좌 수사 정보를 제보자와 고발자, 참고인 등을 통해 취재해왔고, 이번에도 그들로부터 정보를 들어 보도한 것일뿐, 경찰을 상대로 취재한 게 전혀 없고 엠바고 보도자료를 사전에 입수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소명했다. 또한 “이번 기회에 엠바고와 관련한 룰을 재정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특정 언론사를 징계하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청 출입 기자단은 엠바고 파기가 맞고 징계 결정 역시 소명절차를 밟고 투표를 거친 정당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김한준 MBN 기자는 “모든 정부 부처 출입처도 그렇지만 주간 보도 계획으로 보도 시점이 특정 날짜로 정해지면 사실상 그 사안에 대해 취재가 돼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점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이상 암묵적 엠바고로 설정된다”며 “당시 전혀 이의제기를 하지 않다가 당일 발표날 오전 10시 이전에 조간으로 써버린 것이다. 기자단끼리의 약속을 깬 것이고 총회에서도 명백한 파기 사안이라고 보고 중징계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기자는 “예를 들어 세제 개편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하면 완벽한 팩트로 보도할 수 없고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쓰지 않고 발표 내용을 쓰는 경우가 있다”며 “이건희 회장 기소 의견 송치 사실도 알면서 쓰지 않은 매체도 있었다. 오히려 혼잡을 막고자 엠바고를 설정한 것이고 그 시점에 이의가 없으면 넘어가는 게 관례다. 문제제기를 하고 억울할 순 있겠지만 이의제기를 하지 않다가 당일 엠바고를 파기한 그쪽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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