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이명행씨와 연출가 이윤택씨의 성폭력 사건 폭로 이후에도 연극계 성폭력 피해자들이 ‘#MeToo’(미투) 해시태그 연대 글을 온라인상에 연이어 게재하고 있다. 특히 ‘연극계 거장’이라 불린 이윤택씨의 성추행 가해 정황이 추가 폭로되면서 연극계 미투운동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6일 새벽 연출가 A씨는 자신의 SNS 계정에 “1999년 막내 단원일 때의 일”이라며 연출가 이윤택씨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글에 따르면 이씨는 밤마다 연차가 낮은 단원들의 안마를 받았고, 바지를 벗고 속옷차림으로 안마를 받으면서 생식기 주변이 혈이 모이는 자리라고 집중 안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안마를 시키는 선배 단원이 정해져 있었고 막내기수 여자들이 조를 나누어 연출의 안마를 담당했다. A씨는 “내가 안마를 해야하는 날은 밤이 되는게 너무 무서웠다”고 적었다.

이듬해 극단을 나온 A씨는 “10년전에도, 국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실망스럽고 후회스럽다”면서 “나의 이 고백이 이제라도 이러한 일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는다”며 ‘#미투’ 태그를 달았다.

과거 이윤택 연출과 같은 극단에 있었던 B씨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씨의 안마 요구 사실을 폭로했다. B씨는 극단에 있는 동안 이씨에게 해 준 안마 횟수가 50회 가량 될 것이라고 기억했다.

▲ 김수희 대표의 '#MeToo' 동참글. 사진=김수희 대표 페이스북
▲ 김수희 대표의 '#MeToo' 동참글. 사진=김수희 대표 페이스북

이윤택씨의 성추행 사실은 지난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폭로 글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김 대표 또한 ‘오구’ 지방 공연 때 이씨가 당시 숙소였던 여관방에 자신을 불러 안마를 시켰고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지시했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이 사건이 폭로된 직후 연희단거리패·밀양연극촌·30스튜디오 등의 예술감독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배우 C씨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미투’ 연대글에도 이윤택 연출의 성추행 가해 사실이 다수 적혀 있다. C씨는 “(공연 리허설 중) 계속 나의 발성에 대해 지적을 하며 소리를 잘 내려면 이곳으로부터 소리가 터져나와야 한다며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가슴을 만지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것을 알려주는냥 포장했다”면서 “여배우의 몸에 남자연출이, 그것도 공연 전에 어디 의상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는 말인가“라고 썼다.

C씨는 이어 과거 이윤택씨가 1:1 개인지도를 했을 당시 “연습을 빌미로, 나를 특별히 아껴 연습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뒤에서 껴안고,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발성을 하는 위치라며 짚어주던 더러운 친절함”이라며 “그래놓고 자기가 이렇게 가르쳐 줬다는걸 고인이 되신 선생님이나 극단 대표에게 말하지 말라는 건 무엇 때문이신지?”라고 적었다.

연극계 전반의 성희롱·성추행 사례도 후속 미투글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한 여성 배우 D씨는 “‘야, 쟤 티셔츠 글자는 다른 애들과 달리 유난히 커진다’며 내 가슴을 보며 사람들에게 웃으며 얘기하던 뮤지컬 제작자”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에서 오늘은 진짜 성기가 섰다며 흡족해하던 남자배우” “아내와 아이 둘이 연습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술먹고 집에 가는 날 쫓아와서 강제로 키스하려던 남자 연극배우” 등 사례를 열거하면서 “내 어린 여후배들, 내 어린 여제자들. 돈 못 버는거 알면서도 열정과 꿈 하나도 덤벼드는 여린 영혼들, 니들 별 거 아닌 지위로 건들지 마라”고 밝혔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남긴 D씨는 “당신의 고백을 응원한다”며 “Me too”를 남겼다.

▲ 페미니즘 연극을 기획하는 창작집단 ‘페미씨어터’의 미투운동 연대글. 사진=페미씨어터 페이스북
▲ 페미니즘 연극을 기획하는 창작집단 ‘페미씨어터’의 미투운동 연대글. 사진=페미씨어터 페이스북

미투운동에 참여하는 연극계 선배들의 글에서는 ‘가해자가 돼 미안하다’는 언급이 눈에 띈다. 이윤택 연출의 안마 요구 폭로에 동참한 극단 대표 E씨는 ”난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며 ”(선배가 된 후) 내가 밤에 대본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때 누군가는 나처럼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E씨는 ”먼저 용기낸 선배님 후배님 감사하다“며 ”그리고 어디선가 아직도 상처를 안고 살고 있을 동료들에게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응원의 글도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 연극을 기획하는 창작집단 ‘페미씨어터’는 16일 페이스북 계정에 설 인사를 남기며 “현재 연극계에는 설 보다 의미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서 “발언해준 동료들이 끝까지 안전하도록, 안심하도록 연대해달라. 가해자들이 절대 돌아오지 못하도록 지켜봐달라. 달라진 연극계가 되도록 행동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윤택 연출가가 예술감독으로 있던 연희단거리패는 지난 15일 사과문을 내 “연희단거리패 선배 단원들은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피해자들이 극단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다는 점에서 극단의 선배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번 사태에 대해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자숙의 시간을 갖고 연극인들과 관객분들께 새롭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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