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경인방송(iFM) A기자가 수습기간을 마친 뒤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부당해고라는 판정이 나왔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지난 5일 이 같은 결정을 내려 A기자의 구제신청을 인정했다.  

A기자는 지노위에 임금(추가수당)체불 관련해서도 구제를 신청해 경인방송과 다투고 있다. A기자는 수습기간 당시 평일 하루 최대 18시간을 일하거나 주말에도 일했지만 야근·주말수당 등을 받지 못한 채 세후 월 140만 원 가량을 받았다.

이에 더해 ‘병가기간 중 해고가 이뤄진 것’과 ‘성범죄가 발생했는데 피해자를 해고한 것’ 등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는 모두 관련법 위반 소지가 있다.

▲ 경인방송
▲ 경인방송

A기자는 지난해 3월 경인방송에 입사해 6개월간 수습기자 생활을 했다. 지난해 8월3~4일 세 차례에 걸친 회식자리에서 선배기자인 B기자가 A기자에게 성추행·성희롱 등을 했고, A기자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A기자는 당시 한 선배로부터 ‘언론의 취재를 막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시는 정규직 전환 심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경인방송은 A기자를 8월31일자로 ‘해고(계약종료)’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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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방송은 A기자를 정규직 전환을 예상할 수 있는 수습기자가 아닌 6개월짜리 ‘인턴’이라고 주장했고, 성추행 문제제기와 ‘계약 종료’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노위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인방송은 A기자를 평가한 결과 자질이 부족해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인방송에서 A기자에 대해 평가한 기록’을 살펴보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기 전 A기자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었지만 사건 이후에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한 걸 확인할 수 있다.

A기자의 수습기간 전반부(2017년 3월1일~6월1일)에 대한 평가는 7월21일(성추행 사건 이전) 이루어졌다.

한 간부는 A기자에 대해 “수습기자에게 필요한 근면·성실과 깡을 지니고 있다. 매일 오전 6시까지 경찰 지구대 마와리(출입처 방문을 가리키는 은어)를 돌고 저녁 11시30분까지 다시 지구대를 돌며 사건을 쫓아 종횡무진 경인방송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단점으로는 “체력저하로 인해 건강을 해칠까 염려된다”고 적었다. 또 다른 간부도 “취재 아이템 발굴과 제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취재원 관리가 원만하다”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단점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사 작성 관련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도였다.

평가방식 바꾸고 부정적으로 평가해 해고

하지만 성추행 문제제기 이후인 8월 말 이루어진 수습 하반부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였다. 경인방송은 앞서 서술형으로만 평가하던 평가양식을 바꿔 하반부 평가에서는 성실성 20점, 보도·기획 30점 등 계량평가를 추가했다. “평가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게 A기자의 지적이다.

A기자를 ‘근면·성실하다’고 평가했던 간부는 “취재 보고가 맥락없음(5점 만점 중 3점), 구성원 상호간의 친화력이 현격히 떨어짐. 신뢰 부족(5점 만점 중 1점), 아이템의 창의성 미흡(5점 만점 중 2.7점)” 등으로 평가했다. A기자에 대해 ‘취재원 관리가 원만하다’고 평가했던 또 다른 간부는 “취재원 보호에 대한 가치 인식이 낮다, 쓸데없는 불편함을 야기하는 면이 없지 않다” 등의 평가를 내렸다.

A기자는 경인방송이 A기자에 대한 ‘해고(계약종료)’를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부정적인 평가를 냈다고 지적했다. 한 달 만에 수습기자에 대한 평가가 돌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적어도 평가자들이 성추행 이후 피해자의 심리적 고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A기자는 “정말 6개월만 근무할 사람이라면 왜 두 차례씩 여러 명이 나에 대해 평가를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5일 경인방송이 A기자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했다. 사진=pixabay
▲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5일 경인방송이 A기자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했다. 사진=pixabay

노무법인 노동119 소속 지석만 공인노무사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노위 결과에 대해 “회사에서 인턴이라고 주장했는데, 지노위는 A기자를 수습기자로 봤다”며 “회사가 합리·객관적인 평가 없이 해고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노위는 성범죄 문제제기도 해고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지노위는 A기자가 수습기간 동안 받지 못한 추가수당에 대해 검토 중이다. 지 노무사는 “기자직군이라도 ‘소정근로시간’을 넘을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줘야 한다”며 수당 청구 사유를 밝혔다.

병가기간 중, 성범죄 피해자 해고는 관련법 위반

A기자는 지난 8일 고용노동부 경기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경인방송이 A기자에 대해 병가 기간 중이었는데 해고를 한 것과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던 중 해고를 한 것 등 두 가지가 법 위반이라는 내용이다. A기자는 지난해 8월26일 3~4주의 병가를 요청했지만 경인방송 측은 “처리하겠다”고 밝힌 뒤 “내부 일정 때문에 8월31일 (정규직 전환)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A기자는 8월31일자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근로기준법’ 제23조 2항(해고 등의 제한)에 따르면 회사는 노동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산전(産前)·산후(産後) 등의 이유로 휴가를 간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할 수 없다. 같은 법 제107조에 따르면 이를 위반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 2항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해고 등을 할 수 없다. 같은 법 제37조 2항에 따르면 회사가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

A기자가 사건 직후인 지난해 8월 초 가해자로 B기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는 현재 수원지검에 배당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고소 직후 A기자의 행실 등을 문제 삼는 찌라시가 유포됐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였고, 해당 찌라시의 내용은 허위였다. A기자는 이에 대해서도 수사를 요청했는데 찌라시 최초 작성자가 A기자와 함께 경찰서를 출입하던 경인지역 한 신문사 기자로 밝혀졌다. 해당 찌라시 유포자는 작성자의 선배기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작성자와 유포자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A기자는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 경인지역 민영 라디오방송인 경인방송
▲ 경인지역 민영 라디오방송인 경인방송

A기자는 회사의 태도와 찌라시 작성·유포자로 인해 성범죄 이후에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회사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변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쉬쉬하기만 하는 분위기”라며 “계속 싸우면 나도 고통스럽고 다툴수록 서로 상처가 나지만 사과를 하지 않으니 문제제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인방송은 지노위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경인방송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직 (지노위로부터) 정식 통보를 받은 게 아니라 공식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노위 결정(2월5일)으로부터 30일 내로 판정서가 도달하게 된다. 판정서가 도달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불복신청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경인방송은 3월 중순까지 지노위의 결정을 따를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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