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씨(가명)는 공장에서 24시간 넘게 일하고 녹초로 귀가하는 남편을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봐왔다. 김씨는 그때마다 ‘왜 일을 그 정도로 많이 하느냐’고 화를 냈다. 김씨가 꺼낸 2016년 10월 월급명세서엔 남편 최완순씨(55·사망)가 8일 오전 8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해 다음날 오후 12시30분에 마친 증거가 남아 있다. 총 노동시간만 28시간에 야간근로 8시간이 포함돼있다.

김씨는 ‘당신이 회사 일을 다 하느냐’며 종종 핀잔도 줬다. 최씨가 일상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씨는 사망 직전 12주 동안 한 주에 평균 60시간 3분을 근무했다. 하루 평균 11시간을 넘게 일했다. 사망 2주 전엔 70시간 6분을, 5주 전엔 78시간30분을 일했다. 이마저도 최소값이다. 회사가 제출한 자료엔 모든 출퇴근 시간이 동일하게 찍혀있었다.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모두 과로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씨 사망 10개월 후, 어렵게 입을 연 직장동료 두 명이 김씨에게 말했다. 김씨가 남편의 과로사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였다.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동료 A씨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이 생각하지만 회사 눈치보느라 선뜻 말을 못한다. 다들 가장이 아니냐’고 말했다.

▲ 사진=2017년11월19일 JTBC 뉴스룸 캡쳐
▲ 사진=2017년 11월19일 JTBC 뉴스룸 캡쳐

충북 충주에 위치한 전선제조업체 대신전선에서 근무했던 최완순씨는 2017년 1월19일 새벽 4시경 야간노동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했다. 사인은 미상이다. 안전교육을 받은 적 없는 동료들은 초동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실신한 지 10여 분 후에야 황급히 한 직원이 뛰어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당시 최씨는 차가운 철판 위에 방치돼 있었고 작업반장은 바로 옆에서 전선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기계를 멈추면 제품에 불량이 생겨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119 구급차도 5분 가량 공장 정문 앞에 서있었다. 내부 사고가 사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구급대원에게 공장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직도 남편이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 왜 당일 사망까지 이르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김씨는 “남편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온 것 하나는 안다”고 말했다. 김씨가 가지고 있는 월급명세서 십수 장엔 주말에 연속 30시간 가량 일한 기록이 한 달에 한 번씩 찍혀있었다. 주·야 2교대로 일한 최씨는 야간조일 땐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 최소 13시간30분씩 일했다.

피해자에겐 전쟁과 같은 산재 신청… 근로계약서도 못 구해

근로복지공단은 두 차례 김씨의 산재 신청을 기각했다. 업무상 과로를 인정할 수 없고 장폐색증 등 지병 원인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발병 전 24시간 이내, 1주일 이내, 3개월 이내의 근로시간 및 강도를 살펴봤을 때 객관적 과로 시간 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 2016년 10월3일 최완순씨는 총 19시간30분(기본 8시간 + 잔업 11.5시간)을 일했다. 10월8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10시간30분을 일한 뒤 17시간30분(9일 잔업시간 분)을 더 일했다. 28시간 동안 철야노동을 한 것이다.
▲ 2016년 10월3일 최완순씨는 총 19시간30분(기본 8시간 + 잔업 11.5시간)을 일했다. 10월8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10시간30분을 일한 뒤 17시간30분(9일 잔업시간 분)을 더 일했다. 28시간 동안 철야노동을 한 것이다.

김씨가 제출한 증거는 대부분 기각됐다. 모두 김씨가 “전쟁과 같은”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남편이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알아보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회사가 가진 자료나 직원들에게 접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산재 신청을 대리한 노무사는 동료 직원을 만나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사건을 진행했고 기각 직후 ‘손을 떼겠다’며 떠났다.

그러던 중 김씨는 우연히 지역방송 채널에서 ‘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들을 봤다. 김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114에 전화해 센터 번호를 알아냈다. “전화를 받았는데 엉엉 우시기만 했다. ‘과로해서 죽었는데 산재 인정이 안됐다’고 말하시더라. 무조건 오시라고,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은 김씨를 만난 후 두어 달 가량 ‘증거 수집’에 나섰다.

이전엔 알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들이 그제서야 확보됐다. 사망한 지 9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최완순은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동료를 최초로 만났다. 박 실장은 회사 직원들에게 수십 차례 전화·문자를 돌렸다. 번호가 바뀐 동료, 아예 수신을 차단한 동료, 묵묵부답인 동료가 대부분이었다. “한 명 정도는 꼭 송곳같은 사람이 있다는데, 정말 그랬다.” 용기를 낸 동료 A·B씨와 연락이 됐다.

두 사람은 실제 노동시간, 노동환경, 노동강도, 최씨의 평소 근태 등을 직접 확인해줬다. 근로복지공단이 받아들인 회사 측 주장과 큰 차이가 있었다. 공단은 ‘근무 중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일상적 과로에 시달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식사시간은 1시간이지만 기계를 감시해야 하기에 실제로는 20~30분에 불과하다” “최씨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퇴근하지 않고 연달아 24시간 철야 근무를 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스트레스가 과다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A씨는 “트레바샤, 권취기가 잘 작동해서 전선이 잘 감기는지, 압출기에서 피복이 고르게 입혀지고 있는지, 불량은 없는지 등 기계를 계속 확인하고 필요한 대처를 해야 하므로 장시간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정신적·신체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또한 “책임감이 강했다고 회사 사업 차질을 우려해 연장근로를 마다 않는 등 열성이 대단했다”고 덧붙였다.

근로복지공단은 ‘기계 한 대만 담당했다’는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회사가 내세운 직원의 증언이다. A·B씨는 “최씨는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회사 지시로 기계 두 대를 돌려야 했다. 보통 직원보다 두 배로 신경을 많이 써 업무량이 두 배였을 것”이라 밝혔다.

회사는 최씨의 △근로계약서 △1여 년 간의 급여명세서 △1여 년 간의 출퇴근기록부 등을 달라는 유족 측 요구도 거절했다. 유족은 당사자에게 사본으로 지급할 의무가 있는 근로계약서조차 구하지 못했다. 유족은 박 실장의 도움으로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기록을 받았다.

왜 갑자기 지병이 심화됐을까” 판단은 없어

최씨는 사고 당일 업무강도가 극심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최씨는 고장난 트레바샤(전선이 일정한 굵기로 감기도록 하는 기계) 작업을 수습하고 있었다. 당시 작업한 전선은 1m당 3~4kg 정도 무게가 나갔다. 전선이 나오는 속도는 분당 10m로 혼자서 감당하지 못해 5~6명이 도와주고 있었다. 인근에 있었던 동료 B씨는 “50여 분 동안 수작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증언했다. 

▲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가 2017년9월12일 오전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근로기준법 59조 폐기와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를 위한 공동 투쟁에 나설것을 예고했다ⓒ민중의소리
▲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가 2017년9월12일 오전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근로기준법 59조 폐기와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를 위한 공동 투쟁에 나설것을 예고했다ⓒ민중의소리

A씨는 “계속된 수작업이 힘에 부쳤는지 최씨는 수습을 하다가 주저앉았고 곧이어 뒤로 누웠다”며 “동료들이 가만히 보니 숨을 안 쉬는 것으로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고 증언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전선을 수습하는데 통상 5~10분이 걸리고, 기계 고장 상황은 1~2개월마다 1회 정도 발생한다’는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씨는 ‘회사 측이 거짓 주장을 하는게 아니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씨는 회사 직원들이 ‘최씨가 배를 움켜 쥐고 쓰러졌다’ ‘평소 장이 안좋아 조퇴도 여러번 했고 밥도 잘 먹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회사 측은 망인이 ‘커피를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다’는 진술도 내놨다.

A씨는 “내가 들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망인은 배 부위를 잡고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또한 “병원 치료를 위해 조퇴한 것은 같이 일했던 2년 가까운 기간에 한두 번 봤다”며 “일하다 쓰러졌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다. 평소 밥 먹는 것도 지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B씨 또한 “커피 얘기는 거짓”이라며 “작업장에는 커피가 비치돼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일이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종종 위장병을 호소했다. 최씨의 의무기록엔 ‘상세불명의 위장출혈’, ‘상세불명의 장폐색증’이 적혀 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근거가 됐다. 산재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대전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과거 병력인 장폐색의 합병증으로 인한 장기 부전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냈다.

그렇다면 최씨의 오랜 위장병이 왜 갑자기 심화됐으며 심지어 사망으로까지 이어졌을까. 질판위 결정서에는 이에 대한 판단이 빠져있다. 동료직원 A씨는 “질판위의 판정에 동의할 수 없다. 질병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서 “당시 급격하게 체력을 소진했고 전부터 지속적으로 과로한 것을 고려하면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 산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산재 처리하면 회사가 불리하니 그건 말아주십시오’라며 사과했으면 산재 신청은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회사는 전화 한 통을 하지 않았다”며 “남편이 책임감을 바쳐서 일한 회사다. 산재 인정을 받을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불승인이 최종 확정되면 남는 선택지는 행정소송이다. 김씨는 남편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변호사 선임을 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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