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멀지만 공영방송 정상화의 가닥은 잡혀간다. MBC는 내부의 체제를 정비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중이고 KBS도 곧 새 사장체제가 들어설 전망이다. 편파적인 방송에 앞장서며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장악당한 10년의 상처를 씻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은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다. 공영방송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정비를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체로 이사회의 구성과 사장의 선출 그리고 내부의 편집·편성권 독립이 주요 논의 내용이다.

‘지배구조 개선’과 ‘독립성’은 필수,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공론장 작동의 필수요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요건은 아니다. 그 사이 미디어의 환경이 혁명적으로 변화했다. 뉴스와 정보의 생산과 유통 통로도 크게 달라졌다. 온갖 막말과 수준 낮은 잡담의 프로그램을 쏟아내는 종편이 여론마당을 어지럽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젊은이들은 텔레비전을 떠나 모바일로 옮겨가고 공영언론의 위상과 역할도 예전 같지 않다. 미디어 콘텐츠 생산 양태와 참여자들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새로운 플랫폼들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체제와 발상의 전환 없이는 숨 가쁜 변화를 따라잡기 버겁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공영방송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맴도는 현재의 담론지형이 매우 갑갑하다. 철학과 가치 그리고 미디어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 방송의 미래 발전을 논의한다는 회의체도 알맹이는 여전히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독립성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광장에서의 민주주의 요구를 어떻게 수렴하고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공론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공영방송만 장악 전의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새로운 정부는 촛불의 정신을 구현하라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민주주의와 국민참여의 가치를 가장 잘 담아내면서 실질적으로 우리사회에 반영되도록 하는 매개체가 바로 미디어다. 시장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시대정신을 벼리고 재창조하는 미디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인 방향과 제도는 다양한 의견과 관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담론이 필요하다.

‘방송개혁위원회’ 이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디어 체계’ 만들어야

현재의 방송 뼈대는 ‘방송개혁위원회’가 밑그림을 그린 체제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라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되고 신문사들이 종합편성채널을 출범시키는 등 변화가 이어졌지만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방송개혁위원회’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아우르면서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한국 방송의 기본 틀을 만들려는 시민참여기구였다. 국회·정부·시민단체·방송계가 참여한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이었다. 방송의 철학과 이념을 제시하면서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방송이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시키고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기본 이념은 우리사회의 합의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와 방향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거리들이 쌓여있다. 정책 및 규제 기구의 위상, 공영방송 체계의 획정, 시장의 진입과 규율, 수신료와 광고 제도를 포함한 재원 조달과 배분, 공정한 경쟁의 법칙 등 종합적으로 미디어 체계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사안들마다 이해관계들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해법을 찾기는 만만치 않다. 그동안 숱한 사회적 논란만 되풀이하다가 관심이 식으면 슬그머니 뒤로 밀려 방치되곤 했다. 땜질식 처방으로는 도무지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없다. 각 사안들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체계라는 큰 망으로 연결되어있기에 더욱 그렇다. 미디어 영역에서 기술의 진화와 이용행태의 변화는 전파만큼 빠르다. 20년 전의 체제로 현 미디어 시장의 미래를 이끌기에는 어림없다.

미디어 체계를 혁신하고 시장의 변화에 맞추어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민주주의의 터전을 만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누덕누덕 기우거나 덧붙인 옷으로는 완전히 달라진 몸집에 맞출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 미디어계 그리고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미래 방송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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