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습니까.” 기자 질문에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64)은 침묵을 지킨 채 법정을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425호에서 열린 선고기일에서 징역형(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7만원)을 선고받은 직후였다. 현재 송 전 주필에 대한 변호는 법무법인 ‘바른’이 맡고 있다.

송 전 주필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60·구속기소)의 영업 활동을 돕고 기사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현금, 수표, 상품권, 골프 접대 등 총 4947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불구속 재판에 넘겨졌다. 

▲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오후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사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오후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사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검찰은 지난달 15일 “기자들이 준칙과 윤리강령을 정립해 쌓아온 신뢰가 이 범행으로 무너졌다”며 송 전 주필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1억648만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 주장 가운데 일부만 받아들인 것이다. 송 전 주필은 선고 직후 기자에게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전 주필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배임증재)로 기소된 박 전 대표는 징역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표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68)의 연임 로비에 개입하고 수십억 원대 일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뒤 1심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났으나 지난달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날 수의를 입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표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정장 차림의 송 전 주필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김태업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송희영 비리 사건’을 “조선일보 나아가 우리 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를 상실시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송희영 피고인은 국내 유력 일간지 언론인으로서 취재·보도·평론 등에 있어 객관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홍보업체 대표 박수환 피고인과 오랜 기간 스폰서 관계로 유착했다”며 “그로부터 청탁을 받고 골프 접대 등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 기자로서 의무를 저버렸으며 편집인으로서의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으로 조선일보의 공정성과 객관성, 나아가 우리 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를 상실케 했다”고 지적했다.

▲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오후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사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오후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사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송 전 주필은 이 밖에도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에 우호적인 칼럼 및 사설을 게재하고 이를 대가로 2011년 9월1일부터 9월9일까지 3900만원 상당의 경비가 소요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혐의,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63)으로부터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현금 및 상품권 1200만원과 골프 등 접대 500만원 등을 제공받은 혐의도 받았으나 재판부는 이 부분 금품 수수에 대해선 “회사와 본인에 대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달라는 기대 이상으로 부정한 청탁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송 전 주필이 2015년 2월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59·구속기소)을 조선일보로 불러 고 전 사장 연임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처조카를 대우조선에 취업시킨 혐의(변호사법 위반)는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송희영 피고인은 안종범을 자신의 사무실(조선일보 사무실)로 불러내 고재호 연임을 청탁했고 그 대가로 송희영은 고재호에게 (처조카 임아무개씨의) 취업을 청탁했다. 고재호는 자신의 아들이 불합격하는 상황 속에서도 임씨를 채용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 채용 기준에 비춰보면 임씨는 부적격자였다. 

재판부는 “송희영 피고인은 개인적 청탁을 위해 자신의 사무실로 안종범을 불러내는 등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고 공기업 인사 업무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손상시켰다”며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고가 나온 뒤 송 전 주필은 “선고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미디어오늘은 만족하겠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자는 법원 주차장으로 향하는 송 전 주필에게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느냐”, “조선일보는 이 사건 이후 윤리규범을 제정하는 등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입장을 밝혀달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으로부터 오늘 들은 이야기는 없었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송 전 주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질문을 외면하던 송 전 주필은 법원 주차장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자신의 차량을 발견한 뒤 탑승하고는 서울중앙지법을 떠났다. 앞서 박근혜 비선실세 최순실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재판에 취재진 관심이 쏠렸던 것과 대조적으로 송 전 주필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송 전 주필을 따라붙었던 한 기자는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오후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사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오후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사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송 전 주필은 김진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에 의해 자신의 비리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2016년 8월 조선일보를 퇴사했다. ‘송희영 비리 사건’은 조선일보 내부도 변화시켰다. 사건 이후 조선일보 평기자들은 노보를 통해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 및 사과 △이를 위한 독립적 조사 기구 구성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감찰과 조사 기능을 갖춘 윤리위원회 구성 등 구체적 방안 마련 △간부 사원에 대한 다면 평가 도입 등을 요구했다.

조선일보 노사는 윤리위를 발족시켰고 윤리위는 지난해 12월 신문 제작 과정에서 신문사와 기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을 담은 ‘조선일보 윤리규범’을 제정했다. 윤리규범은 ‘공정한 보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물·접대를 받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등 직업인으로서 기자가 지켜야 할 윤리 원칙을 명시했다. 또 기자가 받아서는 안 되는 금품·향응 종류에 ‘과도한 할인 혜택’까지 포함시키며 자체 윤리 기준을 끌어 올렸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이어졌던 취재 방식, 취재원과의 만남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조선일보는 이번 기회에 보다 신뢰받는 신문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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