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고 오찬을 나눈 자리에서 문익환 목사를 언급한 것을 두고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접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며 향후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놨다.

접견 직후 열린 오찬에서 김영남 위원장은 문익환 목사를 언급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역사를 더듬어보면 문씨 집안에서 애국자를 많이 배출했다. 문익점이 붓대에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인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 문익환 목사도 같은 문 씨이냐”라고 물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다. 그 동생 분인 문동환 목사를 지난해 뵈었다”고 말했다.

대화 내용을 보면 문씨 집안에 대한 가벼운 덕담으로 볼 수 있지만 통일 운동 역사에서 차지하는 문익환 목사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지난 2월1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 관람을 마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오른쪽),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 지난 2월1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 관람을 마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오른쪽),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익환 목사는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대부로 통한다. 특히 지난 1989년 3월25일 문익환 목사는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문 목사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면담을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 북측은 방북한 문 목사에 대해 사실상 협상 대표자 자격을 부여했다.

면담을 통해 나온 4·2 공동성명은 남과 북이 자주와 평화, 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에 기초해 통일 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성명의 4항에는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을 확인하면서 평화통일의 원칙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국과 언론은 문 목사의 방북을 두고 ‘돌출행동’이라며 비난했고, 결국 문 목사는 옥고를 치뤘다. 진보운동 진영에서도 공안몰이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숱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문 목사 방북을 통해 나온 합의 내용은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의 기초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난관을 뚫고 남북관계 개선을 앞당긴 인물로 김영남 위원장이 문익환 목사를 상징적으로 언급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올해는 문익환 목사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열린 24주기 추도식에서 문 목사를 평화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장영달 통일맞이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전문을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민과 함께 본 영화(1987년 마지막 장면)에서 목사님을 뵈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하루 전에 출감한 목사님이 26명 열사의 이름을 온 몸으로 외쳐 부르고 계셨는데 1987년 6월의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면서 “‘촛불혁명’으로 6월 민주항쟁을 완성한 국민들이 열사들에게 바치는 다짐의 눈물이었다”고 밝혔다.

▲ 지난 1990년 10월 문익환 목사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후 가족과 함께 했을때의 모습. ⓒ 연합뉴스
▲ 지난 1990년 10월 문익환 목사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후 가족과 함께 했을때의 모습. ⓒ 연합뉴스
또한 문 대통령은 “1989년 3월, 김구 선생과 윤동주, 장준하와 전태일의 마음을 안고 도착한 평양에서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라는 말씀으로 평화와 통일, 번영을 향한 이정표를 굳건히 세우셨다”며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이 다시 싹트고 있다, 목사님이 세우신 이정표를 따라 국민의 나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흔들림없이 걷겠다”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도 추도사를 통해 “늦봄 문익환 목사는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한생을 다 바친 저명한 통일애국인사”라며 “정의감 강하고 열렬한 민족애와 강인한 지조를 지녔고,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해 한 몸을 서슴없이 내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문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는 “1989년 3월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과 당당하게 회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힘 때문”이었다며 “그 자리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교류부터 하자고 했던 말은 6·15와 10·4선언을 통해 실현됐다”고 말했다.

문익환 목사가 과거 남북관계를 잇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올해에도 남북관계 교류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김영남 위원장이 가볍게 덕담을 하는 것처럼 언급한 문익환 목사에 대한 발언 배경에도 이 같은 뜻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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