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전 KBS 사장 해임 이후 기존 간부들 지시를 거부해 온 KBS 기자들이 업무에 복귀했다. KBS 기자들은 최근 ‘고대영 KBS’를 이끌어 온 간부들의 지휘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제작 업무에 투입됐다. KBS 사측과 실무진은 보도위원회를 열어 평창취재단과 특별취재단 구성에 합의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KBS 보도국이 둘로 쪼개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9일 “‘적폐’ 취재 따로, 평창 취재 따로…둘로 갈라진 KBS 보도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본부 소속 기자들은 일명 ‘보도위원회’를 만들고 기존 보도국 지휘라인과 별도의 취재 보도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익명의 KBS 관계자 입을 빌려 “KBS는 지난 5일 보도본부 내에 보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보도위원회가 무엇인지 몰랐을까.

photo_2018-02-09_06-26-56.jpg
보도위원회는 방송법과 KBS 방송편성규약에 근거한 편성위원회다. KBS 방송편성규약 7조는 “KBS는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고 취재 및 제작 실무자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편성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고 규정한다. 보도위원회는 “취재·제작 업무 특수성과 매체별 특성을 고려해 각 본부(센터)에 하나씩” 운영하는 3개 위원회(보도·TV·라디오) 중 하나다.

실무자 대표로 보도위원회에 참석한 박종훈 KBS 기자협회장은 앞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고대영 사장 체제에서는 편성규약이 유명무실했다”며 “편성규약에 따른 제작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로 방송에 임할 수 있게 돼 업무에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보도에서 “보도국 간부들은 보도본부를 사실상 둘로 나누는 것에 반대했으나 홍기섭 보도본부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보도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우선 보도본부 책임자인 홍기섭 본부장이 실무자와 보도위원회를 개최하는 것은 기존 규약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KBS 편성규약 5조는 “취재 및 제작 책임자(간부)는 취재 및 제작활동을 총괄”하며 “실무자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창의적 취재·제작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보도국 인사를 비롯한 상당수 간부들은 고 전 사장 해임 전후 자발적으로 보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인석 사장 직무대행은 “기존 인사 체제를 유지하겠다”며 “파업 중 보직 사퇴한 간부들도 업무에 복귀하라”는 기존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정수영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선일보는 심각한 실수를 한 것이다. 보도위원회에 대한 법적·규정적 지위를 모른 채 오해 내지는 악의적 보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조선일보 내부에선 편집권 독립이 필요하다는 자성이 나온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편집국장 신임투표제’ ‘상향평가제’ 등 편집국 독립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달 19일 노보에서 “신임투표제는 기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편집권 독립에 필수적”이라며 “간부들은 소통 부족을 기자 개인의 용기 문제로만 보고 ‘아니오’를 말하라고 오히려 닦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두식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지난달 9일 노조와 인터뷰에서 “편집국장 신임투표제나 상향평가제를 했던 회사들이 기사의 질이나 정보의 양에서 더 나아졌느냐를 봐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노조는 “상명하복이 심해 사내 언론자유가 부족하다는 것은 수십년째 노보에서 지적해온 공지의 사실”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조선일보 단체협약 6장은 “편집권은 경영 차원의 부당한 영리적 압력이나 주주의 사적 이익에 의해 침해받지 아니한다. 조합원은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하는 기사를 쓰지 아니하며 회사는 이를 강요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으로 ‘편집의 독립’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조선일보는 KBS 기자들 업무 복귀와 문재인 정부가 연결됐다는 주장을 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익명의 언론학자를 통해 “새로운 사장이 임명되지 않았을 뿐이지 보도국은 이미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살아 있는 권력인 문재인 정권을 견제하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前) 정권 보복취재단”이라는 KBS 공영노조 입장을 실었다.

KBS 공영노조는 40여명(지난달 기준)의 일부 간부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반면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은 2200여 명으로 KBS 내 다수 노조 지위를 갖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