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섰던 인물이 KBS 사장 자격 요건이라고 하셨는데 YTN 경우는 대주주인 공기업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구성원 지지, 공정방송 투쟁 경험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인물이 YTN 사장이 됐다. 죽 쒀서 개 준 것인데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한 방안이 궁금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가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주최한 ‘KBS 새 사장의 조건과 자질, 그리고 과제’ 토론회에서 전준형 YTN 기자는 이 같은 질문을 토론회 패널들에 던졌다. 그는 최남수 YTN 사장 퇴진을 위한 노조 총파업에 참여 중이다. 그는 “참고하고 싶어 이 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KBS 구성원뿐 아니라 언론계에서는 ‘누가 KBS 사장이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장악 기간 동안 쌓인 ‘내부 적폐’를 혁신할 인사가 누구인지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지사.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시기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서 함께 싸워 온 인물 △언론 적폐 청산과 내부 개혁을 실천해 국민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인물 △수도권 중심이 아닌 지역 여론과 문화 형성 중심 매체로 KBS를 바꿔나갈 인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KBS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물 등을 사장 자격 요건으로 꼽았다. 이 부분에서 KBS 내부 구성원 간 이견은 적다. 그렇다면 누가 이 요건을 갖췄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 고대영 KBS 사장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재진과 KBS 기자들에 둘러싸여 회의장 출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고대영 KBS 사장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재진과 KBS 기자들에 둘러싸여 회의장 출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이번 KBS 사장 선임 절차는 여느 때와 달리 개방적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시민자문단 구성’이다. KBS 이사회는 150여 명 규모의 시민자문단을 구성해 KBS 사장 선임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자문단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의 중단 여부를 판가름한 공론화위원회와 흡사하다.

실제 조용환 KBS 여권 추천 이사(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 변호사인 김지형 전 대법관은 공론화위원장이었다. 권태선 이사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서 공론화위에 큰 관심을 보여 온 인물이다. 김상근 KBS 이사장도 시민자문단에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이사회에 따르면,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시민자문단 구성은 외부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리서치가 맡는다. 자문단 회의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진행한다. 두 업체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파트너 업체였다. KBS 사장 선임은 ‘정책 문제’가 아니라 ‘인사 문제’라는 점에서 향후 1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자문단을 모집할 전망이다.

국민 참여라는 명분은 좋지만 한계도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안주식 전 KBS PD협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민자문단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우려되는 게 있다. 이번 자문단은 (공론화위와 달리)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진행된다. 자문단이 지난 10년 동안 누가 어떻게 KBS 내부에서 싸워왔는지 쉽게 알기 어렵다. 내부 평가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할 것인데 KBS 구성원 입장에서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또 후보자의 PT나 번지르르한 연설로만 평가한다면 최선의 선택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KBS 사장 공모 서류 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은 시민자문단 앞에서 직접 정책 발표회를 연다. 문제는 오는 24일 정책 발표회와 동시에 시민자문단 회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자문단 회의를 거친 뒤 26일 최종 면접이 진행되며 KBS 이사회는 이 과정을 통과한 후보자를 문재인 대통령에 임명 제청한다. 

KBS 이사회에선 발표회 전날 즈음 KBS 사장 선임을 위한 자료를 자문단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자문단도 10여명 정도로 각 팀을 꾸린 뒤 정책 발표회 이후 하루(24일) 온종일 토론과 논쟁을 이어갈 전망이다. 자문단은 KBS 이사회가 심사 요건으로 명시한 조건과 KBS 사장 후보자들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판단하게 된다. 공론화위가 한 달 간의 숙의 과정을 거쳤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셈이다.

▲ 지난해부터 143일 동안 파업을 진행했던 KBS 새노조는 차기 KBS 사장 요건으로 지난 10년 방송장악 시기 함께 싸운 인사를 꼽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부터 143일 동안 파업을 진행했던 KBS 새노조는 차기 KBS 사장 요건으로 지난 10년 방송장악 시기 함께 싸운 인사를 꼽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권태선 KBS 이사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외부 업체들이 신고리 공론화위 때보다 경험이 더 쌓였을 것”이라며 “인사 문제이기 때문에 도리어 정책 문제보다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 이사는 “다만 인사 문제라는 점에서 사전에 논의하게 될 경우 판단을 흐트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있다”며 “뿐만 아니라 이번 자문단을 통해 향후 KBS 사장을 어떻게 뽑는 게 좋을지 제언을 모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국민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사장 선임에 국민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방송법에 따르면 한 달 안에 사장을 뽑아야 한다.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짧은 시간 내에 KBS의 핵심 문제점이 무엇인지, 후보 면면이 지난 10년 방송장악 기간 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문단에 충분한 지식과 데이터가 제공돼야 하는 데 그 부분이 크게 우려된다. 만약 자문단 평가를 이사회가 반영한다면 첫 실험이라는 점을 감안해 그 비율을 다소 낮춰야 하는 게 아닌지 싶다”고 말했다. 

여전히 이명박·박근혜 등 국정농단 책임자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 그들을 대표하고 있는 KBS 야권 이사들도 사장 선임 표결에 참여한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죽 쒀서 개 주는’ 결과가 나오진 않을지 KBS 내에 노파심이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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