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돌아온 ‘뉴스데스크’는 MBC 정상화 시작을 알렸다. 해직자 신분에서 5년 만에 복직한 박성호 앵커와 비제작부서 ‘유배지’로 쫓겨났던 손정은 앵커, 김수진 앵커(주말 단독)가 진행하는 뉴스는 탄압받던 언론인들의 귀환을 알렸다. 박성호 앵커는 “MBC 안에서는 부당한 보도를 밀어붙인 세력과 그에 맞선 기자들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뉴스는 계속 나갔다. MBC 기자들을 대표해 사과드린다”는 반성으로 새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반성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박 앵커는 다시 보도에 사과했다. 제천 화재 당시 구체적 근거 없이 CCTV 영상만으로 현장을 묘사해 논란을 부른 보도를 사과한 지 며칠 만에 기자 지인을 시민 인터뷰에 등장시켜 비난을 받았다. 박성호 앵커는 이에 “취재 윤리 위반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2012년 파업으로 해직된 박 앵커는 바닥 친 MBC 신뢰를 되찾기 위한 얼굴이 됐다. 1995년 MBC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 캡, 정치부 국회 취재반장, 기획취재부 데스크, ‘뉴스투데이’ 앵커까지 거친 박 앵커지만 지난 5년의 공백으로 그는 “뉴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처럼” 공부 중이라고 말했다. 취재 윤리를 다잡기 위한 각종 지침을 만들고 보도국 기자들을 재교육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MBC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6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박성호 앵커를 만났다.

▲ 박성호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6일 서울 상암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성호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6일 서울 상암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은 지 한 달 반 가까이 지났다. 그간 어떤 일을 했나?

“먼저 (보도국 입구에 위치한) 앵커실 책상을 없앴다. 지난 4~5년간 이곳에 배현진, 이상현 앵커 책상이 있었다. 앵커 멘트 관련 논의가 활발해야 하는데 보도국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제 자리는 국장, 부장 옆이다. 오늘 뉴스에서 어떤 아이템이 추가되고 빠지는지 수시로 논의하고 앵커 멘트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데스크 슬로건이 ‘시청자와 소통하는 뉴스’인데 내부 소통부터 되살려야 했다.”

- 하루 종일 뉴스를 볼 텐데, 포털에 달린 댓글도 보나.

“초반에는 특히 열심히 봤다.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웃음)”

- 뉴스데스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몇 차례 사과가 있었다.

“괴로웠다. 시작하자마자 악재가 일어나 당혹스러웠지만 우리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보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실수나 잘못을 어떻게 인정하고 공개하고 바로잡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MBC 뉴스가 더 나아지기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했다.”

- 이후 바뀐 점들이 있나?

“시민 인터뷰를 정교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대책을 만들었다. 취재와 기사를 송고하는 과정에서 인터뷰한 시민의 성명·직업, 섭외 과정 등을 각 부서에 보고하는 내부 지침을 만들었다. 화면 묘사의 경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는 관행을 깨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날 놀이동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보고 ‘아이들은 마냥 즐거웠다’고 쓰거나 스케이트 타다 넘어진 아이를 보여주며 ‘오늘은 넘어져도 신이 난다’는 식으로 써오지 않았나. 이런 관행을 고쳐나가기 위한 지침을 만들어 공유했다. BBC 편집가이드라인 중 정확성에 관한 부분을 번역해 내부 게시판에 공유했다. 취재보도준칙을 손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보도국장이 일이 터졌을 때 하나하나 관행을 바꿔나자고 지시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 MBC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저널리즘 스쿨은 어떻게 되고 있나?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나선 뒤 관련 부서와 협의를 가졌다. 취재 일정이 바쁜 기자들을 어떻게 모아 교육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과거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교육 당시 활용했던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기자별 교육 과정을 분류하고, 어떻게 수요에 맞출지 고민 중이다. 이달 안에 윤곽을 잡고 조만간 시행하려 한다.”

- 해직 기간 동안 공영방송의 불편부당성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다 해직됐고, 정치부 취재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불편부당성은 현실에서 느꼈던 화두다. 많은 사람들이 BBC를 공정한 뉴스의 교과서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 뭘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구체적 관찰이나 토론이 없었다. 석사를 영국에서 하는 동안 BBC 뉴스를 모니터링 하면서 느낀 점도 있다. 뉴스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구성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 논문을 기반으로 MBC 기자들과 논의한 적 있다고 들었다.

“MBC 정상화 직전 정치부 요청으로 기자들 앞에서 연구 분석 결과를 프레젠테이션하고 함께 토론했다. 정치 뉴스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했고 실제 기사에 변화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실수가 있었지만 개헌 관련 리포트도 개헌이 너무 정치인들만의 담론이 됐다는 판단에 시민들의 다양한 관점을 담아보려 시도했던 것이다. 정치인이 뉴스의 주어가 되는 순간 기사가 전부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지배된다. 사회부 기사나 기획 기사는 그렇게 안 쓰지 않나. 국회 기자 모습이 자꾸 국회에서만 등장할 필요는 없다. (법안 등 관련) 이슈가 있는 현장을 찾아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고 기자가 질문해야 한다. 또 하나는 기자가 적극적으로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정치인들에게 밀착해 질문하는 게 늘어났다.”

- 기자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기존 방송 뉴스 기사는 공급원들이 주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의 담론에 머물러 있다. 시청자들이 궁금할 만한 점을 대리인인 기자가 공적으로 심문하는 것이다. 기자는 질문할 책임이 있고 취재원은 대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틀이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겠다고 달려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 박성호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6일 서울 상암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성호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6일 서울 상암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처음 뉴스데스크를 시작할 때 백화점식 뉴스를 지양하겠다고 했다. 어느 정도 실현됐나?

“많이 실현되진 않았다. 큰 공장이고 여러 사람이 일한다. 생산라인을 다 바꿔야 제대로 구현된다. 시간이 좀 걸릴 일이다. 꼭지 수는 예전보다 약간 줄었다. 개별 기사 길이도 1분20초로 획일적이지 않다. 2분, 3분 심지어 5분짜리 리포트도 심심치 않게 나간다. 이재용 항소심 선고나 다스 관련 수사 등의 이슈에선 선택과 집중이 조금 이뤄졌다고 보는데, 별도 타이틀이나 코너가 없어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보도 운영 체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지난 몇 주간 혁신안을 검토했고 내부 기자들 상대로 회의와 찬반 토론을 가졌다. 어느 정도 정리해가고 있다.”

- 다양한 속보를 원하는 시청자도 있지 않을까.

“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의 눈이나 기대치가 높아졌다. 하루 종일 뉴스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에) 중점을 두는 건 맞는 거 같다. 기술적 고민이 필요하다.”

- 앵커 멘트가 다른 방송사 뉴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간결한 앵커 멘트를 추구하나.

“그때그때 다르다. 뉴스 양이 많은 날은 리포트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기 바라는 요구도 있다. 앵커 멘트 길이에는 답이 없다. 저 같은 경우 앵커 멘트를 두 문장 정도로 써 왔다. JTBC 손석희 앵커의 경우 6~7문장을 쓰기도 하고 SBS는 4문장 정도다. 다만 앵커 멘트가 너무 길면 문제가 있다. 매일 뉴스를 25개 준비하는데 시간이 넘쳐서 보통 2개 정도 빠진다. 취재 기자 입장도 있고 뉴스를 알리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데 예민함이 있다.”

- 어떤 앵커를 지향하나.

“저는 학습 중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을 정해놓고 간다기보다는 시청자와 함께 궁금해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진행, 이해가 안 가는 점을 잘 설명하는 앵커가 됐으면 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고작 한 달 남짓 한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앵커를 지향한다고 말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제가 부각돼서 스타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뉴스나 기자의 리포트가 빛나야 한다.”

- 해직 기간 동안의 공백기를 체감하나.

“그동안 따라가지 못한 이슈들이 많다. 어떤 의미에서는 좋게 생각한다. 시청자들도 뉴스를 보며 ‘이게 뭐였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잘 됐다’, ‘뉴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처럼 알아보고 공부하자’는 생각이다.”

- 클로징 멘트에는 비중을 안 두나.

“프로그램 문 닫는데 왜 힘을 주나. 오프닝 때 힘을 주거나 뉴스 중간 앵커 멘트에서 확실히 얘기를 해야지. 끝날 때 얘기하는 게 정석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클로징 멘트가 너무 없어서 심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손석희 앵커 등으로 인해 앵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제 능력과 노력이, 뉴스 시간으로 따지면 초중반까진 가 있지만 클로징까지는 아직 못 가있다고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다.

- ‘새로고침’이 유일한 고정코너다. 그간 방송 어떻게 평가하나.

“좋게 본다. 애착도 있다. 기본적으로 ‘팩트체크’라는 말은 일부러 쓰지 않으려고 했다. 팩트체크는 원래 언론의 기본 사명이다. 잘못 알려진 정보들을 바로 잡는 것은 중요하다. 또 더 궁금한 것들, 뒤에 가려진 실체나 핵심을 깊숙이 짚어보고 친절하게 설명해보자는 차원에서 고정코너를 도입했다. 최근 검사 성추행 사건 관련 언론의 이름짓기 관행 보도는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지 않느냐는 성찰이었다. 시청자들이 반응하는 걸 보면서 이런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영방송 뉴스로서 해야 할 사명을 구현하는 코너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 다른 코너가 추가적으로 생길 가능성은?

“있다. 그런 것들을 다 논의하고 있다. 3월 중 개편 계획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 뉴스 시청률이 높지 않다.

“시청층 분석을 해봤는데 70대 이상 비중이 가장 많다. 과거 MBC는 40~50대 시청자들이 애청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난 5년간 시청층 분포 자체가 바뀌었다. 5년이라는 공백은 업무 공백뿐이 아니다. 주 시청자들을 완전히 바꿔놓은 상태라는 걸 절감했다. 시청률이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급해하진 않는다. 동시간대 JTBC라는 가장 신뢰받는 매체가 자리잡고 있어서 갑자기 떠났던 시청자들이 한 번에 돌아올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갈 길이 멀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시도할 것이다. 혁신을 마음껏 시도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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