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바로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이재용 부회장을 피해자로 판단했다. 파면당한 대통령 박근혜 압박을 거절하지 못하고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경영권 승계 등을 비롯해 이권을 챙긴 정황과 증언들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결을 내린 재판장은 정형식 부장판사다.

▲ 2월5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중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 2월5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중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번 재판결과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이상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만큼 논란이 많은 판결이고, 따져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판결이다. 이 역할은 언론이 해야 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상당수 언론은 마치 ‘삼성대변지’라도 된 것처럼 삼성을 일방적으로 두둔했다. 옹호와 두둔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한국 언론은 정도를 벗어났다. 논평할 가치가 별로 없을 정도다. 한국 언론의 민낯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2월6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주요 경제지 1면 제목을 여기에 남긴다.

‘“삼성 정경유착 모습 없다”’(국민일보), ‘353일만에 이재용 석방’(동아일보), ‘2심의 반전…“최고권력자가 이재용 겁박”’(서울신문), ‘이재용 353일만에 집으로’(세계일보), ‘이재용 정경유착 굴레서 풀려났다’(조선일보), ‘법원 “정경유착 없었다” 이재용 석방’(중앙일보), ‘“승계청탁 없었다” 이재용 353일만에 자유의 몸’(한국일보).

이재용 부회장이 353일 만에 집으로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조선과 중앙일보는 ‘정경유착 굴레서 벗어나거나 없었다’고 단정하는 제목까지 뽑았다. 전국단위종합일간지 중에 이번 판결이 가진 문제점을 주요하게 언급한 곳은 경향과 한겨레뿐이었다.

주요 경제지 1면도 다를 게 없다. ‘“승계 청탁없었다” JY 353일만에 석방’(매일경제), ‘이재용 석방, 삼성 제3창업 나선다’(서울경제) ‘“묵시적 청탁 없었다”…이재용 석방’(한국경제) 등 철저하게 삼성 입장에서 재판 결과를 해석하고 보도했다.

▲ 2018년 2월6일 서울경제 1면
▲ 2018년 2월6일 서울경제 1면
같은 날짜 사설은 더 가관이다. ‘353일만에 석방된 이재용…결과 겸허히 받아들여야’(국민), ‘이재용 집유…특검 여론수사에 법리도 퇴짜놓은 법원’(동아), ‘이재용 항소심 석방…묵시적 청탁조차 없었다’(세계) ‘이재용 집유…법리와 상식에 따른 사법부 판단 존중해야’(중앙)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다수 언론은 2심 결과를 수용하라고 특검을 압박했다. 조선일보는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라는 사설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아예 피해자로 단정했다.

주요 경제지들은 사설을 통해 이재용 ‘카운슬러’로 나선 형국이다. ‘삼성은 심기일전해 글로벌 정도 경영에 매진하길’(매일경제)부터 ‘이재용, 이제는 앞만 보고 뛰어라’(서울경제), ‘특검의 누더기 기소에 제동 건 이재용 2심 재판’(한국경제)까지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조언을 하는데 사설 대부분을 할애했다.

대다수 언론의 분석·해설·전망 기사는 ‘중증 종합병동’ 수준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재용 부회장 효심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지면배치부터 삼성이 향후 투명경영과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망을 세운다는 기사까지 삼성을 위한 지면배치가 수두룩하다. 일부만 인용한다.

‘이재용 출소 첫마디 “1년은 저를 돌아본 시간”’(조선일보 5면), ‘“좋은 모습 못 보여드려 죄송, 회장님 뵈러 간다”’(중앙일보 5면), ‘한숨 돌린 삼성, 국민기업·투명경영 큰 그림 펼친다’(한국일보 2면), ‘감형협상 거부하고 정면돌파…“세심히 살피며 살 것”’(매일경제 2면), ‘석방 직후 아버지 병상 달려간 이재용…당분간 정중동 행보 나설 듯’(한국경제 5면).

▲ 2018년 2월6일 중앙일보 5면
▲ 2018년 2월6일 중앙일보 5면
지난해 이른바 ‘장충기 문자 파문’이 터졌을 때 미디어오늘은 ‘친삼성언론, 그들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정권과 재벌의 커넥션은 일정 부분 드러났지만 삼성과 언론의 커넥션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 반성하지 않은 언론이 ‘이재용 2심 판결’을 어떤 식으로 보도하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자율적 언론개혁이 가능한 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럴 바엔 그냥 ‘삼성그룹 홍보지’라고 선언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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