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전직 판사 출신 인사들도 비판하고 나섰다.

항소심 재판부 논리대로면 모두 무죄여야 하는데 난리가 날 것 같으니 일부 유죄로 인정했다는 견해, 설령 36억3484만 원의 뇌물과 횡령 혐의만 인정한다 해도 일반인 같으면 무조건 실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태어나서 가장 무력감을 느낀 판결이었다거나 역대급 쓰레기 같은 판결이라는 거친 비판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당내 적폐청산위원장‧국회 법제사법위원)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을 두고 “(이 판결을 보고 어제는) 태어나서 가장 무력감을 느낀 하루였다”며 “이런 재판시스템은 뜯어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어제 페북에 ‘1명의 재판장이 1700만 촛불 국민에 견주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며 “그것으로 갈음하겠다. 7일 쯤 다시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지법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현 서기호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서 변호사는 “강요받은 피해자라는 설정을 한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며 “피해자라는 뜻은 (강요된 뇌물 수수로 인해) 피해자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는 것인데, 이재용은 승계작업이 한창이었고, 제일모직 합병으로 지배력이 커졌다. 여기서 대통령의 협조로 합병이 수월해진 것인데, 일방적으로 승계작업이 없다고 규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서 변호사는 이재용의 승계작업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알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도 “당시에 이재용으로 승계작업을 하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었는데, 이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청탁하지 않았다고 박근혜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혐의에 대해) 무죄를 무리하게 만들어놓고, 결국 집행유예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16년 2월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 소리
▲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16년 2월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 소리
서 변호사는 특히 “설사 무죄라 판단했다 해도 여전히 36억 원의 뇌물과 횡령은 유죄인데, 그 액수가 일반인의 사건과 비교해봤을 때 일반인이었다면 무조건 실형”이라며 “도저히 집행유예가 나올 수 없다.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이 정형식 부장판사를 법리를 중시하는 법관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서 변호사는 “법리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엄격하게 해석한다는 것인데, 법리보다 증거를 너무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라며 “무엇보다 다른 사건과 형평성이 더 크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1심 때와 사정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핵심 판단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서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논리”라며 “무죄 결론을 도출하게 된 논리와 근거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항소심 재판은 근거와 논리가 약하다. 사실상 집행유예 하기 위해 억지 논리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집행유예 석방’ 결론 내려놓고 이유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판사출신으로서 이번 판결을 본 소감에 대해 서 변호사는 “일반 국민을 포함해 법조계 인사들도 허탈해 한다”며 “기본적으로 재벌이니까, 더군다나 삼성의 총수다 보니 결국 봐주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삼성공화국의 위력은 막강하구나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그는 정형식 판사야말로 삼성장학생이 아니냐는 인터넷 상에 나타나는 시민들 주장들과 관련해 “삼성장학생이라는 얘기가 뜬소문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고 답했다.

앞서 울산·창원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이정렬 사무장(법무법인 동안)은 이날 아침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제가 지금까지 역대급 판결을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정몽구 전 현대자동차 회장 판결을 역대급 쓰레기 판결로 꼽는데, 이건(삼성 뇌물죄 판결)은 그걸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이 전 판사는 “이 판결에 나타난 논리 그대로 관철하면 유죄가 인정된 부분도 무죄가 될 것 같다”며 “그런데 전부 무죄를 하면 정말로 난리가 날 거 같으니 일부만 유죄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정렬 전 울산·창원지법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사진=이정렬 페이스북
▲ 이정렬 전 울산·창원지법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사진=이정렬 페이스북
이 전 판사는 특검이 상고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여러개의 강이 바다로 한꺼번에 모이듯이 모든 사건은 대법원으로 모인다”며 “문형표(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사건을 가지고 이 판결을 들여다봤을 때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전 이사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강행한 것에 대해 유죄 실형선고를 받은 것과 관련해 이 전 판사는 “(문 이사장이) 겁을 먹은 사람(삼성 이재용)을 위해 일을 한 것이 됐다. 그렇게 훌륭한 분에게 왜 실형을 선고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이 전 판사는 “이 사건 본질 또는 핵심쟁점은 뇌물이냐 아니냐인데, 뇌물이 되면 횡령-재산 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까지 줄줄이 인정되고, 뇌물이 아니면 모두 아니다. 뇌물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 부분도 당연히 무죄인데 자기들 논리를 좀 더 강화하려고 여러 개 논리를 끌어다 쓰다 보니 결국 뇌물이 아니니까 재산도피도 아닌 게 됐다”고 지적했다. 코어스포츠에 넘어간 36억3484만 원이 재산 해외도피 혐의를 무죄 판단한 것에 대해 이 전 판사는 “재산도피 하려면 내것을 외국으로 보내야 하는 것인데, 남한테 뇌물로 주려고 해외로 보낸 것이고, 남은 것은 장소가 외국인 것 밖에 안남는다(는 논리)”라고 해석했다.

이 전 판사는 전직 부장판사로서 이번 판결을 본 소감에 대해 “보통은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거나, 가지고 있더라도 조심을 한다. 왜냐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라며 “전제로서 공과 사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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