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에 대한 파면 및 감사(감찰) 요청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서 봇물을 이뤘다. 정형식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이 5일과 6일 사이 올라온 건수만 156건(6일 오전 10시 기준)이다.

5일자로 올라온 ‘정형식 판사에 대해서 이 판결과 그 동안 판결에 대한 특별 감사를 청원합니다!!!’라는 게시물엔 5만8천여 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게시물 내용은 “국민의 돈인 국민 연금에 손실을 입힌 범죄자의 구속을 임의로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 대해서 이 판결과 그 동안 판결에 대한 특별 감사를 청원”한다는 내용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의 의지나 확신과 달리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재판관 신상털기를 하여 법으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여 판결한 양심적 판사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들을 처벌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도 올라왔지만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판결이 사법부 개혁의 바람으로 불고 있는 형국인데 향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당장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치달으면서 조롱 대상이 되고 있다. 청원 게시물을 보면 “누구는 8000억 국민연금 손해 끼치고 상속받아도 무죄판결 나오는데 저도 아버지 돈 1억 가량 상속 받을거 같은데 상속세 안내도 무죄로 되는 거 맞는 거겠죠?”라며 이재용 부회장 판결을 비꼬는 내용이 올라왔다.

▲ 2월5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중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 2월5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중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형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법관은 재판 업무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당사자 등과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면담·접촉할 수 없으며 타인의 법적 분쟁에 관여하거나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법관윤리강령을 어겼다고 판단할 경우 사법부 스스로 감찰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인의 접촉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이상 특정 재판의 판결 결과를 놓고 감찰을 벌일 수 없다.

청와대의 고민은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경우 사법부 개혁 문제를 손 놓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법부 개혁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는 가운데 법원 내부로부터 개혁 방안이 나오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지난달 26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와 관련해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준수하는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은 법원의 재판과 관련하여 일절 연락, 관여,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사법권 독립과 개혁 사이 딜레마에 놓인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문서로 만든 사실이 드러난 것에 대해 정권과 조율 없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점을 강조한 원론적인 말이지만 사법부 개혁에 대한 정권의 고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김명수 대법원장에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지금 국민들은 우리 정치도 또 사법부도 크게 달라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정치를 개혁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 국회가 담당해야 될 몫인데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독자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재용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 개혁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면서 개혁에 착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청와대가 적극 나선다면 사법부 독립을 헤친다는 공세에 부딪힐 수 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정형식 판사에 대한 감사 요청 게시물.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정형식 판사에 대한 감사 요청 게시물.
하지만 여론은 이번 이재용 판결을 단순히 비상식적 판결이 아니라 반부패 인사에 대해 면죄부를 준 사법부의 수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불평등과 불공정, 부정부패 등 3불 혁파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기조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이재용 부회장 판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언제까지 너희는 불공평한 재판을 하려는가? 언제까지 악인에게 편들려는가?(시편 82:2)”라는 문구를 인용하고 “재판부는 적폐를 청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철저히 유린했다. 사법부가 스스로 개혁의 대상임을 밝힌 것이다. 유독 삼성에 대한 법적용에만 봐주기로 일관하는 사법부를 국민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6일 청와대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현안점검 회의에서 그런 판결이 있었다는 보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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