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2일 총파업을 끝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새노조)는 새 사장의 첫 번째 요건으로 ‘지난 시기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서 싸워 온 인물’을 꼽았다. 지난 10년 정권에 따라 흔들린 KBS를 재건하려면 KBS 내부 사정과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고민했던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년에 걸친 KBS 정상화 투쟁은 MB정권이 ‘정연주 사장 몰아내기’에 돌입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이후 감사원, 국세청, 교육부, 당시 대통령실장까지 등장한 시나리오였다. KBS 현업 직능단체들이 정 사장 해임을 막기 위해 결성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사원행동)은 투쟁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사원행동 공동대표였던 양승동 PD가 차기 KBS 사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5일 당산동에서 진행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양승동 PD는 “이제 선배가 총대를 매야 한다”는 후배들의 권유를 받았다며 동료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사장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 KBS 사장 출마 의사를 밝힌 양승동 PD가 5일 서울 당산동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KBS 사장 출마 의사를 밝힌 양승동 PD가 5일 서울 당산동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한국PD연합회장과 KBS PD협회장, 사원행동 공동대표를 지낸 양승동 PD는 정 사장 해임 반대 투쟁 당시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파면 처분을 받았다. 재심을 통해 정직 4개월로 징계 수위가 조정됐지만 이후 2년간 비제작부서로 보내진 뒤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최근까지 제작 일선을 지켜온 양 PD는 1989년 KBS에 입사해 ‘KBS스페셜’, ‘역사스페셜’, ‘명견만리’, ‘세계는 지금’, ’추적60분’ 등 KBS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그는 2003년 민주언론상(인물현대사), 2009년 한국PD대상, 2017년 통일언론상 대상(KBS스페셜-오래된 기억, 6.15남북정상회담) 등을 수상했다.

-왜 사장에 출마하게 됐나.

“본격적으로 출마를 고민한 건 1월 초쯤이다. 지난 연말부터 KBS를 퇴직한 지 10여 년 된 분들 중 일부가 정치권 유력 인물을 배경으로 뛰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과거 청와대 등 권력 핵심에서 누군가를 낙점하고 낙하산으로 보냈던 식으로 움직이고 있구나 생각했다. 후배가 찾아와 ‘이제 선배가 총대를 매야 한다’며 권유했다. 저는 부채 의식이 있다. 2008년 KBS 사원행동을 조직해 정권의 KBS 장악 시도에 반대하다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1월 파면 처분을 받았다. 이후 일요일 집회에 600명 가까운 KBS 구성원들이 모여 ‘우리가 제2의 양승동이 되겠다. 같이 파면하라’고 요구했고, 시위·집회가 1주일 넘게 이어졌다. 10년이 흐른 지금 (총파업을 거치면서) 다시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내게 됐다. 구성원들 사이에 KBS를 바꾸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인식이 있다.”

-왜 마지막인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공정방송은 기본이고, 미디어 생태계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중심을 잡아야 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 JTBC 등이 잘하고 있고 MBC는 정상화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KBS가 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해서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멀어질 거라는 위기감이 있다.”

-KBS를 재건하려면 무엇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외부에서 KBS를 장악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있었고 내부에서 호응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들의 행적이 프로그램과 뉴스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조사를 정확히 해야 한다. 당사자들의 사죄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적폐청산은 제도적, 관행적으로 잘못돼 있는 것들에 대한 청산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외주제작자들과의 관계 등 (정규직) 갑질 문화 청산과 건강한 방송 생태계 조성도 이에 포함된다. MBC 정상화위원회처럼 KBS 정상화추진위원회 설치를 추진할 것이다. 노사뿐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가 될 것이다.”

-언론사 내부 갑질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건가.

“이 문제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적폐다. 회사 경영진과 내부 구성원들이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결국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비정규직 차별이나 갑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디어 생태계는 건강해질 수 없다. 큰 틀에서는 적폐청산위원회 사안에 포함해 제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도 공정성 강화를 위한 방안은. 

“과거 사장이 청와대나 고위층으로부터 아이템을 요청 받거나 기자나 PD, 담당 부서장에게 지침을 전하는 사례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실제로 길환영 사장 때 이정현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낙하산 사장을 통한 정치적 외압과 기자들 자율성을 억압하는 내부적 통제가 결합된 것이다. 내부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 국장 임면동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장책임제를 보도국장과 시사제작국장에 적용할 생각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 재허가 조건으로 편성위원회 활성화를 요구했는데, 보도위원회, TV위원회, 라디오위원회를 정상화 및 활성화해 제작 자율성을 보장할 것이다.”

-MBC가 먼저 정상화 수순에 돌입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최승호 PD를 사장으로 선출한 뒤 빠르게 정상화하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응원했다. 적폐라든지 기득권 세력 저항도 있었을 것 같다. 역량 있는 기자와 PD들이 비제작부서로 밀려난 세월이 길었기 때문에 바로 예전처럼 방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과거 MBC는 다루기 쉬운 시용 중심으로 인력을 운용해 인력 구조가 왜곡돼 있었다. MBC 구성원 의지를 볼 때 결국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MBC를 보면서 KBS를 생각한다. MBC가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팀이라면 KBS는 팀플레이가 장점인 조직이다. KBS는 계속 충원을 해왔다. 10년차 미만 후배들도 탄탄하기 때문에 잘 이끌면 빠르게 정상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MBC의 경우 ‘적폐’로 규정할 대상이 명확할 수 있다. KBS는 어떤가.

“제 머릿속에는 명확하게 있다. 지난 10년의 잘못된 보도와 프로그램들에 대한 조사와 검증을 통해 제작 자율성 억압 사례들에 대한 책임 규명 등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청산하겠다. 최근 YTN 사태를 보면서 적폐 청산 의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영진의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 YTN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KBS는 수신료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다른 방송사와도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수신료와 광고 비율이 4대6이었다면 지금은 수신료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광고 하락 폭이 커지면 프로그램 투자 여력이 약해진다. 협찬을 무리하게 하다 공영성이 약화되는 딜레마가 생긴다. 하지만 수신료 현실화를 당장 추진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반 뼈를 깎는 각오로 정상화를 한 뒤의 일이다. 재원을 다른 방향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 KBS 사장 출마 의사를 밝힌 양승동 PD가 5일 서울 당산동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KBS 사장 출마 의사를 밝힌 양승동 PD가 5일 서울 당산동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시청자 참여는 어떻게 보장할 생각인가.

“KBS에 시청자위원회가 있지만 지난 10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촛불 혁명을 일군 시민들의 의식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우선 시청자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해 프로그램 비평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방송 활성화와 시청자 참여도 연계해 생각하고 있다. 3년 정도 지역국 근무를 한 적 있다. 지역 방송국이라는 공간은 시청자들과 아주 밀착할 수 있는 공영방송 전초기지다. ‘권력의 손에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공영방송 KBS가 되어야 한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공영방송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고대영 해임에 대해 일부 정치권에서는 ‘방송장악’, ‘언론장악’이라는 주장을 편다.

“과거 정연주 사장 때와 최근 고대영 사장 퇴진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은 온갖 국가 기구를 동원해 정연주 사장을 쫓아냈다. 정 사장 해임 반대는 내부 구성원들의 뜻이었다. 그래서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이번에는 지난 10년에 대해 반성, 사과하지 않는 경영진과 사장에 대항했다. 2008년에도 내부 구성원들 의지였고 이번 파업도 KBS를 정상화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구성원의 의지와 열망이 중요한 동력이었다.”

- 왜 양승동 PD가 사장이 돼야 하나.

“다른 후보자들도 각자 장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난 1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KBS를 열어가는 과정에는 우리가 왜 싸워왔는지 명확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구성원들의 바람과 의지가 있다. KBS 구성원으로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