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 합의를 통한 개헌안 마련이 최선의 방안이라면서도 개헌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개헌발의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인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원칙과 방향만 있고 구체적인 진전이 없어 안타깝다”며 “하루 빨리 개헌안 마련과 합의에 책임 있게 나서 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국회의 합의만을 바라보며 기다릴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대통령도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개헌 준비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개헌발의권 사용에 한발짝 다가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저는 줄곧, 개헌은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개헌안 준비와 관련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돼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국회와 협의할 대통령의 개헌안을 준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헌발의권을 사용하기 위해 구체적인 개헌안 마련을 위한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고 공언한 것으로 신년 기자회견 당시 발언과 비교하면 국회에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국민투표법 문제에 대해 국회를 향해 “위헌 상태에 있는 국민투표법이 2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며 “국민투표법을 방치하는 것은 개헌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안위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국민이 결정할 헌법상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 것도 국회의 개헌 합의안 처리와 관련돼 있다.

국민투표법은 재외국민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없도록 돼 있어 헌법불일치 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국민투표법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없는 ‘걸림돌’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개정해달라는 것이다.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특정 시점에서 국민투표법 개정 사항을 보고 대통령의 개헌발의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경고로도 풀이할 수 있다.

▲ 1월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청와대
▲ 1월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개헌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과정과 내용에서 국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개헌안을 마련하는 한편, 국회와도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개헌발의권을 사용하더라도 국회 3분의2 동의를 받지 못하면 개헌안을 상정할 수 없다. 현재 야당의 의석수(자유한국당만 116석)로 보면 개헌 저지선(100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헌발의권을 사용하더라도 국회에서 통과될 수 없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현실정치를 넘어서 여론의 힘으로 개헌안 통과를 압박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동의하고 국민들이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최소분모들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당이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적극 상쇄시키는 독자 개헌안을 마련하면 국회를 압박하며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청와대는 정책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독자 개헌안을 마련하기 위해 여론을 모으는 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을 사용하게 되면 데드라인은 국회의 개헌안 심의의결이 60일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3월 중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2월 말에서 3월 중순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을 처리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조차도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발의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의 개헌 발언에 대해 야당이 반발한 것에 대해 “여야가 합의해서 개헌안을 만든다면 최우선적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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