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자금 10억 원을 횡령한 삼성 계열사 직원이 최근 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80억 원 횡령을 비롯해 5개 범죄사실이 모두 인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형량 차이가 불과 1년으로, 1심 재판부의 ‘기업 총수 봐주기’ 양형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원지법 형사합의15부(김정민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14일 삼성물산 건설부문 새마을금고에서 직원들 출자금 관리 업무를 하던 한아무개씨에게 횡령 유죄 및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씨는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업무상 보관하고 있던 삼성물산 직원 출자금 중 총 10억4천만원 가량을 임의로 빼내 개인용도로 사용했다.

▲ 뇌물 제공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8월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뇌물 제공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8월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 따르면, 횡령금액이 5억~50억 원 사이면서 가중처벌요소가 없을 경우 형량 범위는 2~5년이다. 가중처벌요소가 없던 한씨는 양형 범위 중간값을 넘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수단과 방법이 계획적이고 △횡령 금액이 약 10억 원으로 거액이며 △단기간 내에 거액을 횡령한 점을 양형 사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또한 “횡령 금원은 삼성물산 소속 직원 약 5000명이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해 마련한 매우 소중한 자원인데 이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호화로운 소비 용도로 탕진했다”면서 “피고인이 우울증 등 질환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한 기간 실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이 부회장은 1심에서 가중처벌요소가 다수 확인됐음에도 한씨보다 형량이 불과 1년 높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가중처벌요소 5개, 횡령금액 8배… 직원에 ‘4년’, 예비 총수엔 ‘5년’ 선고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등기이사인 동시에 이건희 회장의 뒤를 잇는 ‘그룹 예비 총수’로 알려져 있다. 유죄로 인정된 횡령액도 한씨의 8배에 해당되는 80억9095만원이다.

이 부회장은 양형위원회 ‘횡령 배임범죄 양형기준’에 적시된 가중처벌요소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양형기준은 △근로자·주주·채권자 등 대량 피해자를 발생시키거나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 △범죄수익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우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경우 △피지휘자를 교사한 경우 △지배권 강화·기업 내 지위보전 목적이 있는 경우 등을 가중요소로 두고 있다. 모두 1심 판결문에서 확인되는 이 부회장 범죄 사실들이다.

한씨는 횡령 혐의로만 기소된 반면,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횡령·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위증 등 다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혐의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한씨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선처를 구했지만 이 부회장은 횡령을 포함한 혐의 전부를 부인했다.

양형위원회 ‘횡령 배임범죄 양형기준’ 중 형량기준 부분
▲ 양형위원회 ‘횡령 배임범죄 양형기준’ 중 형량기준 부분


이처럼 가중처벌요소의 존재 및 비중, 회사 내 지위 및 책임 권한, 범행 자백 여부 등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에겐 한씨보다 상당히 중한 선고 형량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의 징역 5년 선고가 법조계 및 시민사회 일각에서 ‘솜방망이 처벌’ 비판을 산 이유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12월27일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심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규정했음에도 선고된 형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면서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심 형량은 이 부회장에게 선고 가능한 처단형 중 최하한이었다. 양형위원회 기준에 따른 이 부회장 처단형 범위는 징역 5년에서 징역 16년 5월 사이였다.

가중처벌요소가 참작된 80억 원 횡령의 형량 범위는 5~12년이다. 여기에 뇌물공여죄 최고 형량의 절반인 3년 9개월(7년 6개월)과 위증죄 최고 형량(2년)의 3분의 1인 8개월을 횡령 형량 상한선에 더한 것이다. 3개 이상 범죄를 동시에 저질렀을 경우, 기본범죄 형량 상한선에다 형량 상한선이 가장 높은 다른 범죄의 최고 형량 절반, 두번째로 상한선이 높은 범죄의 최고 형량 3분의 1을 합산하게 돼있다.

같은 논리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 피고인 4인의 형량 범위는 징역 5년 내지 징역 15년 9월이다. 1심 재판부는 최 전 실장 및 장 전 차장에게 징역 4년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겐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한씨 사건의 경우, 횡령 피해기업 삼성물산은 재판부에 한씨에 대한 엄벌을 지속적으로 탄원했다. 이 부회장의 경우 피해기업 삼성전자는 1·2심 재판부 모두에 탄원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오는 5일 오후 2시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피고인 5인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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