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파문과 관련해 법조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서 검사에 대한 지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조사단을 꾸렸지만 조사를 검찰 외부에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법조계 뿐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미투(me too)’ 운동 등 성폭력 문제를 의제화 하려는 움직임과도 닿아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각 지난달 30일 취임 첫 국정연설을 하는 하원 의사당에서 미국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미투’를 지지하는 취지로 검은색 옷을 입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또한 미투 운동을 넘어서 목격자들이 성폭력을 막자는 취지로 ‘미퍼스트(Me First)’ 운동도 생겨났다. 

국내외적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지만 유독 조중동 등 보수신문 1면에선 관련 소식을 찾을 수가 없다. 오늘 이들 신문 1면을 장식한 건, 트럼프의 대북 강경 및 압박 발언이었다. 

▲ 1일자 동아일보 10면 사진기사
▲ 1일자 동아일보 10면 사진기사

다음은 1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수많은 ‘미투’에도 우리는 ‘침묵’했다”
국민일보 “트럼프, 北엔 ‘코피전략’ 南엔 무역보복”
동아일보 “빅터 차, 작년말 이미 트럼프가 내쳤다”
서울신문 “남북 불씨 되살린 ‘마식령 스키’”
세계일보 “이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습니다!”
조선일보 “빅터 차, ‘코피 작전’ 반대해 낙마했다”
중앙일보 “트럼프 ‘북핵 곧 미국 위협…최대 압박 계속’”
한겨레 “마식령 공동훈련한 남북 오늘 하늘길로 함께 온다”
한국일보 “경북 ‘대약진’ 서울 ‘2년째’ 1위에”

대검 조사단 시작부터 ‘불신’

대검찰청은 지난달 31일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을 단장으로 하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을 위한 조사단’을 발족하기로 했다.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지 이틀 만에 나온 조처다. 조 단장은 검찰 최초 여성 검사장이며, 사무실은 조 단장이 있는 서울동부지검에 마련됐다.

조사단은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 활동을 할 방침이다. 서 검사가 겪은 2010년 사건에 대한 조사, 서 검사에 대한 불이익 등과 함께 검찰 내부 다른 성범죄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게 조사단이 밝힌 계획이다.

한겨레는 조사단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았다. 이 신문은 “대검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 형태가 아닌 검사장급 현직 간부가 이끄는 ‘조사단’ 형태를 유지하면서 일부 인사를 포함시킨다는 방침이어서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여성 검사들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 1일자 한겨레 만평
▲ 1일자 한겨레 만평

한겨레에 따르면 한 여성 검사는 “과거 조 검사장에게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성추행 문제를 언급했지만 ‘그런 사람은 내가 못 건드린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며 부정적 전망을 했다. 또 다른 여성 검사는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한 상의를 해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피해 검사들이 믿고 털어놓을 수 있겠느냐”며 “여성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조사를 제대로 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물론 조 검사장은 한겨레에 ‘모른체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겨레는 법무부와 대검의 ‘엇박자’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대검이 조사단 구성을 발표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법무부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해야 한다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권고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직 검사가 참여하는 ‘조사단’ 형태가 아니라 ‘위원회’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무·검찰개혁위 권고안은 “검찰 내부의 감찰만으로 전현직 검사들이 관련 사건을 공정하게 조사할 수 있는지 여러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대검은 내부적으로 법무·검찰개혁위가 권고한 ‘진상규명위원회’ 형태 대신 ‘외부 자문 인사’를 참여시키는 조사단을 운용하는 형태의 절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한겨레는 “검찰은 2010년에도 경남지역 건설업체 대표 정아무개씨가 전·현직 검사 57명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는 ‘스폰서 검사’ 파문 당시 외부 인사인 성낙인 서울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서지현 검사 응원 물결

안 전 검찰국장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각계의 응원과 지지가 쏟아졌다. 서 검사가 근무하고 있는 창원지검 통영지청 안내데스크에는 지난달 31일 꽃바구니 여러개가 도착했다. 서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도 지지성명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다.

▲ 1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기사
▲ 1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기사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는 이대 법조인’과 ‘이대 법대·법전원 동창회’는 성명에서 “검찰 조직 내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나,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는 수군거림으로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조직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 지켜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민변여성인권위원회 등 여성단체들도 1일 서초동 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한편 해당 성추행 사건을 무마한 당사자로 지목된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내 기억엔 임은정 검사를 질책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검사 성추행 의혹 사건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며 선을 그었다. 임 검사는 서지현 검사의 피해 사실에 대해 대신 문제제기했던 인물이다.

최 의원은 “임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이면 성추행 사건은 개인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으로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는데 이를 떠들고 다니는 것은 맞지 않다는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되고 호통을 쳤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안태근·최교일 등 가해자와 이를 옹호했다고 알려진 당시 검찰 간부에 대한 조사 결과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확인될 경우 직권남용 혐의로 소환이 가능하다. 현재 두 인물 모두 검찰을 떠난 인사여서 조사단이 강제로 조사할 수 없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참고인 조사를 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직권남용 혐의로 정식 수사로 전환해 소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1일자 한국일보 10면 기사
▲ 1일자 한국일보 10면 기사

안 전 국장은 2010년 10월30일 서 검사를 성추행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형법상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당시 강제추행죄는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였고 고소가 가능한 기간이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라 현재는 고소가 불가능하다. 안 전 국장은 법무부 검찰국장(2015년 2월~2017년 5월)으로 있을 당시 서 검사를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냈는데 인사 불이익을 준 데 관여한 것이 확인되면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받을 가능성이 있다.

최 의원은 2010년 12월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는데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의 감찰을 막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임은정 검사가 당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봐 달라는 법무부 감찰 담당 검사의 부탁을 받았고 서 검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최 의원이 임 검사를 불러 “당사자는 가만있는데, 왜 들쑤시냐”고 혼을 냈다. 역시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경향신문은 “조직문화 때문에 검사들이 어렵게 문제를 제기해도 묻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 검사는 이 신문에 “대검 감찰본부에서 이따금씩 자기가 겪거나 들은 성폭력 사례들을 조사하지만 이후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가해자가 처벌받는 등 후속조치는 없었다”며 “서 검사 사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검찰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검찰 조직에 대해 이와 다른 목소리도 존재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정유미 서울중앙지검 공판3부 부장검사는 지난달 31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 “여전히 부당한 성적 괴롭힘은 암암리에 존재할 것”이라며 “다만 이 말씀은 드리고 싶다. 우리는 더 이상 조직 내의 성적 괴롭힘 문제에서 미개한 조직이 아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가해자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정 부장검사는 “18년 동안 조직은 많이 바뀌었다”며 “혹시라도 후배님들이 ‘참아라’, ‘너만 다친다’ 하는 반응이 우리 조직 내의 일반적인 반응인 것으로 오해해 혼자만 힘들어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는 글 말미에 “그러나 피해를 당했으니 서울로 발령 내 달라, 대검 보내 달라, 법무부 보내 달라 등의 요구를 하신다면 도와드릴 수 없다”고 썼다.

이날 경향신문은 성폭력 문제와 조직문화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 신문은 1면에서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안 전 검찰국장의 성추행을 여러 검사들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며 ‘미퍼스트’ 운동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문 판사는 “한 명이라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하며 제지한다면 이런 일은 없다. 나부터 그 한 사람이 되겠다”며 ‘#Me First’라고 해시태그를 달았다.

경향신문은 4면 기사에서도 “주변 동료들이 불이익을 우려해 함께 맞서지 못하거나 ‘피해자들의 과민반응’ 정도로 치부할 때, ‘다수의 침묵’은 말 없는 항변이 아닌 ‘공동 가해’가 될 수 있다”며 “반대로 목격자의 개입은 성폭력을 막거나 더 큰 폭력으로 가는 것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 1일자 경향신문 만평
▲ 1일자 경향신문 만평

목격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 중에는 권력문제도 있다. 이 신문은 “현장의 동료 역시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가해자 앞에서 ‘을’인 경우가 많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블라인드 앱에는 최근 현대글로비스 사장이 사원들과 회식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신문은 “현행법상 모든 노동자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직원들은 댓글에서 이런 법규를 들며 사장을 비난했지만, 이 기업의 예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갑’의 행동을 교정하는데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라며 “‘몰라서’가 아니라 우월적 지위 덕에 용인되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주변 목격자들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다른 기사에서 “목격자들의 대응은 직장 내에서 더욱 심한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엑스테인이란 연구자는 “가해자들은 대개 부적절한 농담과 신체접촉을 여러 차례 하면서 어디까지 용인되는지 시험해본다”면서 ‘당신이 ○○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왜 그랬어요?’라고 물어봄으로써 더 이상의 공격적인 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깨야한다는 내용도 다뤘다. 서지현 검사는 대리인을 통해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에 주목할 게 아니라 혼자만의 목소리를 냈을 때 왜 조직이 귀 기울일 수 없었는지 주목해달라”며 “검사로서 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 저는 제 피해를 법적 절차에 따라 구제요청하지 못했다.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며 “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 깨기, 성폭력 범죄에 대한 편견 깨기부터 시작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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