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강상현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취임사는 ‘파격’이었다. 형식적으로 업무과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 앞에서 방통심의위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자정’을 촉구하고 ‘적폐청산’ 의지를 드러냈다.

강상현 위원장은 “새 정부 들어 언론정상화, 공영방송 정상화 등 정상화란 말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왔다. 우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면서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심의기관의 독립성이 종종 의심받아 왔다. 심의 결과에 대한 법적 소송에서 패소하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는 ‘심의위를 심의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강상현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제는 이런 우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우리 스스로의 적극적인 자정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있을 개헌 논의에서, 그리고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우리 위원회의 위상과 입지가 아주 약화되고 위축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 강상현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강상현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면서 강상현 위원장은 “적폐청산도 이러한 방향에서 추진해 나가겠다”면서 “본연의 설치 및 운영 목적에 더욱 부합하도록 조직과 인사, 제도 및 규정을 바꾸어 나갈 것이며, 그러한 목적에 배치되는 부분을 ‘적폐 청산’ 차원에서 정리 및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취임사 내용은 현장을 취재한 PD저널을 제외한 매체에서는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반면 2014년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취임 때는 구체적인 취임사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지난 30일 방통심의위 홍보팀은 기자들에게 4기 방통심의위 출범 보도자료를 내면서 취임사를 첨부하지 않았다. 어느 기관이든 기관장이 취임하면 취임사 전문을 메일로 보낸다. 방통심의위도 박효종 위원장이 취임했던 2기 때는 취임사 전문을 보도자료와 함께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전달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방통심의위는 4기 출범 소식을 담은 보도자료에 취임사 내용을 일부 넣었다. 그런데 ‘적폐청산’이나 ‘자성’과 같은 중요한 내용은 빠진 채 “새 규제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내용과 “국민 하수인이 아닌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구가 되도록 노력해달라”는 원론적인 내용만 두 문단 넣었다.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를 쓴 다수의 기자들은 ‘알맹이’가 빠진 보도자료 속 취임사만 기사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방통심의위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30일 오전 방통심의위 홍보팀 관계자에게 “취임사를 달라”고 하자 “조직 내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그거는 빼고 전문을 주는 대신 보도자료에 녹여서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PD저널 기자 역시 취임사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방통심의위 홍보팀은 전문을 줄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취임식이 열린다는 소식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4기 취임식은 30일 오후 4시에 열렸는데, 4기 출범 보도자료는 출입기자들에게 오후 3시55분에 배포됐다. 이전에 홍보팀은 취임식과 관련한 연락을 출입기자들에게 돌리지 않았다. 따라서 알음알음 일정을 알고 있었던 기자를 제외한 출입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포기하거나 뒤늦게 현장으로 향했다. 

▲ 3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보도자료.
▲ 3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보도자료.

즉, 홍보팀이 취임사 전문을 기자들에게 보내지 않고, 일정을 알리지 않으면서 보도자료에는 자신들이 직접 ‘게이트 키핑’한 내용을 담았다. 결과적으로 현장과 온도차가 큰 기사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강상현 위원장은 취임식 때 ‘자정노력’을 당부하며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축소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직설적으로 풀면 지금 자정하지 않으면 조직의 존폐를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의미다.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겠지만 방통심의위는 청산해야 할 적폐가 산적해 있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정치심의를 일삼고, 청와대와 국정원 등 정치권력, 정보기관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잘못된 심의로 피해자가 양산되기도 했다. 4기 방통심의위 시작부터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숨기기 급급한 이들에게서 ‘자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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