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필요합니까. 7개월째 놀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없네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공백이 이어질 당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8개월 동안 역대 최장 기간 ‘공백’이 이어졌지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4기 방통심의위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9일 구성됐다. 방송과 통신 분야 심의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로 이명박 정부 때 방송위원회의 심의 파트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의 조직이 통합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종속돼 ‘청부심의’ ‘자판기 심의’ ‘정치심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권이 교체되고 위원장이 바뀌었지만 방통심의위가 정상화된 건 아니다.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30일 취임식에서 “조직과 인사 제도 및 규정을 바꿔나갈 것이며 그러한 목적에 배치되는 부분을 적폐청산 차원에서 정리 및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개혁 드라이브’를 건 것도 지금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 지난 30일 취임식에 참석한 방송통신심의위원들. 왼쪽부터 김재영, 이상로, 이소영, 전광삼, 허미숙, 강상현, 윤정주, 박상수, 심영섭 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30일 취임식에 참석한 방송통신심의위원들. 왼쪽부터 김재영, 이상로, 이소영, 전광삼, 허미숙, 강상현, 윤정주, 박상수, 심영섭 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4기 방통심의위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적폐청산이다. ‘이명박근혜’ 정부 동안 문제적 심의안건이 어떤 경로로 상정됐고, 제재가 내려졌는지 조사해야 한다. 아울러 여러 문건과 정황증거로 드러나고 있는 청와대, 국정원 등 권력·정보기관과의 결탁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면서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특히 ‘제3자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이 박효종 전 위원장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 작품이라는 점이 문건에 드러난 만큼 규정을 재논의 할 필요성도 있다.

4기 심의위원들이 현 시스템 내에서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것과 별개로 방통심의위 조직의 필요성부터 근본적으로 따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방송 내용에 대해 정부가 규제에 나서는 방식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실상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으로 검열의 위험이 높다”면서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단체로 이양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지만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조직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축소’ 및 ‘개편’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인터넷상 정치적 표현의 자율 규제 전환’을 정책과제로 제시하는 등 정부 기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방송 심의의 경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정치권에서 추천한 다수 위원들의 의사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방송 공정성 심의에 대한 새로운 모델제시’를 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통심의위지부장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방송의 공정성이 무엇인지 사회적인 합의부터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절대 다수인 6:3구도를 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낙인 전 방통심의위 상임위원은 2014년 토론회에서 여야 동수 추천 후 대법관 추천을 별도로 두는 ‘중립지대’ 구성을 제안하면서 심의의 정파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흔히 문제가 되는 오보, 막말, 편파방송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해 객관성 위반이 문제가 되는데 이는 비교적 심의 근거가 명확한 편”이라며 “반면 (논란의 소지가 큰) 공정성만 적용해야 하는 심의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심의를 할 경우 시민배심원제와 같은 제도를 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심의는 어떨까. 방통심의위는 최근 ‘선정적 인터넷 방송’ ‘리벤지 포르노’ 문제에 적극 대응하면서 통신심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조직의 필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피해구제가 필요한 통신분야 심의는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면서 “특히 최근 논란이 된 리벤지포르노 문제에 방통심의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금준경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금준경 기자.

그러나 통신심의의 경우 자의적인 판단 여지가 큰 ‘유해정보’와 명확한 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정보’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낙인 전 방통심의위 상임위원은 “음란물, 공문서 위조, 마약거래, 성행위 동영상 등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문제는 자율심의에 맡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손지원 오픈넷 자문변호사는 “심의규정 개정 등을 통해 심의 대상 정보의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면서 “‘유해정보’ 심의를 없애고, 심의 대상 정보를 디지털 성폭력물과 같은 ‘명백한 불법정보’로 한정해서 심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지원 변호사는 또한 “연간 20만 건, 한 회의당 1600여건, 1주일 3200여건의 사이트나 게시물이 삭제, 차단되는데, 위원들이 다 검토할 수가 없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권한만 늘려놓으니 졸속심의, 마구잡이 심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끊임없이 존립에 위협을 받아온 방통심의위는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3개 학회에 ‘스마트 미디어 시대’를 명분으로 온라인 규제 확대를 시사하는 연구를 의뢰하기도 했다. 강상현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없다면 개헌,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위원회의 위상과 입지가 약화되고 위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은 ‘규제 명분’이 아니라 ‘자성’이고 이를 이끌어내는 게 4기 방통심의위의 최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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