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미디어의 ‘블록체인’ 담당 기자인 나는, 요즘 취재를 하며 심장이 펄떡인다. 정치부 말진으로 총선을 치렀을 때도, 법조 출입을 하며 여러 재판을 봤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흥분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블록체인 기술이 ‘패러다임 전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제기하다

20대 초, 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할만 한 사건을 직접 겪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시스템들은 꽤 견고해 보였다. 거대한 전환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 뿐. 직접 경험 하는 행운을 누리기엔 인류사에서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빨리 태어난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섣부른 판단이었다. 취재를 하며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시스템에 낸 균열들과 매일 마주한다. 균열의 모습은 다양하다. 실체 없는 말 잔치에 불과하거나 돈에 홀린 광기에 가까운 것도 있다. 하지만 ‘매혹적인 변화’ 역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됐다.

최근 입소문이 나고 있는 SNS 플랫폼 ‘스팀’, 기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저널리즘 실험 ‘시빌’, 에너지프로슈머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에너고랩스, 에스토니아가 2015년부터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발급하고 있는 디지털 영주권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는 이미 수없이 많다.

▲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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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들이 기존 시스템과 다른 점은 탈중앙, 분산형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중앙집중형 요소를 지녔다. 블록체인이 등장하기 전 인류는 신뢰를 보증할 완벽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이 신뢰를 담보할 제3자를 중간에 세우는 것이다. 제3자는 누구나 믿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앙집중형 기관이나 거대 플랫폼이 맡았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신뢰 매커니즘’이다. 기계적으로 신뢰를 보증한다. 자연히 신뢰를 보증할 제3자의 필요성도 없다. 바야흐로 중개자 없이 서로 검증하고 신뢰를 보증하며 개인과 개인이 직접 만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곳엔 이종(異種)을 넘어선 다종(多種)의 사람들이 있다

블록체인 씬(scene)을 매력적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이 씬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시절부터 블록체인 개발에 몰두해온 개발자부터 암호화폐 투자로 수백억을 번 자칭 ‘크립토웨일’까지. 취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두 부류가 있다. 탈중앙, 자유,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가즈아!’를 외치는 사람들이다. 양쪽 다 기존 시스템이 제시하지 않는 이종(異種)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한 씬에서 이토록 이질적인 두 부류가 시너지를 내는 모습을 보는 일은 흔치 않으리라.

최근에는 블록체인 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이종을 넘어 ‘다종적’이란 생각이 든다. 씬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과 신념에 따라 프로젝트를 벌이고, 참여한다. 그 양상은 프로젝트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씬에서는 국가조차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다. 게다가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씬에 뛰어든다. 이종을 넘어선 다종의 사람들이 모인 곳, 블록체인 씬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물론 블록체인이 당장 세상을 바꿔놓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 모든 시스템을 대체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 한수연 블로터 기자
▲ 한수연 블로터 기자
블록체인 씬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앞으로 무수한 실수와 실패를 겪을 것이다. 발생 가능한 모든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이 기술을 사려 깊게 비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날이 머지않았길 바라며, 그날까지 독자들에게 이 씬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소중한 가능성의 발견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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