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전 한겨레 기자가 청와대 신임 대변인이 됐다. 언론인 출신이 청와대로 가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로 많았다. 현직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폴리널리스트’에 대한 비판도 숱하게 쏟아졌다. 최근 들어 달라진 풍경은 비판의 강도가 예전에 비해 덜하다는 것이다. 워낙 많은 언론인들이 청와대와 국회로 직행했기 때문에 벌어진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기자’ 김의겸의 ‘청와대 대변인’으로의 변신은 한국 언론에 적지 않은 고민과 숙제를 던지고 있다. 한 언론학자는 “어제까지 기자 옷을 입고 권력에 질문하던 자가 오늘 옷을 바꿔 입고 권력의 편에서 답변한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언론인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기본 사명으로 한다. 나름의 상황과 배경이 있더라도 이 같은 비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 김의겸 한겨레 기자. 사진=김도연 기자
▲ 김의겸 한겨레 기자. 사진=김도연 기자
하지만 이런 비판과는 다른 차원에서 김의겸 전 기자의 청와대행은 한국 언론계에 큰 상실감을 준다. 그는 한겨레 특별취재팀을 이끌며 ‘최순실 게이트’를 집중 조명했던 특종기자였다. 상실감의 강도와 폭이 크고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김의겸 ‘기자’는 최순실의 존재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을 제기했던 능력 있는 언론인이었다. 그런 그가, 왜 언론계에 남지 않고 청와대로 가는 길을 택했을까? 청와대행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이제 한국 언론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됐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언론인들은 현직에서 바로 청와대나 국회로 진출하는 비율이 높다. 이때마다 정치권으로 이동한 언론인들은 언론윤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현직에 있다 정치권으로 직행한 언론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판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 말 그대로 ‘폴리널리스트’였다는 얘기다. 언론사 기자로 있을 때 썼던 기사와 칼럼 등이 자신의 정치권 진출을 위한 도구 아니었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대변인을 지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오전에 KBS 간부회의를 하고 오후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지난 2014년 2월6일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014년 2월6일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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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의겸 신임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예전 ‘폴리널리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그는 청와대로 가기 몇 달 전, 한겨레에 사표를 제출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 대변인으로 거론된 적이 있지만 그는 최소한의 거리두기를 했다. 그가 현직에 있으면서 썼던 기사들 또한 특정 정치권력을 편드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폴리널리스트’와 맥락과 결이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 주장이 타당하다 해도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이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자신이 기자로 있으면서 썼던 기사와 칼럼의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의심은 강도 높은 비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언론인 출신 청와대 대변인이 감내해야 하는 최소한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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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했던 특종기자가 현직 언론인으로 남지 않고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는 ‘현실’은 한국 언론으로선 비극이다. 후배로부터 신망을 받았고, 언론계에서도 능력 있는 기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렇다. 청와대행은 그의 ‘개인적 선택’일 수 있지만 한국 언론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낮다. 도덕성과 윤리적 측면에서도 독자와 시민들에게 강한 불신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능력 있고 신뢰받는 언론인’이 현직에 많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신뢰받는 언론인’이 적기도 하거니와 현직에서 주요 보직을 맡지 않으면 언론인 생명이 사실상 끝나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는 이상이 없는 것인가. ‘폴리널리스트’ 논란과 별개로 한국 언론 환경과 취재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는 없는 지 점검하고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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