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형량은 정유라씨가 독일에서 탄 첫 번째 7억원 짜리 명마 ‘살시도’가 결정할 지도 모른다. ‘삼성전자가 언제 최순실씨에게 살시도를 사줬느냐’에 따라 재산국외도피죄의 최소 법정형이 징역 10년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재산국외도피죄는 특검이 1·2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할 수 있었던 근거였다. 재산국외도피죄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을 위법하게 이동시키거나 은닉한 범죄다. 그 금액이 50억 원 이상일 때 법정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특검은 삼성전자가 정유라 승마 지원에 지급한 78억 여 원을 전부 재산국외도피 금액으로 본 것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10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혐의 등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10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혐의 등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① 정유라가 탄 ‘살시도’, 처음엔 최순실 것 아니었다?

1심에서 인정된 재산국외도피 금액은 42억 원 가량이 감소한 37억 여 원이다. 판단 이유는 ‘2015년 9~10월 경 구매한 살시도와 각종 차량이 최씨 소유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시도는 최씨가 ‘윗선에서 삼성이 말 사주기로 다 결정이 났는데 왜 삼성 명의로 했냐’고 화를 낸 11월에야 최씨 소유가 된 것이라 봤다. 삼성의 승마 지원이 최씨 사익에 대한 지원임을 인정하면서도 세부 사유에 따라 일부 금액은 제외시킨 것이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어떨까. 2심 재판부가 특검 주장처럼 승마지원 전 금액을 ‘삼성 승마단’ 후원이 아닌 최씨 측에 대한 증여이자 지원으로 본다면 이 부회장의 형량은 감소할 여지가 줄어든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이건 VIP가 말(살시도) 사주라고 한 것인데 세상에 알려지면 탄핵감’이라고 말한 것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통령 지시를 받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전화로 승마지원 감사인사를 전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삼성의 승마 지원이 공식 승마단이 아닌 정씨를 위한 지원이라는 특검 주장을 강화하는 증거다.

② 미르·K스포츠재단 후원, 공익 후원이었다?

뇌물 혐의에서 제외된 미르·K스포츠재단 후원금 204억 원도 관건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대통령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후원금을 지급했고 재단 배후의 최씨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봤다.

▲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주범 비선실세 최순실이 2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주범 비선실세 최순실이 2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당시 법조계 일각의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김성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능동적인 자금 제공은 뇌물죄의 요건이 아니”라며 “재단 지원을 거부했을 경우, 대통령으로부터 기대하는 협조를 얻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이상, 돈을 내는 것과 대통령으로서의 직무권한 매수와는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비판했다. 승마지원 회사,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배후는 파악하면서 재단의 배후만 몰랐다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삼성 측은 항소심을 통해 사회공헌적 후원금 논리를 강화했다. 문화·체육 분야 육성은 박근혜 전 정부의 국정과제인데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요청은 기업에겐 따를 수밖에 없는 “강력한 요청”이었다는 점이다. 삼성 측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 제고라는 부수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 후원을 결정했다”면서 “공익적 측면에서 지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구형 전 “최서원을 위해 고가의 말을 사주고 거액의 자금을 공여한 행위, 최서원의 사익 추구를 위해 만든 사단과 재단에 거액의 계열사 자금을 불법 지원한 행위를 ‘사회공헌활동’이라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모독”이라며 “그들은 다른 사회공헌활동에서 행하는 후원이나 지원 여부에 대한 검토나 검증 등 내부적 절차도 무시한 채, 이 사건 금원을 지원하는데 급급했다”고 밝혔다.

재단에 대한 뇌물공여 인정 가능성이 1심보다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특검이 항소심에서 ‘단순뇌물공여’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면서다. 특검은 기소 당시 재단을 뇌물을 받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 보고 ‘제3자 뇌물공여죄’만 이 부회장에게 적용했다. 단순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가 모두 적용된 상황에서 재판부가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도 이목이 쏠리는 지점이다.

③ 범죄 전면 부인하는데 ‘반성 여지’ ‘경제발전 이바지’ 언급될까?

1심 재판부 선고 후 법조계 일각에선 ‘기계적 형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가중처벌 요소가 확인됐음에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1심 재판부는 뇌물 공여를 업체 간 후원 체결 등의 ‘합법적 계약’으로 가장한 범죄수익은닉죄를 인정하면서도 이 부회장을 제외한 다른 피고인들의 형량을 감경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등 부정청탁으로 지목된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이 “그룹 및 각 계열사 이익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는 점도 감형 요소로 반영됐다. 이 부회장 등 삼성전자 측 피고인 5인이 혐의를 전면 부인한 태도나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에게 지휘·감독 책임을 지우는 태도도 양형에 반영되지 않았다.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등이 참여한 이재용 엄중처벌 촉구 참가자들이 2017년 12월27일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이재용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2357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사진=반올림 제공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등이 참여한 이재용 엄중처벌 촉구 참가자들이 2017년 12월27일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이재용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2357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사진=반올림 제공

1심 선고 후 여권 인사 및 법조계를 중심으로 ‘3·5 법칙’ 우려가 제기됐다. 3·5 법칙은 지난 동안 사법부가 기업인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가 2심에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풀어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용어다. 변호사 출신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고 직후 CBS 라디오에 출연해 “공개된 판결문을 보면 고려할 만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어 2심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반성의 여지’ 혹은 ‘경제발전 이바지’ 등의 양형 이유가 등장할 지 여부도 관심이 쏠린다. 가까운 예로 횡령·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은 지난 23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기울어 가는 토종 피자기업을 살릴 마지막 기회를 뺏는다면 가맹점주에게 가혹한 피해를 초래한다”며 “횡령·배임 피해액의 상당 부분이 회복됐고 6개월간 구금으로 반성의 기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또한 특검의 2심 구형 공판 바로 전날 횡령액 80억 여 원을 변제했다. 1심 재판이 시작된 지 8개월, 2심 재판이 시작된 지 3개월 여가 지난 시점이다.

특검은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및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징역 10년,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특검은 “△피고인들이 제공한 뇌물의 액수 △뇌물의 대가로 취득한 이익 △횡령 피해자인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끼친 피해 규모 △횡령액 중 상당 금액이 아직 변제되지 않은 점 △국외로 도피시킨 재산의 액수 △피고인들이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은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등 뇌물 혐의 사건 선고 공판은 오는 2월5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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