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전 한겨레 기자가 청와대 신임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한 언론학자가 비판을 제기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의겸 전 한겨레 기자가 결국 청와대로 간단다”라며 “김 기자는 작년 여름 한겨레에 사표를 냈단다. 덕분에 ‘현직 기자’가 ‘행정부로 직행’하는 사태는 피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입 안이 쓰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 언론은 여러 문제를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최악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제까지 기자 옷을 입고 권력에 질문하던 자가 오늘 옷을 바꿔 입고 권력의 편에서 답변한다”며 “이런 선배를 보고 후배 기자들은 뭘 배울까. 이런 길을 가려는 기자들이 있는 언론사를 보면서 시민들은 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나는 일간지 국장급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는 일은 대법관이 대형 로펌에 가는 것만큼이나 웃기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KBS고 SBS고, 동아일보고 한겨레고 마찬가지다. 중앙 언론사에서 ‘잘 나가던’ 기자들일수록 이런 오퍼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오퍼를 거절하지 않는 게 우리 언론이다. 그런 길을 오히려 찾아다닌다”고 지적했다.

▲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이 교수는 “민경욱, 이동관, 윤창중 ... 이 찬란한 명단에 김의겸이 이름을 올리다니”라고 개탄한 뒤 “언론인 스스로 자기 전문적 정체성을 망치는 일이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을 강화하고 언론직의 기회주의를 조장하는 일”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이어 “이런 일이 반복하는 한, 언론 개혁이고 뭐고 소용없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기자가 스스로 자기가 몸 담았던 업을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하는 지경인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현장의 취재 기자를 만나 보면 한국 언론에 대한 염려가 많다”며 “며칠 취재해서 기사 몇 개씩 써야 하는 험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회사 사정을 염려하고, 한국 언론을 걱정하고, 저널리즘의 미래에 불안해한다”며 “저는 말해 주고 싶다. 여러분 선배들을 걱정하세요. 기회만 오면 정부 부처로 또는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서 여러분을 상대하는 일을 맡는 선배들을 걱정하라”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의 경우) 간혹 ‘전직 언론인-대변인’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예외적”이라며 “백악관 대변인이란 자리 자체가 엄청난 전문적 정무직이라서 대통령과 함께 정치 캠페인을 몇 개씩 경험했던 이른바 ‘소통국장’이 주로 그 일을 맡는다. 소통국장이란 선출직 정치인을 도와 선거 운동과 공중 관계 총괄을 담당하는 자”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청와대나 정부 고위 관료로 진출해 나라를 망친 비율을 따진다면 교수들이 더 하지 않느냐’는 한 페이스북 유저 질문에 “저는 김의겸 전 기자가 나라를 망쳤다라거나 망칠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며 “그게 요점이 아니다. 김의겸을 포함한 일련의 ‘현직에서 권력으로 자리를 옮기는 기자들’ 때문에 언론이 입을 피해를 염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 기자 출신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다른 각도로 사안을 바라봤다. 최 기자는 페이스북에 “(KBS 앵커 출신) 민경욱(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오전까지는 KBS 소속이었다가 오후에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이 된 것이고, 김의겸은 한겨레에 사표를 내고 몇 달 뒤 청와대 대변인이 됐다. 이것은 큰 차이”라며 “언론인 출신 대변인이 들어오는 과정에 인터벌(시간적 간격)을 둔다는 것은 권력과 언론의 거리두기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권력과 언론의 관계 설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거리두기”라고 말했다.

최 기자는 “주목해야 할 것은 김의겸 대변인 이후의 한겨레 논조, 기사의 편집 등”이라며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이 대변인이 된 적이 있지만 한국처럼 바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우려를 표시하는 언론도 거의 없었다. 권력과 언론의 거리두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기자는 “뉴욕타임스는 본연의 리버럴한 논조가 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오바마 정부를 ‘대변인 때문에 빨아줬다’는 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며 “그런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략) 앞으로 잘한다면 김의겸 대변인이나 한겨레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의겸 신임 청와대 대변인. 사진=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의겸 신임 청와대 대변인. 사진=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김의겸 전 기자는 지난 29일 청와대 차기 대변인으로 내정됐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김의겸 대변인의 발탁은 주요 정책과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관계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메시지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때(지난해 청와대 대변인 제안을 받았을 때)는 현직 언론인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자리를 옮기는 것은 한겨레 윤리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청와대에도 부담이 될 것 같았다. (한겨레에서 퇴직한) 지금은 자유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9월 K스포츠재단 배후에 ‘비선실세’ 최순실이 있다는 그의 보도는 ‘최순실 게이트’ 포문을 열었던 특종이었다. 이후에도 김 전 기자는 한겨레 특별취재팀을 이끌고 최씨 딸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 보도 등으로 각종 기자상을 휩쓸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는 데 최순실 게이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김 전 기자의 거취는 언론 윤리와 직결돼 논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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