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이후 경찰 조직과 업무에 대해서도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현직 경찰관들은 MB 정권 이후 내부비판을 했던 경찰관들이 파면 해임된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책임자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경찰의 정보 수집 작성 배포 활동의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며, 그동안 국정원의 통제를 받으며 사실상 국정원의 민간인사찰 등의 손발노릇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 들어 출범한 경찰 개혁위원회와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등은 이 같은 사건의 규명과 제도개혁을 어떻게 할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비판했다가 파면당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경찰의 대 시민 사찰 등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정보 형사들의 정보수집 활동의 근거는 경찰 직무집행법에 ‘치안정보’를 수집하라고 돼 있으나 이를 넘어 관내 전반적인 주민 여론, 경찰 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동향 파악까지 한다”고 털어놨다.

채 전 서장은 일선 경찰의 정보과 형사들이 실질적으로 국정원의 통제에 놓여있는 구조도 비판했다. 그는 “경찰청부터 말단 경찰서 정보과가 ‘정보 및 보안업무기획·조정규정’에 의해 국정원의 예산 지원 및 업무의 기획 조정을 받도록 돼 있다”며 “국정원 예산이 말단 정보과까지 내려온다. 지휘 통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정원 직원들은 수시로 일선서 등에 와서 정보과 형사들이 수집 작성한 정보보고서를 들춰보고, 괜찮은 것이 있으면 자신들이 가져간다고 채 전 서장은 전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이 뽑아가서 그걸로 더 심층 정보 수집활동을 한다”며 “한마디로 경찰 정보과가 국정원의 손발”이라고 말했다.

채 전 서장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경찰의 민간인 사찰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라며 “항상 정보 업무를 공유하는데, 국정원이 정보업무에 관한 한 예산 및 지휘 통제를 할 수 있는 상급기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검찰로부터 수사권 독립을 하려는 하는데, 국정원으로부터 정보 업무 역시 독립해야 한다”며 “그동안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새로 털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쉬쉬하고 개혁의지가 별로 안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사권 독립을 위해 이 문제가 선행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국민이 위험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이 2010년 8월 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대통령표창장(오른쪽)과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받은 파면 인사발령통지서(왼쪽)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이 2010년 8월 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대통령표창장(오른쪽)과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받은 파면 인사발령통지서(왼쪽)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실제 국정원법의 ‘정보 및 보안업무기획·조정규정’(대통령령)의 제11조 1항은 국정원장이 각급 기관에 대해 연 1회 이상 정보사업 및 예산 보안업무 감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해놓았다.

이와 함께 채수창 전 서장은 이명박 정부 때 내부비판을 했다가 파면 해임됐던 경찰관들의 부당징계 과정을 재조사하고 명예회복 및 책임자처벌을 촉구했다.

채 전 서장은 “해당 경찰들이 이 같은 문제제기를 박근혜 정부에서도 했지만 귀담아 듣지도 않아 억울하게 지냈는데, 이번에 국정원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의심하고 추측했던 것이 경찰청에도 있었구나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며 “명단 나온 사람 9명의 파면 해임 경찰과 이 가운데 두명은 목숨을 잃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진상조사와 함께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채 전 서장은 책임자 처벌 필요성에 대해서도 “당시 허위사실로 감찰했던 사람들이 현직에 많이 있다”며 “이번에 피해자들이 많이 모여 큰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 경찰청 수뇌부에 대해 채 전 서장은 “이철성 체제의 경찰청 수뇌부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파면 해임 당시 해당 경찰들은 지역별로 골고루 선정하는 등 치밀하게 기획한 흔적도 있다. 이철성 청장이 이런 피해자,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든 직접 책임자는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스스로 돌아보고 국민 신뢰를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MB 정부 때 부당하게 파면 해임된 경찰들은 다음과 같다.

△박윤근 전 경기청 경사(2009년 4월 경찰 내부 게시판 글 썼다 파면)

△장재룡 전 충북청 경위(2009년 10월 내부게시판 글로 파면)

△양동열 전 서울경찰청 경사(2009년 11월 내부게시판 글로 파면)

△김흥현 전 부산경찰청 경사(2010년 1월 내부게시판 글로 파면)

△김명렬 전 인천경찰청 경위(2010년 6월 내부게시판 글쓰다 감찰 압박에 병사)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2010년 7월 조현오 서울청장의 검거위주 실적주의 반대했다 파면)

△정해권 전 광주경찰청 경위(2010년 11월 내부게시판 글로 파면) 

△천훈호 전 광주경찰청 경사(2010년 11월 내부게시판 글로 해임)

△김영대 전 충북경찰청 경위(2011년 8월 내부게시판 글을 쓰다 감찰 압박을 받아 명퇴 후 비관 자살)

한편, 전현직 경찰들의 경찰 내부개혁을 위한 모임인 ‘무궁화클럽’은 오는 31일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경찰 내부 블랙리스트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 가운데 일부는 복직했으나 사망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복직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개혁위원회 또는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이 같은 문제의 조사 및 제도개혁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개혁위 인권보호분과 위원으로 활동중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29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내부 비판을 했다가) 박근혜 정권 막판인 지난해 4월 파면된 사람이 표정목씨로 지난 정권에서 파면된 마지막 경찰”이라며 “그만큼 이 문제는 경찰의 인권침해 진상조사를 해야 할 사항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오 국장은 “MB 정권 이후 경찰이 부당하게 징계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원상복구를 해야할 일”이라며 “다만 경찰 개혁위가 권고해서 별도로 설치된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할지, 우리 경찰 개혁위가 직접 다룰지는 고민”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경찰 정보예산을 통제하며 정보담당 경찰을 사실상 국정원의 정치정보 수집이나 민간인 사찰의 손발노릇을 하게 해왔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오 국장은 중요한 문제로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오 국장은 “경찰 개혁위원회 산하에 정보경찰 개혁소위원회가 구성돼 있는데 아마도 거기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그 문제도 중요하다. 국정원의 경찰 통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정보경찰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경찰 직무집행법에 나온 ‘치안정보’에 대해 오 국장은 “치안정보의 수집 작성 배포라고 돼 있는데 그 근거가 나와있지 않다”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정보활동을 해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무궁화클럽이 오는 31일 발표할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MB정권, 파면·해임시킨 경찰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전.현직 경찰관 동료 여러분!

MB정부 당시인 2009년~2011년 사이 정권실세들은 국정원 등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탄압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국민의 집결된 힘에 놀란 MB정부는 자신들의 부도덕한 정권을 지키기 위해 각계에서 여론을 선도하며 비판적인 사람들을 가려내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경찰고위직으로 임명한 다음, 경찰조직을 정권을 지키는 충견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공작을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경찰 내부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경찰관을 상대로 집중 감찰을 실시한 다음, 온갖 누명을 씌워 파면. 해임시켰습니다. 당시 여러명의 경찰동지들이 억울하게 공직학살을 당하고, 경찰에서 쫒겨 났으며, 그 중 2사람은 의문사까지 당하였습니다. 정해권 경위의 경우는 재심 신청 중인데, 광주경찰청의 편협적인 수사로 인해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다시는 자신들의 정권보위를 위해 경찰조직을 충견으로 길들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동료, 부하 경찰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조직에서 내쫒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전.현직 경찰관 동지 여러분!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눈앞에 다가 왔습니다. 국민에게 진정으로 신뢰받는 수사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경찰관들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MB정부에서 자행된 경찰관 공직학살 블랙리스트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어야 합니다.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공직학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이제라도 과거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새로운 경찰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경찰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촉구문

1. MB정부 당시 경찰관을 파면, 해임시킨 블랙리스트를 공개하라!

2.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블랙리스를 작성한 책임자를 처벌하라!

3. 과거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을 사죄하고, 국민의 신뢰받는 경찰로 다시 태어나라!

<MB정부 당시 정치적으로 파면·해임된 경찰관 명단>

1.2009년 4월 경기청 경사 박윤근(무궁화클럽 운영진),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파면

2.2009년 10월 충북청 경위 장재룡(폴네티앙),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파면

3.2009년 11월 서울청 경사 양동열(무궁화클럽 운영진),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파면

4.2010년 1월 부산청 경사 김흥현(무궁화클럽 회원),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파면

5.2010년 6월 인천청 경위 김명렬(무궁화클럽 운영진),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감찰의 압박으로 병사

6.2010년 7월 강북서장 채수창, 검거위주 실적주의 반대로 파면

7.2010년 11월 광주청 경위 정해권(무궁화클럽 5대 회장),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파면

8.2010년 11월 광주청 경사 천훈호(무궁화클럽 회원),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해임

9.2011년 8월 충북청 경위 김영대(무궁화클럽 운영진), 내부게시판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감찰의 압박을 받아 명퇴 후 비관하다 자살

2018년 1월 31일 무궁화클럽 공동대표 조규수, 채수창, 김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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