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파인테크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는 3년 전 사내하청업체 노조 와해를 정말 주도하지 않았을까.

“2015년 3월5일 AFK(아사히글라스 영문표기) 사업소 주간업무 보고서에 ‘차헌호 동향–별도보고’라고 적혀 있는데 차헌호 동향에 대해 보고한 자는 누구인가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 근로감독관은 2016년 5월, 아사히글라스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수사하면서 사내하청업체인 ‘(주)GTS’ 관리자 김아무개 차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차헌호’는 아사히글라스 내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던 GTS 소속 직원으로 현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조(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위원장이자 해고노동자다.

관련기사 :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가 검사를 고발한 이유
관련기사 : “노무사 양심 걸고… 아사히글라스 노조 파괴 행위 저질렀다”

▲ 2015년 3월5일 자 'AFK(아사히글라스) 주간업무보고서' 안에 '차헌호 동향 - 별도보고' 문구가 기재돼있다.
▲ 2015년 3월5일 자 'AFK(아사히글라스) 주간업무보고서' 안에 '차헌호 동향 - 별도보고' 문구가 기재돼있다.

‘AFK 사업소 주간업무 보고서’는 GTS가 노조가 생기기 전부터 직원들의 노조 설립 동향을 감시·파악한 증거다. 아사히글라스 하청노조는 2015년 5월29일 설립됐음에도 두 달 전인 3월 초부터 회사가 차 지회장을 감시한 정황이 문건으로 포착된 것이다. 노조 설립을 감시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속한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아사히글라스 부당노동행위 수사 관련 문건에 따르면 동향 보고가 확인된 선은 하청업체 GTS 사장까지다. 그러나 각종 진술, 정황 등을 종합하면 보고라인 끝엔 원청 아사히글라스가 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회동 발각→동향 보고→권고 사직→업체 폐업’… 원청 개입 안했다?

왜 3월5일에 동향보고가 남겨져 있을까. 차헌호 지회장은 그보다 일주일 여 전 인근 식당에서 노조 설립을 논의하다 GTS 관리자에게 발각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차 지회장은 2월27일 아사히글라스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떨어진 식당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제안하기 위해 동료 직원을 만나던 중 GTS 관리자 장아무개 과장을 맞닥뜨렸다. 장 과장은 “여기서 뭐하냐”고 물었고 차 지회장은 “식사하러 왔다”고 답했다.

이후 3월4일, 노조 제안을 받았던 동료직원 두 명은 ‘식당에서 장과장을 만난 이후로 사무실에 있는 관리자 눈빛이 다르다’ ‘작업조 리더가 ’차헌호는 위험인물 리스트 1번이니 만나다가 너에게까지 불이익이 가니 만나지 말라‘고 했다’ 등의 말을 차 지회장에게 말했다. 차 지회장은 이후 두 직원을 만나지 못했다.

동향 보고가 작성되고 15일이 지난 3월20일, 공교롭게도 원청 아사히글라스는 차헌호 지회장이 속한 COLD 공정에 한해 GTS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원청 자매사에 잉여인력이 발생해 이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차 지회장에 따르면 GTS는 공장 설립 때부터 해당 공정을 맡았고 차 지회장 또한 6년 간 같은 공정에서 일해온 터였다.

권고 사직은 4월13일부터 시작됐다. 차 지회장을 포함한 COLD 공정 내 GTS 직원 16명이 회사로부터 사직을 권유받았다. 대부분이 퇴사했다. 퇴직을 거부한 직원 4명 중 2명은 다른 공정 교대 근무로 배치됐고 차 지회장을 포함한 직원 2명은 ‘납땜 업무’가 주력인 새 하청업체에 고용이 승계됐다.

차 지회장은 이 과정에서도 GTS 관리자와 수차례 면담하면서 관리자로부터 경고성 메세지를 받았다. 관리자는 3월 중순 면담에서 '우리 GTS에 노조했던 사람이 있다' ‘니가 노동조합을 다 한 게 아니냐’ 등의 말을 언급했다.

결국 아사히글라스 하청노조가 설립됐지만, 노조 설립 3개월 만에 하청업체가 아사히글라스 내에서 사라졌다. 하청노조는 5월29일 설립됐다. 원청 아사히글라스는 한달 후인 6월30일, GTS에 그해 7월31일부로 도급계약을 중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계약 해지 후 8월31일, GTS는 하청노동자 전원을 정리해고했고 업체는 10월31일 폐업됐다.

“안했다” “모른다” 회사 진술 뒤에 숨은 수사기관

차 지회장은 “2월 관리자에게 회동이 발각된 후로 줄줄이 노조 방해 공작이 이어졌고 우리는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해왔다. 이걸 확인시켜주는 물증이 3월5일 동향문건”이라며 “3월20일 권고사직이 아사히글라스 부당노동행위의 출발지점이다. 나는 애초부터 고용노동청과 검찰에 이 사실을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GTS 관계자들은 해당 문건을 원청에 보고했느냐는 수사관 물음에 “알지 못한다”거나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GTS가 독자적으로 노조를 방해했는진 의문의 여지가 있다.

▲ 대구지방고용노동청, 대구지방검찰청 등 수사기관은 원청 아사히글라스 관리자가 하청업체 GTS 관리자에게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 대구지방고용노동청, 대구지방검찰청 등 수사기관은 원청 아사히글라스 관리자가 하청업체 GTS 관리자에게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항고장 등에 따르면 GTS측 자문 노무사 김아무개씨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원청의 하청노조 활동 방해 지시 사실을 경북지방노동위원회·고용노동부 구미지청·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원 등 조사기관 3곳에서 일관되게 증언해왔다.

김노무사는 자문을 하는 동안 GTS의 정아무개 사장이 원청 관리자에게 수시로 질책받는 사실을 목격했다. 아사히글라스의 김아무개 노무이사는 전화통화나 면담에서 ‘나는 노조 전문가고 정○○(GTS 사장)은 아마추어다’ ‘노조원이 증가하고 있는데 하청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노조 대응 소스를 주는데도 노조 관리가 안되고 있다. 정○○은 무능하다’ 등의 말을 정 사장에게 했다.

이 원청 노무이사는 GTS 임원들에게 ‘노조 가입 홍보 활동을 막아라’ ‘노조 사내 집회를 금지시켜라’ 등의 지시도 수시로 내렸다. GTS 측은 “쉬는 시간 노조 활동은 정당하다. 부당노동행위로 입건될 수 있으니 지시를 거부하라”는 노무사 자문에 따라 원청 지시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모두 고용노동청 및 검찰 조사에서 진술로 확인된 내용이다.

▲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이 2017년 9월 GTS를 대리했던 김아무개 노무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 중 일부. 원청 관리자의 '노조 와해' 지시 정황이 확인된다.
▲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이 2017년 9월 GTS를 대리했던 김아무개 노무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 중 일부. 원청 관리자의 '노조 와해' 지시 정황이 확인된다.

GTS의 한 현장 관리자는 원청 관리자들로부터 ‘하청노조 대응 안하고 뭐하느냐’ ‘조합원 술 사주면서 잠수타는 활동을 해라’ 등의 지시도 들었다. ‘잠수’는 적극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는 직원을 포섭해 조합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김 노무사는 이에 대해 “원청이 하청에 요구했던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하청이 따르지 않자, 원청은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물리적으로 노동자들의 사업장 출입을 저지했다”면서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은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미안한 심정과 공인노무사라는 직업적 양심을 가지고 진술한다”고 수사기관에 밝히기도 했다.

노조 방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원청의 김 노무이사는 차 지회장의 존재를 2012년 경부터 알았다. 김 노무이사는 수사과정에서 “2012년 경 차헌호가 민주노총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 듣고 차헌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며 “모범사원이고 리더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아사히글라스 측 관리자들은 수사과정에서 하청 노무관리와 관련된 대부분의 질문에 “알지 못한다” “관여한 적 없다”고 답했다.

김노무사는 노조 설립이 한창 문제였던 시기 원·하청 관리자 간 통화 횟수를 확인해보라며 수사기관에 말했다.

아사히글라스는 불법파견 및 부당노동행위 혐의와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대구지검은 지난해 12월22일 하청노조가 아사히글라스 및 GTS의 각 대표이사를 파견법 및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청노조는 이에 지난 22일 대구고등검찰청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항고장을 제출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일본에 본사를 둔 유리 제조업체로 구미국가산단4단지에 입주해있다. 사내하청업체 GTS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2015년 5월29일 노조를 설립했다. 이후 아사히글라스가 GTS와 7월 31일부로 도급계약을 해지하면서 170여 명의 GTS 소속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