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30일, 발인 날! 이제 세상에 남겨진 것은 ‘아이들과 나’ 우리 셋뿐이구나. 장례 버스를 타고 일산 EBS에 갔고, EBS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려던 순간 너무 화가 나서 EBS 사장님에게 물었다. ‘대체 이 사람들이 가고 우리에게 남은 게 무엇이냐고. 어떻게 해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EBS 사장은 이런 답을 줬다. ‘법무 팀에서 유족에게 연락을 드릴 겁니다’라고 말이다.

답이 없었다. 할 말도 없었다. 말문이 막혀 힘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 누구도 내 말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이어가지도 않았다. 나만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오영미 작가 ‘그대 잘 가라’ 111쪽)

죽음은 두 종류다. ‘남’의 죽음이거나 ‘너’의 죽음이다.

나와 무관한 ‘남’의 죽음 앞에 선 이들은 덤덤하다. 합리적이면서 냉정한 언어를 던질 수 있다. 사라진 또 하나의 세상을 추억하기에도 벅찬 유족을 상대로 목숨 값을 계산할 수 있다. 무거운 과제를 처리하는 과정이다.

‘너’의 죽음은 아프다. “허망했다. 허무했다. 하늘은 이미 무너졌다. 끝이 보였다. 끝나버렸다.”( 10쪽) “살갗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26일 출판기념회) “죽음은 권리도 특권도 아닌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고 있다.”(60쪽)

▲ 그대 잘 가라/ 오영미 지음/ 그러나 펴냄
▲ 그대 잘 가라/ 오영미 지음/ 그러나 펴냄

오영미 작가는 EBS ‘야수의 방주’ 촬영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 고 김광일 독립PD를 기억하기 위해 책 ‘그대 잘 가라’를 썼다고 했다. 떠난 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괴롭다. 한 몸처럼 지내던 ‘너’를 떼어내는 일과도 같다. 글쓰기는 거리두기의 다른 표현이다.

첫 해외여행, 마지막 가족여행

여행은 진한 추억이다. 오 작가는 김PD와 갔던 베트남 여행이야기로 책을 시작했다. 지난 2016년 10월 초 그는 무상휴가가 생겨 남편과 여행을 고민했다. 여행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은 불안정한 신분과 남편의 건강. 그렇지만 김PD는 당시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고, 하루를 살아도 오늘을 마지막처럼 열심히 살자. 지금 아니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김PD는 아이들의 여권 제작 등을 위해 선배한테 돈을 빌렸다. 10월6일~11일, 오 작가의 첫 해외여행지는 베트남 호찌민시였다. 쌀국수에 고수를 듬뿍 넣은 김PD에게 딸 다은이 물었다. “그건 뭐야?” “고수라는 식물이야. 먹어볼래?” “으~ 맛이 왜 이래” “다은이는 멀었구나” “응? 뭐가 멀었어?” “고수가 되려면 멀었다고”(34쪽) 이런 말장난 덕분이었을까, 딸은 고수를 조금씩 먹게 됐다. 김PD와의 첫 번째이면서 마지막 가족여행이었다.

김PD는 여행가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결혼 후부턴 그럴 수 없었다. 베트남 여행이 더 아련한 이유다. 사랑은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헤아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어릴 때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던 사람, 1960~70년대 음악을 좋아한 사람, 고기 중에선 삼겹살·생선 중에선 조기를 좋아했던 사람, 술을 포기하지 못 하겠다고 한 사람, 콩밥을 싫어했던 사람. 오 작가가 기억하는 김PD다.

▲ 2017년 7월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 사진=금준경 기자.
▲ 2017년 7월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 사진=금준경 기자.

독립PD의 삶

저자는 독립PD의 삶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저자 본인도 2005년부터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해 온 방송작가다.

“카메라 감독이 촬영을 하면 금액도 크고, 시간도 거의 정해져 있다. 근데 방송PD가 촬영 알바를 가면 새벽부터 촬영을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찍어도 왜 금액이 절반도 안 되는 15만 원 밖에 주지 않는지 의문이다.”(161쪽)

“일에 치이다 보니 생일도 챙겨줄 수가 없어 매번 미역국을 끓여 아이들과 그가 일하는 회사에 가서 먹이고 잠깐 얼굴을 보고 돌아오곤 했다. 아마 독립PD들은 다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갖고 있을 것이다.”(162쪽)

“아이템이 본사 CP(책임PD)에게 컨펌을 받아야 한다. 본사 CP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템일 경우 PD에게 화를 내거나 인격 모독의 말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독립(외주) 제작사에서 일하는 담당PD가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이다.”(163쪽)

“그의 사후에 들여다본 컴퓨터에서 제작 품의서를 보면, 연출료가 350만원, 조연출은 100만원, 메인작가는 300만원, 막내 작가는 120만원 정도 된다.”(165쪽)

방송사만 문제인가

김광일·박환성PD의 죽음 이후 방송계의 폭력적인 현실의 일각이 드러나고 있다. 독립PD들과 독립(외주)제작사들이 함께 방송사들의 ‘갑질’을 폭로해왔지만 문제는 방송사만이 아니다. 작가·독립PD 등은 독립(외주)제작사의 경영진들의 문제도 조만간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방송사의 불공정한 관행에 맞서지 않고, 자신의 제작사 소속 언론인들을 착취하는데 일조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 작가도 이를 지적했다. 그는 책에서 “본사의 갑질만 문제가 되고 있지만 독립(외주) 제작사의 행태도 꾸짖고 싶다”며 “본인들(경영진)의 입장부터 생각하고, 본사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면 독립PD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은 빠졌다. PD는 책임지고 프로그램을 놓아야 했으며 퇴출돼야 했다”고 했다. 몰래카메라를 들고 위험을 무릅쓰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릴 때 보통 신분조차 불안정한 PD나 작가들이 거대 방송사에 맞서야 했다.

‘살인적인 제작환경’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제작환경이 김PD를 살인했다. 방송 제작환경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는 살인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오 작가는 “이 사람(김PD)을 만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며 이 세상에 그 사람을 소환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의 뜻에 많은 이들이 연대했다. 책 뒤편에는 동료들의 글이 함께 실렸다.

“PD들 사이에서 PD는 ‘P=피나게 힘들고, D=더렵게 욕먹는사람’이라고 말한다.”(김원철 PD)

“독립PD는 죽어서도 가난하다. 국민연금조차 못내는 이들도 있다. 남아공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를 마련할 방법이 막막했다.”(한경수 PD)

“수백 개의 제작사, 천여 명의 독립PD들이 영세한 구멍가게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이렇듯 갑님이 택도 없는 제작비에 모든 권리마저 강탈해가기 때문이다.”(박봉남 PD)

“다큐PD는 늘 외로운 직업입니다. 이 책은 치열한 다큐 제작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독립PD를 남편으로 둔 아내가 부르는 망부가입니다.” (김영미 PD)

끝으로 김광일PD와 함께 세상을 뜬 고 박환성PD의 동생 박경준씨도 글을 남겼다. 그는 “박PD의 새로운 꿈은 대신 꿔줄 수 없지만 그의 마무리는 어떻게서든 돕고 싶다”며 “그래서 그의 삶이 오랜 기간 기억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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