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구로구의 한 자동차시트를 만드는 봉제공장 미싱사 A씨는 2018년이 되기 2주일 전 회사가 준 서명지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새해부터 식대가 제공되지 않고 연차는 공휴일로 대체하며 생산량은 지금보다 30% 늘린다는 방침에 동의를 구하는 서명지였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대신 월 15만원 식대가 사라졌고 노동일수와 노동강도가 더 늘어난 것이다. A씨는 2017년 160만 원을 받는 최저임금 노동자였다.

#. 서울 서대문구 B 사립대학의 청소노동자 C씨는 2018년 1월, 정년퇴직으로 생긴 16명의 공석을 시급 15000원을 받는 ‘단시간 알바’ 4명이 메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같은 일이 성북구의 D 대학, 도봉구의 E 대학, 중구의 F대학에서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C씨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 추측했다. C씨의 추측은 맞았다. B대학이 6개월 전 “정년 도래 인력에 대해선 신규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인건비 증가에 대응한다”는 최저임금 인상 대응책을 수립한 문건이 발견된 것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1030원 오른 2018년 새해, 전국의 최저임금 사업장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회사 측 대응에 신음하고 있다. 각종 수당을 기본급 계산에 포함시키거나 인력감축, 휴게시간 확대 등이 동원되면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제대로 확산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는 5일 본관 1층 로비에서 집회를 열고 학교 측의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방침에 항의하기 위해서다.ⓒ민중의소리
▲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는 5일 본관 1층 로비에서 집회를 열고 학교 측의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방침에 항의하기 위해서다.ⓒ민중의소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최저임금위반 신고센터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5일까지 전국 15개 노동상담 기관 상담 통계를 취합해 본 결과 상여금을 기본급화 하거나 수당 체계를 변경시키는 사례가 가장 빈번히 접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은 유효 표기 상담건수 2163건 중 최저임금 상담이 포함된 총 상담건수는 약 30%(약 649건)로, 최저임금 무력화와 관련된 실 상담건수는 약 15%(약 324건)로 비중을 추산했다. 실제 상담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 파악하고 있다. 기관별로 상담 기록 방식이 다르고 상담자가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정확한 통계 수치 추출이 어려운 탓이다.

민주노총은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의 경우 770건 상담을 접수했고 이중 ‘상여금 기본급화’ 사례가 40% 가량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상여금 외 수당 변경 △휴게시간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은 각각 10~13%내외를 차지한다고 파악했다.

상여금 기본급화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니 상여금을 전액 혹은 일부 삭감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경남 창원의 한 주물공장은 시급을 8500원으로 일괄 인상하면서 기존에 지급하던 상여금 500%를 삭감했다. 그러면서 공장은 동의하지 않는 직원에겐 퇴사할 것을 종용했다. 상담통계에 따르면 창원의 200인 규모 전자제품 하청업체, 진주 정촌공단 제조업체 등 제조업에서부터 전북의 한 민간병원, 광주의 가스배달원, 강릉 이마트 계산원 등 의료·서비스업에까지 같은 사례가 발견됐다.

경비업에서는 휴게시간 연장 꼼수가 가장 흔하게 발견됐다. 인천 부평의 한 제조업체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경비를 서는 야간조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무시간을 축소한다며 주당 4일로 근무일수를 축소했다.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들의 임금삭감이 우려돼 상담을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 인천의 한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들의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는 논의가 되고 있다’며 ‘막아내고 싶은데 아는 정보가 없다’며 노동상담센터에 연락을 해왔다.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업체도 적지 않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350명 규모 제조업체의 한 직원은 지난 4일 관리부장으로부터 “1월 말까지 다니라”며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공장 측은 350명 중 70명을 정리해고할 것이라며 ‘인건비가 6억 원이 인상돼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한 경비노동자가 인도에 쌓인 눈을 쓸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한 경비노동자가 인도에 쌓인 눈을 쓸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경남 사천의 한 서비스업체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들에게 직원 업무평가를 설문조사한 후 결과에 따라 정리해고 대상자를 결정할 것이라 공지했다. 경기도 지역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근무지로부터 2시간 떨어진 용역업체 관리 사무실로 대기발령을 받았다. 사실상 권고사직인 셈이다.

고용주 측이 일방적으로 이를 강행하는 것은 위법소지가 크다. 노동자 측에 불리하게 노동조건이 변경될 경우 직원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나 노조가 없을 경우 ‘과반수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임금항목, 임금지급방법 등 근로계약서에 규정된 내용을 변경하려면 개개인의 동의도 거쳐야 한다. 민주노총은 동의 절차가 생략되거나 해고 등을 거론하며 동의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상여금 외 수당 변경’의 경우 “수당을 삭감 및 폐지하는 안은 그 자체로 불이익변경”이라면서 “노사협의회에서 합의해 일방적으로 상여금 기타 수당을 삭감, 폐지, 기본급화하는 것은 무효다. 이를 제외하고 최저임금에 미달할 경우 최저임금법 위반이며 노동자는 미달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휴게시간 확대의 경우에도 박 노무사는 “개별 노동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휴게시간이) 취업규칙에 나와 있다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도 적법하게 거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해고 등 구조조정 상황에 대해선 “최저임금 인상, 인건비 과다 등을 이유로 해고한다면 이는 정리해고로서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단순히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거나 인건비 증가가 부담스럽다는 점만으로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인정될 수 없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최저임금 신고센터는 “노동부가 최저임금 탈법을 안내하지 않도록 근로감독관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고, 적극적인 현장조사를 통한 초동대응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최저임금 위반과 관련한 익명제보자 보호 및 근로감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사용자의 탈법을 조장하는 노무사 등에 대한 행정지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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