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이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지난 22일 공개한 청와대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청와대가 대법원과 부적절한 소통을 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기사와 사설을 실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판사PC를 뒤지고 그 흔적을 없앴다”며 조사위원회 과정을 문제삼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KBS 이사회가 전날 의결한 고대영 KBS 사장 해임 제청안을 재가했다. ‘KBS 정상화 수순’이라는 평가가 중론이지만 중앙일보는 ‘언제까지 정권 초 공영방송 사장 물갈이를 봐야하냐’며 ‘코드인사’ ‘적폐’라고 비난했다.

다음은 24일 아침에 발행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사법농단 진상 철저 규명 목소리 커진다”
국민일보 “트럼프, 무역보복… 먹잇감 된 한국”
동아일보 “美, 삼성-LG세탁기에 ‘50% 관세폭탄’”
서울신문 “0.03%, 소주 한 잔도 운전대 못 잡는다”
세계일보 “16년 만에 세이프가드…트럼프 '보호무역' 본색”
조선일보 “판사PC 뒤져놓고 뒤진 흔적 없앴다”
중앙일보 “다주택자 압박했더니 똘똘한 강남 한채로 몰린다”
한겨레 “대법관들, 반성은커녕 ‘청와대와 재판 뒷거래’ 부인“
한국일보 “‘박사님 그만 나오셔도...’국책연구기관 해고 한파”

대법관들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은 23일 입장문을 통해 “일부 언론은 대법원이 외부기관의 요구대로 특정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며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법관들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했고, 전원합의체의 심리에 따라 관여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선고한 것”이라며 “관여 대법관들은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일부 언론의 사실과 다른 보도로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 24일 한겨레 3면.
▲ 24일 한겨레 3면.
이에 대해 한겨레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부적절한 소통’을 하고 판사들을 ‘사찰’한 사실이 공개된 다음날, 대법관들이 별다른 사과나 수습 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재판에 영향이 없었다’는 점만 강조하고 나선 것”이라며 “국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핵심으로 지목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컴퓨터 제출을 끝까지 거부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번 조사를 검찰에 의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24일 경향신문 1면.
▲ 24일 경향신문 1면.
경향신문은 “임 전 차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저지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한 당사자”라며 “임 전 차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더불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에 있는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임시회의 소집을 논의하고 있다. 회의에서는 추가조사위 결과를 평가한 뒤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2차 추가 조사를 요구할 것인지 여부를 토론할 것으로 보인다.

경향과 한겨레 등이 사법농단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보수신문은 대법관들의 “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비중을 뒀다. 또 조사위원회의 조사방법이 잘못됐다는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 24일 중앙일보 1면.
▲ 24일 중앙일보 1면.
중앙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대법관 13명, 김명수 앞 ‘원세훈 재판 의혹’ 반박”이라고 뽑았다. 중앙은 “대법관들이 재판 등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며 “특히 추가조사위 구성 및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승인한 김 대법원장 면전에서 언론보도를 반박함으로써 조사 결과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썼다.

또한 중앙일보는 12면 관련기사 제목을 “대법관 전원 나선 건 처음, 사법부 갈등 상층부로 확산”으로 뽑았다. 국정원이 대법원에 영향을 행사했다는 것보다 대법원 내 갈등에 집중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 24일 중앙일보 12면.
▲ 24일 중앙일보 12면.
조선일보는 “판사PC 뒤져놓고 뒤진 흔적 없앴다”라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 사건의 본질보다 수사방식을 문제 삼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최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를 위해 강제로 개봉한 법원행정처 판사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복사본 3대를 ‘디가우징’ 기술을 이용해 파기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고 썼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력으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으로, 추가조사위가 파기한 하드디스크 복사본에는 추가조사위가 어떤 컴퓨터 파일들을 들여다봤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는데 이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 24일 조선일보1면.
▲ 24일 조선일보1면.
조선일보 최원규 사회부 차장은 ‘판사님부터 '적법 절차' 지키시죠’라는 기명칼럼에서 “추가조사위는 판사 뒷조사 문건이 들어 있다는 의혹을 받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컴퓨터를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로 개봉했다”며 “영장 없이 판사 사무실 서랍을 뒤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추가조사위원들을 비판했다.

최원규 차장은 “프라이버시권 침해, 비밀 침해죄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며 “전임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증오가 깔려 있지 않았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24일 조선일보 칼럼면.
▲ 24일 조선일보 칼럼면.
반면 한겨레는 “이 정도면 ‘법원행정처 강제수사’ 불가피하다”라는 사설에서 강제수사를 통해서라고 확인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런 행위에 핵심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이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는 아직도 열지 못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임 전 차장 컴퓨터가 중요한 것은 그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여러차례 통화하는 등 사법권 유린의 당사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2016년 1월부터 1년 사이 우 전 수석과 10여차례나 연락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단서”라며 “당사자들이 끝내 거부하면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 24일 한겨레 사설.
▲ 24일 한겨레 사설.
경향신문 역시 사설 “법관 사찰 문제, 강제수사 불가피하다”에서 “사찰의 ‘윗선’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사찰 대상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졌는지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원 자체적으로는 더 이상의 진실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강제수사가 불가피해졌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사법부에 대한 강제수사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법원이라고 성역이 될 수는 없다”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민주국가의 중요한 기둥임을 확인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 24일경향신문 사설.
▲ 24일경향신문 사설.
‘KBS 정상화 수순’에 딴지 놓는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KBS 이사회가 전날 의결한 고대영 KBS 사장 해임 제청안을 재가했다. 지난 22일 해임 제청안에는 전체 재적 이사 11명 중 다수인 여권 추천 이사 6명이 찬성했다. 야권 추천 이사들은 퇴장하거나 기권표를 던졌다. 회의에 불참한 이인호 KBS 이사장은 이메일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히며 “MBC에 이어 KBS도 권력놀이를 하는 과격한 언론노조의 자유 무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 24일 중앙일보 사설.
▲ 24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 ‘언제까지 정권 초 공영방송 사장 물갈이를 봐야 하나’에서 “정권 초 공영방송 사장 물갈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특보 출신 서동구씨가 KBS 사장에 취임했다 ‘코드’ 인사 논란으로 한 달 만에 자진 사퇴한 것을 필두로, 물갈이 진통은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코드 인사’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공정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방송계의 ‘적폐’”라며 “정략적 이해를 떠나 진정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사장 선임 방식의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권 초마다 똑같은 풍경화를 지켜봐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 24일 한겨레 사설.
▲ 24일 한겨레 사설.
반면 한겨레는 사설에서 “고대영 사장 해임은 사필귀정”이라며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보도국장-보도본부장-사장으로 재직한 시기에 한국방송은 정권만 바라보는 ‘청와대 방송’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한국방송이 사상 처음 방송통신위원회의 재허가 심사에서 기준 미달 점수를 받은 것은 고대영 체제의 한국방송 위상 추락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청와대 낙하산’ 논란 속에 등장한 고대영 체제의 경영진이야말로 저널리즘의 가치를 짓밟은 장본인들”이라며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칼바람 속에서 파업을 벌인 것은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이라는 원칙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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