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KBS가 좋았던 시절을 압니다. 2008년 이후 입사한 후배들은 단 한 번도 좋았던 시절을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이상적으로 바꿔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묵묵히 싸워준 후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새노조) 총파업 승리 기념 집회에서 오태훈 수석부위원장은 ‘KBS가 좋았던 시절’을 되찾을 시간이 왔다며 총파업 승리를 선언했다.

고대영 사장 해임은 상대가 있는 싸움의 종말로 평가된다. KBS 정상화를 위한 ‘내부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KBS가 이병순·김인규·길환영·조대현·고대영 체제로 운영된 시간은 무려 10년이다.

▲ 지난해 12월12일 총파업 100일 집회 중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 뒤로 평창동계올림픽 로고가 담긴 전광판이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해 12월12일 총파업 100일 집회 중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 뒤로 평창동계올림픽 로고가 담긴 전광판이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청산 안 된 적폐 ‘과도기’

고 사장 해임으로 사장 직무 대행을 맡는 조인석 부사장은 ‘김인규 KBS’에서 ‘고대영 KBS’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보도·제작 부서에도 과거의 ‘적통’을 이어 온 인사들이 남아 있다.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KBS는 과도기인 셈이다.

24일 143일 총파업을 마치고 복귀하는 새노조 조합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업무에 복귀한다. 고 사장이 임명한 보도·제작 간부들이 남아 있는 조직에서는 정상적인 방송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해야 하는 스포츠 부문 PD들은 복귀와 동시에 업무를 시작한다. 김영민 스포츠 구역 중앙위원은 “파업기간 동안 제작·방송을 제외한 제반의 준비를 해왔다”며 “비대위 지침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스포츠 제작진이 22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대체인력을 투입하겠다던 사측 방침은 고 사장 해임으로 무산됐다.

스포츠국 기자들은 복귀 이후에도 당분간 사전 준비에 집중할 예정이다. 박종훈 KBS기자협회장은 “현재로서는 공정방송을 담보할 수 없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상부 지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평창동계올림픽 방송은 공영방송 책무인 만큼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보도 부문 구성원들의 경우 본사와 지역 KBS 모두에 비대위가 구성됐다. 비대위는 보도 책임자와 경영진을 상대로 공정방송 복원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을 요구할 계획이다. 사측이 방송편성규약에 어긋나는 부당한 업무 지시·인사 발령·업무 재배치 등을 시도할 경우 각 부문 보도위원으로 구성된 보도위원회에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일 선복귀한 예능 부문이 비대위 체제로 운영돼 온 가운데 교양기획제작·스포츠·라디오 등 각 제작 부서도 비대위 구성을 마쳤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 라디오 주례 연설 방송 등 정권 편향 방송을 강요 받은 라디오 부문의 경우 임병석 PD를 위원장으로 하는 라디오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라디오 미래 발전 방안을 수립하기로 했다.

새 사장 선임은 언제?

과도기 해소 기점은 새 사장 선임이다. KBS 이사회는 24일 오후 신임 사장 공모 절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날 논의는 이사회가 아닌 비공개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되고 사장 공모에 대한 정식 논의는 오는 31일 정기 이사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장 공모 절차는 최승호 MBC 사장과 길환영 전 KBS 사장 취임 사례를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고 사장 해임에 대한 야권 이사들의 반발을 고려할 때 향후 일정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야권 이사들이 이인호 KBS 이사장 사퇴로 인한 궐석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사회가 사장 선임 절차를 의결하고 공모에 돌입한 뒤 후보자를 추리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해당 시일 동안 보궐 이사가 선임되면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전망이다.

KBS 사장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고대영 사장 해임에 대해 비판적이다. KBS 이사회가 사장 공모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야당들이 인사청문회 일정에 협조하지 않으면 신임 사장 선임이 미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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