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8·31 부동산정책을 발표했을 때 ‘세금폭탄’이란 말이 횡행했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자 일부 언론이 제기한 프레임이었다. 종부세 신고·납부 기간이 도래한 2006년, 국세청은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전체 가구의 1.3%인 23만7천여명에 불과하다고 밝혔고 이들 중 다주택자가 71.3%라고 밝혔지만, 당시 언론은 “집 한 채 달랑 있는 사람에게 ‘무차별 세금폭탄’을 때린다”며 반발했다.

IMF 이후 경기회복을 위한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이 쏟아졌고 이 여파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며 당시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부동산은 거주 목적을 넘어 투기 대상이 됐고, 2005년 땅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346조원에 이르러, 2004년 한 해 동안 1400만 노동자에게 지급한 임금총액 342조원을 뛰어넘는 지경에 이르렀다.(토지소유 불평등과 불로소득,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3)

이것이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 이유였다. 부동산 투기를 더 지켜봤다가는 불로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해 양극화 현상이 커지고 노동의 가치가 황폐화될 우려가 있었다. ‘10년 안쓰고 모아도 아파트 하나 얻을 수 없는 현실’은 극심한 사회갈등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금 폭탄’ 프레임에 종부세는 와르르 무너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8·31정책 발표 다음해 치러진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강남에서는 ‘조금만 버티자’는 기류가 형성됐고, 뒤이어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종부세 과세 기준을 상향조정함으로서 사실상 종부세를 무력화시켰다.

▲ 조선일보 1월22일자. 1면.
▲ 조선일보 1월22일자. 1면.
그리고 2018년 ‘폭탄’이란 말이 다시 나왔다. 올해부터 부활한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제도에 맞춰 국토교통부가 지난 21일 “조합설립이 완료된 서울시 주요 재건축 아파트 20개 단지(강남4구 15개 단지 및 기타 5개 단지)에 대해 재건축 부담금을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조합원 1인당 평균 3억7천만원 내외로 재건축 부담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예측된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다.

22일 조선일보는 1면에 ‘강남 재건축, 이번엔 ‘부담금 폭탄’ 가구당 최고 8억4000만원 터진다’ 기사를, 동아일보는 1면에 ‘강남 재건축 ‘부담금 폭탄’…1인당 최고 8억’의 기사를, 중앙일보는 2면에 ‘강남 재건축 평균 4억 ‘부담금 폭탄’…그럼 집값 잡힐까’라는 기사를 약속이나 한 듯 냈다.

▲ 조선일보 1월23일자. 1면.
▲ 조선일보 1월23일자. 1면.
그리고 조선일보는 23일 1면에 ‘“한 아파트 40년 산게 죕니까”’라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서 ‘재건축으로 새 아파트에 살 날만 기다리는 이씨’는 “이제는 새집에 들어가면 수억원을 더 내야 하느냐”며 “한 집에 오래 산 게 죄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전하려는 바는 이렇다. 낡은 아파트에서 오래 살아온, 투기가 아닌 실거주자도 재건축 부담금의 ‘폭탄’을 맞아야 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투기는 문제지만 정부의 섣부른 정책으로 죄 없는 서민들의 등골이 휜다는 것이다. 과거 종부세의 부담을 서민이 지는 듯 주장했던 것과 같다. 과연 그럴까?

3년을 살아온 사람도 40년을 살아온 사람도 재건축단지로 지정되면 이익을, 그것도 상당히 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익을 보지 않는 재건축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여러 부동산 대책에도 오르는 강남 집값을 재건축 단지가 주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인해 발생한 그 ‘초과이익분’의 최대 절반(3000만원 초과의 경우)을 거둬들이겠다는 것이다.

재건축은 대체로 용적률이 낮은 저층 아파트에서 이루어진다. 이 저층아파트들이 용적률을 높여 고층으로 들어설 경우, 예를 들어 현 300가구의 단지가 재건축으로 400가구로 늘어날 경우, 이 100가구의 초과이익분의 최대 절반가량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건축 조합의 결정에 따라 물납으로도 가능하다.

“집 산 시기나 가격이 제각각인데 무조건 똑같이 부담금을 내느냐”는 주장도 국토부 측 설명과는 다르다. 국토부 관계자는 초과이익 환수제가 개개인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조합의 초과이익분을 환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 당 분납금을 어떻게 나눌지는 조합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국토부 측은 애초 재건축을 할 때 자산평가를 하고 여기서 건축비나 운영비를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는 상황에서, 조합원 당 분담금도 어떻게 나눌지 조합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수도에서 녹슨 물이 나오고, 난방 방식이 낡아 라디에이터 방식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이른바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단순히 새집에 들어간다고 “수억원을 더 내야 하느냐”고 묻는 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람의 사례를 소개하려면 그에 앞서 해당 단지에 재건축이 이뤄지면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을 당연히 명시해야 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여러 언론은 올해 초 최저임금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이 문제를 영세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갈등으로 내몰았다. 이 과정에서 임대료, 프랜차이즈 로열티, 카드 수수료 등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종부세 논란 때는 ‘집 한 채 달랑 있는 사람’이라고 했을 뿐 그 집이 6억원이 넘는다는 말이 없었고, 초과이익 환수와 관련해서는 그들이 재건축으로 벌어들이는 엄청난 돈에 대해 침묵했다.

‘서민이 죽는다’는 언론의 프레임 뒷면에는 이렇게 거대한 돈이 도사리고 있다. 다만 종부세 논란 때와 지금의 차이는 분명하다. 지금의 언론에는 과거 만큼의 의제설정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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