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개혁 방안을 발표했으나 개인정보를 침해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2일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초연결 지능화 규제혁신 추진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언론에는 오랜 기간 이용자의 불편을 초래해온 ‘공인인증서 폐지’가 중점적으로 보도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날 보고된 규제혁신 방안 가운데는 산업 활성화를 빌미로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안도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게 박근혜 정부 때부터 문제가 됐던 비식별화 정책이다. 과기정통부는 “비식별 정보 활용을 제고하여 스마트시티, 핀테크 등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및 신산업 육성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비식별화는 ‘A카드사의 고객정보’ 파일이 있다면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같은 정보는 가공을 통해 모자이크처리를 하듯 지우거나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빅데이터 분석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A라는 이용자에 대한 통신정보, 신용정보, 카드결제정보, 의료정보 등을 하나로 묶게 되면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재식별’이 가능해져 개인정보가 침해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 비식별화 개념 설명. 자료=진보네트워크센터.
▲ 비식별화 개념 설명. 자료=진보네트워크센터.

물론, 과기정통부는 “2016년 마련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관계부처는 물론 시민사회와도 충분한 협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양환정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보다 명확히 하자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식별 조치’ 도입을 전제하고 합의안을 만드는 것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규제개혁 해커톤에 시민사회 추천으로 활동 중인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시민사회와 협의한다고는 하는데 전반적인 기조가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 “영리목적으로 어떻게 활용하게 하느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지금도 ‘익명화’를 거치면 되는 데도 비식별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병일 활동가는 “물론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이 경직돼 있으면 유연하게 개정할 수 있고 통계나 연구 목적의 비식별화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우선 법에서 개인정보 보호 및 활용의 원칙이 규정되고 유럽처럼 ‘개인정보를 이동할 권리’ 등 변화한 환경에 맞게 법제 정비를 한 다음 활용도를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는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하는 ‘꼼수’라고 지적해왔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까다로운 가공절차를 거쳐 개인정보가 식별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 ‘익명화’라는 개념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익명화된 개인정보는 현재도 개인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활용에 제약이 없다.

정부의 기조는 독립기구들의 입장과도 상충된다. 지난해 1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비식별은 익명과 가명을 포함한 개념으로 이를 사용할 경우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며 비식별화 용어 대신 익명과 가명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행정자치부에 전달했다. 지난해 2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비식별 조치의 방법, 수준에 따라 특정 개인이 재식별할 위험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정보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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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 아니라 정부는 일부 사물 위치정보를 개인정보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행법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로 규정하고 있어 드론,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활용에 제약이 크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었다.

이와 관련 오병일 활동가는 “위치정보의 경우 개인과 연결돼 있는지가 중요하다”면서 “드론과 달리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의 위치정보가 운전자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라고 본다”면서 “이 경우 개인의 동의를 받는 등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 자율주행차 운영을 못할 것처럼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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