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이 대북공작금을 유용해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에 대한 불법 사찰을 했다는 정황이 공개됐다.

국정원 공작명은 ‘포청천’으로, 2009년 시작돼 2013년까지 지속됐으며 박원순 현 서울시장, 최문순 현 강원도지사, 한명숙 전 의원, 박지원 의원 등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 신분이었던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에 대한 사찰이 진행됐다고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혔다.

23일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처음 이 제보를 받고,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며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에 대북담당 3차장 최종흡이 대북공작금(특수활동비)을 유용하여 야당 정치인 불법사찰 공작을 전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은 2009년 2월 임명된 후, 대북공작국의 특수활동비 가운데 ‘가장체 운영비’를 활용해 ‘유력 정치인 해외자금 은닉 실태’ 파악을 위한 공작활동을 전개하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대북공작국이 아닌 방첩국(외사 및 산업스파이 담당 부서)의 단장을 직접 지휘하여 한명숙, 박지원, 박원순, 최문순, 정연주 등 당시 유력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 공작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MB 정권이 국정원의 대북 공작금을 이용해 야권 정치인을 사찰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MB 정권이 국정원의 대북 공작금을 이용해 야권 정치인을 사찰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민 의원 설명에 따르면, 공작 실행 TF(태스크포스)는 방첩국의 K모 단장 지휘 하에 △내사파트(5급 K모 씨, P모 씨, S모 씨, C모 씨) △사이버파트(5급 K모 씨 등 4명) △미행감시파트 등 방첩국 직원들로 구성된 3개 파트가 동원되어 전방위적인 불법사찰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의원은 “작전명 ‘포청천’을 지휘한 방첩국의 K모 단장은 전 공작담당 직원들에게 ‘승진은 책임질 테니 벽을 뚫든 천정을 뚫든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라’고 지시했고, 사이버 파트에는 대상자들의 이메일을 건네주면서 ‘PC를 뚫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민 의원은 국정원의 해당 공작은 이명박 정부에서 인지하고 있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제보자 전언에 따르면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에 이어 후임인 김남수 차장으로 바뀐 상황에서도 공작이 지속된 것으로 봐서, 국정원 업무의 관행상 모든 진행 과정과 결과물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민 의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남재준 원장이 부임한 후 감사팀에서 전 공작 건을 감사하려 했으나, 당시 대북공작국장이 남재준 원장에게 ‘이걸 감사하면 대북공작역량이 모두 와해된다’고 설득해 감사가 중단됐다”면서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작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이 사안이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원세훈 원장-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 라인이 공모해 대북공작금까지 유용하면서 야당 정치인 불법사찰을 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 의원은 “국정원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치에 개입해 국정을 농단하고,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건넨 것만으로 충격적인 일인데 국가안보를 위해 써야 할 대북공작금까지 유용, 야당 정치인 불법사찰 공작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다.

다만 민 의원은 이미 2013년 공개된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동원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박 시장을 제압하라는 상세한 대응 방안이 담겨 있던 문건)과 해당 작전이 별개의 것이었는지는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민 의원은 기자들에게 “제보를 어떻게 받았고, 어떤 증거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밝힐 수 없다. 내부고발인지도 말할 수 없다”며 “이니셜로 처리했지만 국정원 팀원들, 직급과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 제보의 신뢰성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

현재 밝혀진 정치인 외에 또 다른 사찰 대상자가 있었냐는 질문에 민 의원은 “제보 당사자들이 구체적 내용을 지금 다 공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본다”며 “계속해서 당사자를 만나 설득하고 있고,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한명숙 총리 사건에 대해 재판에 사용할 증거를 갖고 오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것까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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