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의 도급계약 해지는 하청노조를 와해하고 노조를 뿌리뽑겠다는 의도로 진행된 것 …(중략)… 공인노무사라는 직업적인 양심을 걸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의 하청업체 자문 노무사가 복수의 수사기관에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상세히 반복 증언했지만 제대로 참작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사실이 확인됐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 ‘GTS’와 2015년 6월 노무관리 자문 계약을 맺었던 공인노무사 김아무개씨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원청의 하청노조(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활동 방해 지시 사실을 경북지방노동위원회·고용노동부 구미지청·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원 등 조사기관 3곳에서 일관되게 증언했다.

▲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이 2017년 9월 GTS를 대리했던 김아무개 노무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 중 일부. 원청 관리자의 '노조 와해' 지시 정황이 확인된다.
▲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이 2017년 9월 GTS를 대리했던 김아무개 노무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 중 일부. 원청 관리자의 '노조 와해' 지시 정황이 확인된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 노조 항고장 등에 따르면 김 노무사는 세 기관에서 △원청 관리자가 ‘노조 파괴’를 직접 발언한 사실 △원청 관리자가 하청업체 사장에게 수시로 노조활동 방해를 강요한 사실 △노조 와해 목적으로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해지한 정황 등을 상세히 증언해왔다.

“일본 관리자는 자신들에게 돈이 9천만원 정도가 있으니 노조만 깨면 그 돈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이 아사히글라스 부당노동행위 혐의 등을 수사하던 지난해 9월, A씨가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노조 지회장에게 전화로 한 말이다.

김 노무사는 이 말을 노조가 설립됐던 2015년 여름, 하청업체 사장과 자신, 일본 본사의 가토 다케시 부장 등이 구미 금오산호텔에서 노조 대응 방향을 논의하던 중 가토 부장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김 노무사가 하청업체에 노조 방해를 강요하는 원청 노무이사를 해임시키라고 건의하니 ‘돈이 많아서 부당노동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이 내용은 그의 검찰 조서에도 기록돼있다.

2015년 6~7월 동안 원청 아사히글라스는 GTS에 일상적으로 노조 방해 지시를 강요했다. 노조에 가입한 직원이 20여 명에서 130여 명으로 늘어난 6월 초, 원청의 김아무개 노무이사는 GTS 사장에게 ‘노조원이 증가하는데 하청이 대응을 못한다’ ‘내가 노조 대응 소스를 주는데도 관리가 전혀 안된다. 무능하다’ 등의 말로 여러번 질책했다.

김 노무이사는 이어 ‘노조 가입 홍보 활동을 막아라’ ‘노조 사내 집회를 금지시켜라’ 등의 지시를 GTS 사장 측에 수차례 전화로 지시했다. 김 노무사는 GTS 측에 “쉬는 시간 노조 활동은 정당하다. 부당노동행위로 입건될 수 있으니 지시를 거부하라”고 자문했고 GTS는 이 자문에 따랐다. 모두 고용노동청 및 검찰 조사에서 진술된 내용이다.

GTS의 한 현장 관리자는 원청의 다수 관리자로부터 수시로 ‘하청노조 대응 안하고 뭐하느냐’ ‘조합원 술 사주면서 잠수타는 활동을 해라’ 등의 지시를 들었다. ‘잠수’는 적극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는 직원을 포섭해 조합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 GTS를 대리했던 김아무개 노무사는 차 지회장과의 통화 중 고용노동청 및 검찰 조사에서 통화기록 등을 조사해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 GTS를 대리했던 김아무개 노무사는 차 지회장과의 통화 중 고용노동청 및 검찰 조사에서 통화기록 등을 조사해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아사히글라스 부당노동행위 혐의의 핵심은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 해지다. GTS에 노조가 설립된지 한 달이 지난 2015년 6월29일 아사히글라스는 사전에 어떤 통보도 하지 않고 GTS 사장에게 도급계약 해지 계약서에 서명을 할 것을 요구했다. 도급계약이 6개월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도급계약이 해지되면 하청업체엔 일감이 없어지고, 하청업체가 폐업 위기에 처하면 노동자들은 퇴직 위기에 처한다. 아사히글라스의 일방 도급계약 해지가 부당노동행위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 노무사, 일부 GTS 관계자 진술을 종합하면 노조 와해 의도 외에는 계약을 해지할 필요가 없던 상황이었다. △원청이 지속적으로 노조를 감시·방해해온 점 △도급계약 해지 후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던 점 △인력 구조조정이 통상적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긴급하게 진행된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김 노무사는 이와 관련해 ‘GTS가 원청이 요구한대로 하지 않아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아있는데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됐다’며 ‘원청의 도급 해지는 사업장 내에서 노조를 뿌리뽑겠다는 의도로 진행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노무사는 또한 수사기관 조사에서 ‘건전한 노사관계에 대한 자문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양심에 따라 진술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사례는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사히비정규직노조는 항고장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 의사가 없었다면 그와 같이 단 며칠만에 군사작전을 하듯 모든 일을 끝내버리지(도급계약 해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관계자들의 전화통화 기록과 위 노무사의 진술에 의하면 원청인 아사히글라스 관계자들이 개입했음이 명백하다. 만약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신다면, 아사히글라스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등 재기수사를 통해서라도, 피의자들을 반드시 기소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조는 2018년 1월22일오전 11시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아사히 비정규직 노조 제공
▲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조는 2018년 1월22일오전 11시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아사히 비정규직 노조 제공

노조는 22일 오전 대구고등검찰청에 아사히글라스 노동법 위반 혐의 사건을 재수사해달라는 항고장을 제출했다.

대구지검은 지난해 12월22일 하청노조가 아사히글라스 및 GTS, 각 대표이사를 파견법 및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일본에 본사를 둔 유리 제조업체로 구미국가산단4단지에 입주해있다. 사내하청업체 GTS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2015년 5월29일 노조를 설립했다. 아사히글라스는 한 달여 후인 6월30일, GTS에 그해 7월 31일부로 도급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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