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미 트럼프 대통령 간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올림픽과 관련한 남북고위급 회담 개최의 공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했다는 미 언론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20일 서울발 기사에서 “1월4일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남북 회담과 관련해 설명하는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그가 회담 여건 조성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혀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같은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로부터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당시 ‘남북고위급 회담 성사에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느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문 대통령은 “남북 대화 성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매우 크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직접 대화에서도 자신의 공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언론보도는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은 자신이 주도한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외교 성과로 자신의 치적을 적극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정상 간 통화는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는 보도가 났기에 사실 여부를 확인 드린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히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때 입장을 낸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유효했던 것 같다는 말씀을 먼저 언급한 것이지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와 청와대 설명이 엇갈린 것은 작은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따져보면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현재 미국 정치 상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궁지에 몰려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자질을 정면으로 문제제기한 ‘화염과 분노 :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라는 책이 나오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미 연방정부는 정당 간 예산안 합의에 실패해 예산안 통과 시한을 넘기면서 정부 기관이 일시 폐쇄되는 상태인 셧다운 조치를 내렸다.

▲ 지난해 11월7일 문재인 대통령과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서 열린 오찬에서 양국 장병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지난해 11월7일 문재인 대통령과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서 열린 오찬에서 양국 장병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외교 문제로 눈을 돌리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문제에 대한 강공 발언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외교직 공무원 수백 명이 사임하면서 내부 반발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와 트럼프 대선 캠프 내통 의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제에서 유일한 듯 성과로 보이는 남북대화 성사의 공을 가져가고 싶어 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 워싱턴 포스트 보도였다.

청와대의 설명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공을 요청하는 발언이 없었다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의 성과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국내외적 상황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워싱턴 포스트는 “남북한이 언제 무엇을 대화할지 결정한 것은 김정은”이라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의 운전석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앉아 핸들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조수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있고, 뒷좌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앉아 따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남북대화 성사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싶어도 뜻대로 될 수 없는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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