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전 국장이 뉴스타파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위 명의로 소송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소송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세금이 쓰였고, 앞으로도 쓰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는 방통위가 통신사의 위법 경품 행위를 적발하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 이은용 객원기자(전자신문 해직기자)의 기사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월20일 패소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 기사는 방통위가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과징금 규모 100억 원대에 달하는 불법 경품지급 실태를 파악하고도 담당 국장 주도로 조사를 끝내고 제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당시 담당 국장이던 박노익 전 이용자정책국장은 재판을 통해 해당 보도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2015년 1월부터 9월까지 조사를 벌인 후 2016년에 사업자를 제재한 바 있는데 이는 2014년 시작된 조사의 ‘보강조사’로 조사 결과를 은폐한 적 없다는 게 박 전 국장의 주장이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뉴스타파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가 언론중재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소송 제기를 최종 결정했다. ⓒ 연합뉴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뉴스타파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가 언론중재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소송 제기를 최종 결정했다. ⓒ 연합뉴스

핵심 쟁점은 2015년 조사가 2014년 조사를 보강한 것인지, 아니면 별개의 조사인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조사 기간이 일부 겹치지만 조사 대상, 내용 등이 다르다며 “보강조사라고 보기 어렵고 양자는 서로 별개의 조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보강조사라면)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의 기간이 조사대상에서 빠지게 된 이유에 대해 합리적인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1심 판결 후 뉴스타파는 항소했다. 핵심 쟁점에서는 승소했지만 기사 말미에 나온 최성준 전 방통위원장과 권혁수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유착 의혹을 언급한 대목에 정정보도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2심 때는 뉴스타파가 항소한 내용만 다뤄질 것으로 보였으나 방통위가 ‘맞항소’를 제기하면서 전체 쟁점에 대한 항소가 이뤄졌다.

정권이 바뀌었고 판결 내용이 비교적 명확한데 왜 방통위는 항소를 한 것일까? 방통위는 방통위 명의의 소송임에도 박 전 국장이 일방적으로 항소를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법무 관계자는 “우리가 항소를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방통위 명의 소송이지만 대리인은 최성준 전 위원장과 박노익 전 국장이다. 박 전 국장이 항소를 결정하고 우리는 통보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노익 국장은 “피고측에서 항소를 하였기에 할 수 없이 응소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저 개인이 결정한 게 결코 아니다”라고 밝혔다. 방통위와 박 국장 간 입장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복수의 방통위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는 최성준 방통위원장의 ‘결재’를 받았지만 한번 시작된 소송의 항소 여부는 방통위가 직접 판단할 수 없다. 이전 정권 때 시작된 무리한 소송을 정권이 바뀐 다음에도 제동을 걸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소송 비용을 방통위가 부담했고, 앞으로도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방통위 법무 관계자는 “확인해보니 이전 정부 때 방통위가 1심 소송비를 로펌에 지불한 것으로 결재가 돼 있었다”면서 “2심 재판의 경우 법원에 내는 공탁료 명목의 30만 원은 방통위가 냈으나 변호사비를 방통위가 부담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애초에 승소 확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소송이 시작된 데다 간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에 방통위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해 박 전 국장은 뉴스타파 보도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으나 정정보도 결정을 받지 못해 의혹제기가 타당했다는 점이 공인된 상황이었다.

이은용 기자는 “그동안 방통위가 통신시장을 과점하는 사업자들을 봐준다는 의혹들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봐주기를 한 사실이 드러난 건 처음”이라며 “방통위는 두번째 조사도 1년 이상 묵히다 취재 이후에야 제재를 내렸다. 취재가 없었다면 두 건의 조사 다 덮을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박 전 국장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으나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은용 기자는 “방통위가 객관적이고 확실하게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면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스스로 적폐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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