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포털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금까지 민주당이 지켜온 가치는 물론 현 정부 정책과도 상충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재앙’으로 부르고 (문 대통령) 지지자를 농락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대표적인 포털 네이버의 댓글이 인신공격, 비하와 혐오, 욕설의 난장판이 돼버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미애 대표는 “이를 방기하는 포털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네이버는 이런 행위가 범람하고 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묵인과 방조도 공범”이라며 “가짜뉴스 삭제 조치, 악성 댓글 관리 강화 등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준표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문슬람(문재인+이슬람’)이라고 발언한 점을 언급하며 ‘SNS 혐오발언 및 가짜뉴스’ 처벌법이 제정된 독일이라면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가짜뉴스 처벌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포털에 악의적인 댓글이 많은 건 사실이다. 더구나 ‘문슬람’처럼 특정 종교에 대한 선입견을 통해 비방하는 단어를 유력 정치인인 홍준표 대표가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이 이 같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명예훼손성 악성댓글’ ‘가짜뉴스’ ‘혐오발언’에 대해 포털의 대응강화 및 강제 삭제를 시사하고 나서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추미애 대표는 ‘문재앙’(문재인+재앙)이라는 표현을 예시로 들었다. 그러나 공인을 향한 ‘명예훼손’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비교적 폭 넓게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게 학계의 보편적 견해이자 과거 민주당의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박근혜 생식기’ ‘박근혜 돌대가리’라는 키워드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연관 검색어 삭제를 네이버에 요청했다. 그러나 자율규제심의기구(KISO)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VIP 7시간 관련 주름수술설 (사이버수사팀)”(2014년9월23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을 담은 ‘김영한 비망록’에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대응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직접 이의제기를 신청하지 않는 한 문제의 게시글을 삭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2014년 10월2일자 김영한 비망록의 “방심위- 피해자 본인신청이 있는 경우에만”이라는 대목이 이 고민을 드러낸다.

이후 2015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만으로 명예훼손 댓글을 삭제하는 심의규정 개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관련기사: [단독] 제3자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은 박근혜 청와대 작품)

당시 무리한 개정을 막을 수 있었던 데는 시민사회단체와 힘을 합친 민주당의 역할이 컸다. 당시 민주당은 논평을 내고 “대통령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비판마저도 차단하고 언론의 ‘빅브라더’ 역할을 하겠다는 폭력적인 발상”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라고 비판했다.

‘명예훼손성’ 글이라 하더라도 제3자가 판단해 삭제조치하는 것은 정당한 표현까지 손댈 수 있다는 게 추미애 대표 발언과는 결이 다른 당시 민주당의 염려였다. 2015년 UN 자유권 규약위원회가 “한국정부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명예훼손을 ‘비범죄화’ 할 것을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혐오발언’과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만 하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경우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다. 박광온 의원은 독일의 ‘SNS 혐오발언 및 가짜뉴스’ 처벌법이 국내에도 필요하다고 했지만 유럽은 기본적으로 혐오발언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혐오발언 처벌법은커녕 무엇이 혐오발언인지 사회적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독일에서도 해당 법은 논란이 많고, 유럽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인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라는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사안이든 진위는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가짜뉴스 규제는 위험하다. ‘최순실 게이트’ 초기 태블릿PC가 드러나기 전까지 박근혜 정부는 국정농단 대부분을 부인해왔다. 당시 정부의 입장에 따라 포털이 관련 의혹제기 댓글을 삭제했다면? 포털의 여론조작 사례로 남았을 것이다. 

▲ ⓒiStock
▲ ⓒiStock

이례적으로 선거 기간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허위사실을 담은 댓글’을 대거 삭제하고 있는데 그 예를 보면 ‘가짜뉴스 댓글’ 삭제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지난 총선 기간 중앙선관위는 무려 191건의 나경원 후보 자녀 관련 게시글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했다. “장애인 전형 반짝 생겼다가 없어진...의혹 해명할 차례”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같은 게시글은 자녀 부정입학을 다룬 뉴스타파 보도에 따른 의혹제기로 볼 여지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며 삭제됐다.

(관련기사: 선관위, 총선 때 게시물 1만7101건 삭제)

이 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온라인 공간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공약을 내세웠고 정부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 완전폐지△정보통신망법상의 사업자의 일방적 임시조치 개선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 대폭 확대 △인터넷상 정치적 표현물 자율규제 전환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이 ‘표현의 자유’를 고민하며 내세운 정책의 결실이기도 하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규제 논의가 한국당처럼 정부 기관을 동원하는 등 과도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규제는 의도와 달리 오남용이 이어지기 쉽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는 게 핵심이다.

참여정부 때 포털 블로그에 명예훼손글이 넘쳐난다는 점을 감안해 당사자의 문제제기가 있으면 게시글이 ‘차단’되는 임시조치가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 종교, 정치인을 향한 정당한 비판까지도 무분별하게 차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18대 국회 때부터 개선 논의를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칼을 대지 못하고 있다. 섣부른 포털 규제론이 위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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