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 노동자들이 충분한 휴식 보장과 적정 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합법적인 연장 근로 거부 운동’에 돌입했다. 지난달 과로사 의혹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과도한 노동강도에 대한 불만이 거세게 제기됐음에도 회사가 재발방지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민주한국공항노조(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민주한국공항지부)는 지난 19일부터 “근로기준법 준수 투쟁에 돌입한다”며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거부하고 있다. 근기법은 노사 간 합의를 전제로 주당 12시간까지만 초과근로를 허용하지만, 한국공항은 이를 넘는 연장근로를 수시로 지시해왔다.

▲ 대한항공 자료사진.
▲ 대한항공 자료사진.

노조는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도 거부하려고 나섰으나 곧 방침을 철회했다. 근기법 51조 2항이 “특정한 날의 근로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법 해석에 논란이 있어 거부운동에 돌입한 직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용만 노조 부지부장은 “하루 20시간 노동을 시켜도, 거부한 노동자가 ‘불법쟁의’를 했다고 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며 “부당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된 계기는 지난해 12월13일 원인 미상의 심정지로 숨을 거둔 한국공항 직원 고 이기하씨 사망이다. 그는 당일 출근한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의식을 잃고 돌연사했다.

유족과 노조는 그의 사망 배경에 격무와 과로가 있다고 본다. 이씨의 근태기록을 살펴 본 결과 그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한 날은 한달에 8~9일 가량이었다. 퇴근 후 다음 날 출근까지 시간이 10시간 미만인 날은 한 달에 5~6일이 가량이었다.

이씨는 사망하기 세 달 전 부터 7명이 작업할 일을 4~5명이서 처리해왔다. 이씨의 업무는 수하물 탑재·하역 등으로 무거운 짐을 쉴 새 없이 들기에 노동강도가 세며 작업 내내 눈·비·추위 등에 노출된다. 끼니를 거를 때도 있는 등 휴식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노동강도가 더 과도하다는 게 현장 작업자들의 공통의견이다.

이씨의 시신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현재 인하대학교 병원 영안실에 39일 째 안치돼있다. 유족과 노조는 △회사의 공식사과 △산재처리 △유족보상 △주 52시간 근무 준수 △적정 인력 배치 준수 및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신의성실하게 협의하고 해당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때 장례를 치룬다는 입장이다.

하루 12시간 이상근무, 주당 12시간 초과 연장 근무 등은 한국공항 내 대부분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문제다. 항공정비팀의 10월 3~4째주 근무 기록을 보면 하루 13~14시간 동안 근무한 날이 5일이다.

▲ 붉은 선 왼쪽이 정상근로시간, 오른쪽이 연장근로시간이다. 둘을 합하면 하루 근무시간이 계산된다. 실제 출퇴근 시각을 고려하면 여기에 1시간 가량이 더 추가된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붉은 선 왼쪽이 정상근로시간, 오른쪽이 연장근로시간이다. 둘을 합하면 하루 근무시간이 계산된다. 실제 출퇴근 시각을 고려하면 여기에 1시간 가량이 더 추가된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이씨 사망 이후 이와 관련한 재발방지 대책이나 노동조건 개선안 등을 제시한 적이 없다. 노조는 한국공항이 “고인의 죽음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재발방지를 위한 단 하나의 대책도 수립하지 않고 있다”며 직접 노동조건 개선 행동에 나섰다.

산재 처리 및 유족 보상을 둘러싼 회사와 유족 간 협상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및 대한항공과 계약한 외국항공사들의 지상조업을 맡는 대한한공 자회사다. 지상조업은 수하물 탑재 및 하역, 항공화물 조업, 항공기 급유·정비·기내식 등의 서비스를 말한다. 대한항공은 한국공항 지분의 59.54%를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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