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짜 뉴스’를 구별해 내기 위한 ‘팩트 체크’나, 온라인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무늬만 바꾸어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뉴스 어뷰징’이라는 영어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탈진실(post-truth)’이고 2017년 사전 출판사 콜린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가짜 뉴스(fake news)’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 환경이 가져온 변화들 속에서 ‘취재’하지 않는 기자나 ‘사실 확인’ 없는 기사의 범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여러해 전부터 이루어져 왔지만, 언론계 내에서 ‘실질적인’ 자성(自省)의 움직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여기 두 가지의 작은 예를 살펴보자. 1987년 6월 항쟁 관련 사진들 중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든 우상호 의원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하면서 그의 양 옆에 선 학생들이 각각 배우 우현, 안내상이라는 설명이 붙어 다녔다(우현 씨는 맞다). 최근 영화 ‘1987’이 주목을 받으면서 지난 1월11일 방송된 JTBC ‘썰전’에 우상호 의원이 출연했다. 사진이 화면에 비쳐지고 두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자 다음날 언론은 다시 그 사진과 배우들을 언급했다. 이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에서 고개를 숙인 인물이 안내상이라는 문구가 기사를 단순 복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또다시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기자 이름의 명시, 즉 바이라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기자 이름은 생략하고 기사 입력·수정·최종편집 시간은 그대로 두겠다. 아래에 언급된 언론사들은 몇몇 예일 뿐이며, 사실 같은 실수를 한 언론사들이 더 있었지만 이후 자신의 기사를 정정했기에 생략한다.

▲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태극기를 든 배우 우현. 사진=우상호 의원 홈페이지
▲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태극기를 든 배우 우현. 사진=우상호 의원 홈페이지
#1    SBS연예·스포츠 (최종편집: 2018-01-12 10:20:21)

“사진 속 故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든 사람은 우상호 의원이고 바로 옆에 태극기를 든 사람은 배우 우현. 그리고 그 옆에서 고개를 떨군 사람은 배우 안내상이었다.”

#2    데일리한국 (입력시간: 2018-01-11 23:35:19 · 수정시간: 2018-01-11 23:35:19)

“우상호, 우현, 안내상 한 자리에 모인 사진… 이한열 열사 영정 들고 (중략) 우상호 전 원내대표 오른쪽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은 배우 안내상이다.”

#3    enews24 (입력: 2018-01-11 23:36 · 최종수정: 2018-01-12 10:41)

“이날 MC 김구라는 이와 관련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그 현장 속에 있던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 안내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4    MBN뉴스 (기사입력 2018-01-12 09:33)

“이한열 열사 추모 집회 당시 배우 우현, 우상호 의원. 가장 우측을 배우 안내상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에 붙인 설명인데, “확실하지는 않다”고 해 그나마 다행이다. - 필자 주)

#5    MoneyS (기사 입력 2018-01-12 08:30)

“이날 MC 김구라는 이와 관련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현장에 있던 배우 우현, 안내상의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연세대 학생 고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영정 옆을 지키고 있었다.”

사실, 이 사진은 이미 2018년 1월 8일에 방송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2018년 01월08일 21시54분에 작성된 기사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대담자로 나온 우상호 의원이 사진의 자막을 보고 우현 배우 외 또 한명의 인물은 배우 안내상이 아니라 당시 교육대학 학생회장이었다고 정정해 준 사진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잘못된 정보는 계속 돌아다니며 댓글을 양산했다. 다행히, 1월11일 ‘썰전’ 방송 이후 안내상 씨는 당시 집회를 주도하던 총학생회 집행부가 아니어서 사진에 없다는 내용을 여러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하기는 했지만, 이때조차도 (아마 방송을 보지 않았을) 기자들이 임의로 추측하거나 오보를 베껴 쓴 기사들이 작성되어 ―일부는 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여전히 남아 있다(물론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는 그것들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예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온 사회가 뜨겁던 지난 2016년 말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가족사가 고은 시인의 연작시집 ‘만인보’에 실려 있다는 기사들에 관한 것이다. 주요 일간지, 인터넷 언론사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언론들이 그의 부친 고규석 씨와 모친 이숙자 씨에 관한, ‘만인보’ 속 두 편의 시를 인용하면서 ‘단상 3353 고규석’, ‘단상 3355 이숙자’라고 소개했다. ‘만인보’를 연구했던 필자로서는 당시 기사들을 보고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기자들이 베껴서 양산한 제목이 한 블로거의 글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 블로거는 ‘만인보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만인보’의 시들에 번호를 붙여 한 편 한 편 소개하면서 본인의 감상 또는 견해를 짧게 덧붙였는데, 기자들은 ‘만인보’에 실린 시의 원제목대로 ‘고규석’(27권 178~181쪽, 창비 2010년), ‘이숙자’(27권 185~186쪽)라고 쓰는 대신 이 블로거가 쓴 제목인 ‘단상 3353 고규석’, ‘단상 3355 이숙자’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거의 모든―확인 당시 수십 개의 기사가 그러했으나 모든 기사를 확인하지는 못했으므로 ‘거의’로 쓴다―언론사의 기자들이 책에서 시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누군가가 베낀 블로그의 글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으니 언론사 이름을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겠고, 2016년 12월20일자 혹은 21일자에 많이 보도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 시 ‘고규석’, ‘이숙자’가 실린 ‘만인보’ 27권 (27·28 통합본)
▲ 시 ‘고규석’, ‘이숙자’가 실린 ‘만인보’ 27권 (27·28 통합본)

“고영태의 가족사는 ‘만인보’ 중 ‘단상 3353-고규석’ 편과 ‘3355번-이숙자’ 편에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고영태씨 가족사가 등장하는 건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편과 ‘3355번-이숙자’ 편이다.”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편과 ‘3355번-이숙자’에선 고영태 씨 부모의 상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같은 고씨 부모와 관련된 내용이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만인보 단상 3355-이숙자’ 편에서 표현된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 부친과 관련한 이런 내용은 그대로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만인보 단상 3355-이숙자’ 편에서 확인된다.” “‘만인보 단상 3353’에는 고규석 씨의 비극적인 죽음 과정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 같은 고씨 부모와 관련된 내용이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만인보 단상 3355-이숙자’ 편에서 표현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 중 고영태의 가족사는 ‘만인보’의 ‘단상 3353-고규석’편과 ‘3355번-이숙자’편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고영태씨 가족사가 등장하는 건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편과 ‘3355번-이숙자’ 편이다.”

▲ 시 ‘고규석’ (‘만인보’ 27권)
▲ 시 ‘고규석’ (‘만인보’ 27권)
▲ 시 ‘이숙자’ (‘만인보’ 27권)
▲ 시 ‘이숙자’ (‘만인보’ 27권)
심지어 이와 같은 제목으로 시의 원문이라며 내용을 인용하는데, 중략된 부분까지 블로거의 글과 같다. 이와 관련된 보다 이른 보도로, 2017년 10월 25일 JTBC의 옛 광주교도소 발굴 뉴스 (입력 2017년 10월25일 19:19·수정 2017년 10월25일 19:36)가 있었는데 이 역시 ‘단상3353-고규석’ ‘만인보, 고은’으로 인용했고, 11월5일자 ‘광주 연합뉴스’(송고시간 2017년 11월05일 09:52)의 기사 또한 “고은 시인의 ‘만인보 단상 3353편’을 통해서도 소개됐다”라고 쓰고 있다. 이 잘못된 제목은 2017년에도 2018년에도 계속 재생산된다. “‘만인보 단상 3353’에는 고영태씨 아버지의 죽음이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Chosun.com 연예·입력: 2017년 01월14일 11:51·수정: 2017년 01월14일 17:24). “만인보는 (중략…) 연작시로, ‘단상3353-고규석’ ‘단상 3355-이숙자’에 나오는 고 씨와 이 씨가 고영태 씨의 부모다.”(DongA.com, 입력 2018년 01월15 03:00·수정 2018년 01월15일 05:24). 전자는 ‘연예’란에 ‘디지털이슈팀 기자’ 명의로 실린 글이고, 후자는 기자의 이름을 딴 연재기사―고로 당연히 바이라인이 있다―에서 고은 시인과의 대담 중 기자가 괄호 안에 쓴 보충설명이지만, 블로거의 제목은 여전히 동일하게 반복된다. 조선일보니 한겨레신문이니 특정 언론사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면이니 연예면이니 분야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다, 모두, 여기저기서 베껴 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뉴스1’이 고영태 씨와 ‘만인보’에 관한 기사(2016년 12월20일 18:18 송고·2016년 12월21일 10:42 최종수정)를 쓰며 ‘만인보’ 29·30권의 사진을 올리자, ‘머니투데이’의 한 기사 (입력: 2016년 12월21일 08:44 조회: 33895―2018년 1월17일 19시경 필자가 마지막으로 확인할 당시의 조회 수이다)는 이 통신사의 사진을 게재한 후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에 “고영태씨의 가족사가 담긴 고은 시인의 장편 서사시 ‘만인보’. /사진=뉴스1”이라고 썼다. 이렇게, ‘만인보’ 27권(27·28통합본 내)에 실린 시 ‘고규석’, ‘이숙자’는 독자들에게 마치 29·730권에 있는 것처럼 비치게 된다. 심지어 ‘국민일보’의 한 기사는 고영태 사진 옆에 ‘만인보’ 26권(창비, 2007)의 사진을 실었는데(26권은 주로 불교 승려들을 다룬 권이다), 사진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 차라리 나았던 셈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설명한 두 예는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는 아니다(어쩌면 제목을 도용당한 블로거가 가장 큰 피해자일 것이다). 따라서 별 문제가 없고, 혹자는 뭐하러 이런 사소한 것에 집착해 구구절절 따지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경우, 특정한 목적을 띠고 고의적으로 작성된 기사가 유포하는 잘못된 정보들이 어떻게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고 댓글들을 양산하는지 생각해보자. 물론 우리의 어떤 독자들은 스스로 ‘팩트 체크’를 할 정도로 깨어 있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위험한 바다 속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세칭 ‘일류대’를 나와 엄청난 ‘스펙’을 쌓고 국정원에 들어갔으나 댓글부대로 전락한 젊은이들과 그들의 댓글조작이 횡행할 수 있었던 사회, 언론사에서 뉴스 어뷰징만 담당하는 ‘기자 아닌 기자’들이 존재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취재’ 없이, ‘사실 확인’ 없이 기사들을 작성하는 기자들, 우리 언론의 ‘하향평준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자 출신인 한 언론학자는 취재수칙들 중의 하나로 “하루에 주요 출입처 3곳을 방문하고, 주요 취재원 3명을 만나고, 주요 뉴스 3건을 작성하는 이른바 ‘3-3-3의 법칙’을 실행하라”고 말한다(김창룡, ‘인터넷 시대, 실전취재보도론’,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78쪽). 인터넷으로 인해 매체 환경이 변화하고 기사가 난무하는 시대에도, 아니 그런 시대일수록 더욱 ‘기자정신’과 언론인의 ‘윤리의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비언론인으로서, 언론인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보다 언론계의 폐해들이 더 눈에 띄는 필자로서는 다음의 한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시국선언’을 하고 ‘자유언론’을 위해 싸우던 여러분의 선배 언론인들의 역사부터 바로 세우자. “지금이야말로 국가는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린 ‘동아사태’에 대한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합당한 조치를 취하실 때입니다”라고, 2017년 12월24일 시작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청와대 청원이 2018년 1월23일까지 며칠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 대부분의 언론들 스스로조차 언급하지 않는 이 청원의 내용을 읽고 성찰하고 전파하자(2018년 1월17일 21시 현재 겨우 680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내린 ‘동아사태’에 대한 결정이 10년 만에 이행되는 역사를 만드는 데서 참된 ‘기자정신’의 회복을 시작하고 한국 언론계의 자정(自淨)을 시작하자.

※ 이 글은 자유언론실천재단(http://www.kopf.kr/)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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