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선 작가의 출연을 정지한 EBS ‘까칠남녀’에 대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은하선 작가가 공영방송 출연자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EBS 입장이 성소수자 혐오 단체들의 ‘프레이밍’에 굴복한 결과라는 것이다.

EBS는 지난 17일 공식 입장을 통해 그간 두 가지 민원이 제기됐으며 담당 CP가 이를 고려해 은 씨 하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은하선씨가 개인 SNS에 ‘까칠남녀 PD 번호’라며 게재한 번호가 실은 문자를 보내면 후원금이 자동 부과되는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였다는 점 △지난 2016년 은씨 개인 SNS에 십자가 모양 자위 도구 사진을 게재된 점 등이 공영방송 EBS 출연자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 EBS '까칠남녀'에 출연한 은하선 작가.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 EBS '까칠남녀'에 출연한 은하선 작가.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녹색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혐오 세력의 표적은 방송 패널 중 유일하게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은하선 작가에게로 옮겨갔고 EBS는 이에 무릎 꿇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은하선 작가가 여성이자 성소수자이며 ‘섹스토이’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약한 고리’로 지목됐을 것”이라며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적극 이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열하고 반인권적”이라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공격과 혐오와 마주한 출연자를 보호해야 할 공영방송 EBS는 합당하고 강경한 대응은커녕 은하선 작가를 제물로 바치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은씨에게 집중된 소수자 혐오 교육이 반교육적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전교조는 이날 “혐오 세력들은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청소년들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사람들로 왜곡·비방하며 공격한다”며 “차별과 혐오의 상당한 부분이 엄마와 학부모의 이름으로 가해졌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방영된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방영된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까칠남녀’ 폐방 등을 요구하는 시위는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성소수자 특집 ‘모르는 형님’ 편 방영 이후 본격화됐다.

학부모·기독교 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국학부모교육단체연합(전학연)은 ‘우리 학부모들은 음란한 동성애 방송을 자녀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EBS 앞으로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전교조는 전학연 등에 대해 “부모의 이름으로 어린이·청소년에게 혐오와 차별 의식을 내면화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양대 반(反) 성폭력·성차별 모임 ‘월담’이 지난 16일 낸 성명에는 40여 개 단체가 연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월담은 “방송법 제 5조 6항에 따르면 방송은 소수자와 약자 집단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 뒤 “공공기관으로서 소수자·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책임이 있는 EBS는 반인권세력 ‘떼쓰기’에 굴복해 약자의 목소리를 탄압·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담은 “이 문제는 결국 은하선을 통해 대변되어 온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고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담은 “우리는 다양한 이들의 담론과 견해, 주장을 방송을 통해 접할 권리가 있고, 그들에겐 자유롭게 자신들의 존재를 주장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며 “그것이 공영방송으로서 EBS가 수행해야 할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은하선씨 하차가 결정된 뒤 ‘까칠남녀’ 출연진인 손아람 작가와 손희정 문화평론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 교수는 ‘녹화 보이콧’을 선언했다. 17일로 예정됐던 마지막 2회분 녹화는 취소됐다. ‘까칠남녀’는 내달 19일 종영을 앞두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