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KBS 사장 해임이 가시화하면서 KBS 기자들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KBS 이사회에 고 사장 해임 제청안이 상정됐고 고 사장의 소명 절차가 마무리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만 남게 된다. ‘고대영 이후’가 성큼 다가왔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박종훈 KBS 기자협회장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KBS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KBS 기자협회를 중심으로 KBS 기자들은 ‘대수술’을 준비 중이다. 정권에 따른 KBS 사장 교체와 그에 기댄 일시적 변화가 아니라 “완전히 거듭나기 위한 시스템 전환”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KBS 기자협회는 크게 ‘뉴스 혁신 TF’, ‘조직 개혁 TF’, ‘과거사 청산 TF’를 꾸리는 등 보도국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박 협회장은 이 가운데서도 과거사 청산 TF를 강조하며 “KBS 뉴스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그 책임자들을 찾고, KBS의 과거 암울했던 시절을 남김없이 정리하면서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보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협회장은 ‘기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협회장은 “기존 간부들은 후배들 교육에 사실상 손을 놨었다”며 “성역 없이 고발할 수 있는 기자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거추장스럽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업 참여) KBS 선배 기자들이 1월부터 자신의 특종 노하우, 단독과 기획 보도 등을 전수할 수 있는 ‘실무 아카데미’를 열어 후배 기자들의 실력 양성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영 해임만으로 KBS가 바로 세워지진 않는다. 여전히 KBS 내부에는 권력에 따라 부화뇌동했던 ‘적폐 인사’들이 남아있다. KBS 기자 출신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지난 15일 “KBS엔 명확한 공범자들만 기백명이다. 고대영 사장 해임이 다가왔는데도 KBS가 또 다른 내전에 들어갈 것임이 자명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며 “시민들이 계속 끊임없이 지켜보고 감시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협회장도 ‘내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협회원(기자) 340여 명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저마다 두려움이 있지만 한편으로 ‘고대영 이후’ 있을 내부 투쟁에 대한 기대도 있다. 공정보도를 위해 내부에서 스스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편성규약에 따라 보도 자율성을 보장하는 ‘보도위원회’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공정보도는 물론 이를 지켜낼 수 있는 기자 역량을 제고하고, 또한 기자를 뒷받침하는 시스템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KBS 기자들은 지난해 9월 총파업에 돌입했던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보다 일주일 앞서 제작 거부에 나섰다. 14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거리에 있었다. 치고 나가는 방송사들을 보며 조급하지 않을까. 박 협회장은 “실무 아카데미 후배 그룹이나 협회원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조급할 필요없다’고 말한다”며 “KBS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청자들도 우리를 기다려주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협회장은 “2012년 파업 때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거리에 나왔다”며 “이번 파업은 파업 중에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TF를 만들며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새로운 KBS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KBS 기자들이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했던 때는 2007년 이전 시기에 집중돼 있다”며 “나 역시 계속 외곽에 있어야 했고 방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KBS는 제대로 해야 할 때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마지막 기회를 주신 만큼 더 이상 ‘기레기’ 소리 듣지 않는 기자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