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을 취재해보니 재협상이나 파기를 주장하셨는데 그 수준의 합의 결과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지난 10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당시 최지원 TV조선 기자의 질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된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재협상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하자 위안부 할머니들이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이 반발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 10일 조선일보는 외교부 발표에 대해 “합의 들쑤셔놓고....위안부 할머니, 일본 불만만 키웠다” 기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합의 잘못됐다면서...우리를 기만하나’ 위안부 할머니들, 지원단체 반응 싸늘”기사에서 “당사자도 모르게 한 합의는 무효가 돼야 한다”는 이옥선 할머니의 입장을 비중 있게 전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시민사회의 반발도 다뤘다.

▲ 지난 1월10일 조선일보 보도.
▲ 지난 1월10일 조선일보 보도.

그러나 2년 전 조선일보와 현재 조선일보의 보도는 상반된다. 당시 조선일보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발’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했다. 

2015년 12월29일, 한일 합의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는 “‘합의 인정 못한다’ ‘만족 못해도 따라야죠’... 엇갈린 할머니들” 기사를 내보냈다. “‘인정할 수 없다’는 반발과 ‘만족은 못하지만 정부 뜻은 따르겠다’는 반응으로 엇갈렸다”는 내용이다. 다수 할머니가 협상에 반발하고 있음에도 일부의 다른 입장을 부각해 입장이 갈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보도다. 같은 날 동아일보가 “위안부 단체- 피해 할머니들 ‘알맹이 빠진 합의.. 수용 못해’”라고 보도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할머니들의 반발이 강력하게 이어지자 2015년 12월30일 조선일보는 1면 톱 기사로 “풀리지 않는 노여움 다독이는 정부”를 내세우며 정부의 ‘설득작업’으로 반발을 덮었다.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에 나섰다”는 보도 내용은 할머니들이 협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 2015년 12월29일 조선일보 보도.
▲ 2015년 12월29일 조선일보 보도.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도 많았다. 12월29일 한일 협상 타결 다음날 조선일보 1면 톱 기사는 “위안부 매듭 남은 건 아베의 진정성”이다. 30일 2면에는 “박 대통령, 아베와 통화... 저녁엔 ‘최선의 노력’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청와대의 입장을 부각했다. 이날 조선은 “정치적 부담 알면서도 합의 택한 박 대통령”을 통해 대통령의 결단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TV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5년 12월29일 TV조선 뉴스쇼판은 조선일보보다 할머니들의 반발을 적극적으로 다루긴 했으나 “관광업계에서는 그만큼 이번 한일협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재일 한인사회도 관계 개선을 고대한다”며 경제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같은 날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패널 4명 모두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편향적인 구성을 보였다. 조용택 조선일보 전 편집국장 대우는 “양국 간에는 정서적으로 너무 과잉대응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합의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은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로막던 위안부문제”라고 표현했다. 2016년 1월3일 TV조선 ‘가는주 오는주’에 출연한 김태현 변호사는 “할머니들을 만족시키는 해법은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조선일보 보도.
▲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조선일보 보도.

현실적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재협상에 나서지 않는 점을 언론이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2년 전 합의 때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발을 뭉개고 정부의 입장을 옹호했던 언론이 이제 와서 할머니의 반발을 부각하고 나서는 건 이중적이다.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할머니들의 반발을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닌지 진정성에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27일 SBS ‘8뉴스’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진행됐다. 김현우 앵커는 “(2015년) 합의 내용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철저히 검증하기보다 이 이상의 합의는 없다는 식의 정부 발표를 전하는 데 그쳤다”면서 “결과적으로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보도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진짜 피해자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협상의 문제와 당시 보도의 문제를 인정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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