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측이 ‘까칠남녀’ 출연자인 은하선 작가에게 하차를 통보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밝힐 수 없는 사유가 있다던 EBS 측이 해명을 내놨지만, 은 작가는 자신을 내몰기 위한 이유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까칠남녀’ 제작진은 지난 13일 밤 은하선 작가에게 찾아와 하차 결정을 알렸다.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은 작가는 “‘위에서 너무 강경하게 하차를 요구하는 바람에 손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 말을 은 작가에게 전하는 제작진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학부모·기독교 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은 ‘까칠남녀’ 폐지를 요구하며 EBS 앞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성소수자 특집’ 방영이 기점이었다.

내달 19일 종영을 앞둔 ‘까칠남녀’는 마지막 2회분 녹화만 남겨두고 있다. 은하선 작가는 지난해 3월 첫 방송 때부터 ‘까칠남녀’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은 작가는 “(다음 녹화분) 방송에 쓰기 위한 인터뷰도 다 했다. 당연히 수요일에 녹화할 걸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 지난해 25일과 지난 1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된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모르는 형님'.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 지난해 25일과 지난 1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된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모르는 형님'.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류재호 EBS ‘까칠남녀’ 부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은하선 작가 하차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첫째 사유는 은 작가가 자신의 SNS에 “까칠남녀 PD님 연락처가 바뀌었다”며 담당 PD 번호가 아닌 퀴어문화축제 문자 후원 번호를 게재한 일이다. 해당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3000원이 후원금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은 작가는 “성소수자 방송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작진이 개인 번호로 항의 받아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며 “네이버에만 검색해봐도 퀴어문화축제 후원 번호라고 뜬다. 애초에 저 번호로 항의 문자를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류재호 부장은 “당시 종영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차) 유보’ 정도의 고민을 했다”며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해 지난 주말 최종 하차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류 부장은 “말하기 곤란한 이유”가 있지만 이를 외부로 알리며 출연자와 각을 세우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류 부장은 “보는 입장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르다. EBS가 풀어가야 할 책무라는 관점에서 판단했다”며 “은하선 작가든 반동성애 연대든 어떤 입장에서도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 작가에게 전달된 두 번째 사유는 지난 2016년 은 작가가 SNS에 올렸던 십자가 모양 딜도(자위 기구) 사진이다. “누군가 이 사진을 언론에 풀겠다고 연락해왔고, 은 작가가 해당 일로 타격을 받기보다 하차가 낫지 않겠냐는 것을 부장님 입장으로 전해들었다”(은 작가)는 것이다.

은 작가는 “반동성애 시위가 없었다면 이런 문제 제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진에 대한 항의 문자도 ‘호모포비아’가 아니었다면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차 결정을 내릴 때)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지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 작가는 본인의 하차가 향후 성소수자 담론 등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은 작가는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동성애 방송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야기한 것들이 먹혀 들어갔다”고 말했다.

은 작가는 “(반대 단체들이) 처음에 LGBT 방송을 교육방송에서 내보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제작진과 패널을 공격하다 저에 대한 공격으로 화살을 돌렸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5월 ‘나 혼자 한다’ 편에서 나온 발언을 왜곡하면서 양성애자를 문란한 사람으로 ‘프레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까칠남녀’ 폐지에 대한 전학연 주장은 미묘하게 변화했다. 지난달 27일 성명 요지는 ‘까칠남녀’는 “‘젠더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조장”하고 “LGBT 옹호 일색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15일 국회 기자회견에서는 “성인용품 판매상을 고정 패널로 출연시켜 음담패설을 노골적으로 방송하고 있다”며 “(동성애자들의)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인권이 될 수 없다”는 류의 주장을 펼쳤다. 이날 기자회견은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협조로 이뤄졌다.

▲ EBS '까칠남녀'에 출연한 은하선 작가.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 EBS '까칠남녀'에 출연한 은하선 작가. 사진=까칠남녀 갈무리
은 작가는 “나는 ‘(자위를) 거의 매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후 ‘오이로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등 잘못된 자위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은하선은 참외를 넣어서 한다더라. 남자랑도 하고 여자랑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방송에 나올 수 있냐’는 식으로 프레임이 잡혔다”고 말했다.

‘까칠남녀’ 패널인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자신의 SNS에서 “프로그램 내용을 공격하는 것이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공격 타깃을 은하선 개인으로 잡아 ‘개인의 자질’을 운운한다”며 “겁을 주고 입을 막고 존재를 지워서 실존을 위협해 본보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하선 작가는 “그동안 없었던 방송이라는 점에서 ‘까칠남녀’가 자랑스러웠다”며 “방송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 방송이 ‘음란 방송’으로 남아버리게 됐다. 성에 대한 편견을 키울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은하선 작가 하차를 결정한 EBS를 비판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까칠남녀_은하선_하차반대’, ‘#은하선작가를_지지합니다’ 등의 해시태그들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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