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예전같지 않다.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UAE 방문을 두고 조선일보 등이 대북 접촉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원전수주 차질설, 전 정권 리베이트 의혹설을 보도했을 때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청와대는 과거 정부에서 UAE와의 관계가 소원해져 파트너십 강화 차원에서 임종석 실장이 UAE를 방문했고, 언론이 제기한 의혹들은 사실과 다르며 국익 차원에서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리고 임 실장이 지난해 12월 11일 UAE를 방문하고 한달이 지난 현재 각종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 임종석 비서실장의 왕세제 접견시 배석했던 인물로 칼둔 청장을 지목해 최초 공개했던 지난해 12월 18일자 조선일보 보도 내용.
▲ 임종석 비서실장의 왕세제 접견시 배석했던 인물로 칼둔 청장을 지목해 최초 공개했던 지난해 12월 18일자 조선일보 보도 내용.
김태영 전 국방장관이 중앙일보와 진행한 인터뷰(9일자)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왜 UAE를 방문했는지 각종 의혹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 때 원전수주 대가로 군사지원양해각서를 체결한 게 문제가 됐고, 문재인 정부가 수습에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 김태영 전 국방장관 입을 통해 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김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지난 2009년 9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UAE를 세차례 다녀오면서 비밀 군사협정을 맺은 경위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은 “그땐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서 군사협정 내용 중 UAE 유사시 한국군이 자동 개입한다는 조항이 있음을 시인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은 “실제론 국회 비준이 없으면 군사개입을 할 수 없다”고 말해 사실상 군사협정이라는 ‘꼼수’를 통해 이 같은 조항을 삽입했다는 걸 인정했다.

김 전 장관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프랑스와 경쟁 상태였던 UAE 원전 수주를 위해 UAE 측이 제기한 ‘군사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로 했다.

김 전 장관은 군사적 어려움에 대해 “한국군이 UAE에 와 주는 거였다”면서 “우리가 계산했을 때 서로 국익에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협약을 체결했다. UAE는 오랜 기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다. 위험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고 만약 발생해도 북한과의 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군 자동 개입 조항은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지고 군사협정에 조항을 반영했고, 전쟁과 같은 상황이 UAE에 발생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국회의 비준을 놓고 많이 고민했다. 제일 큰 문제는 국회에 가져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동안 공들인 게 다 무너지는 거다. 그래서 내가 책임을 지고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 실제 문제가 일어나면 그때 국회 비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군사자동개입 조항이 갖고 있는 파급력을 에둘러 시인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군사 지원 및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은 한국 정부와 다른 정부 사이 맺어진 내용이 없는데 UAE와 체결한 군사협정에만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당시 협정 내용이 공개됐다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에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이 12월10일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에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이 12월10일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임종석 실장이 UAE를 방문한 것과 관련,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군사협정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수습을 한 것이라 판단하면서도 “적폐청산한다며 과거 문서를 검토하다가 비공개 군사협약을 오해한 거 같다. 꼼꼼히 따져봤다면 안 해도 될 행동을 UAE에서 한 것 같다”고 현재 정부 탓으로 돌렸다.

이명박 정부에서 체결한 군사협정 내용이 문제가 돼 문재인 정부가 수습하기 위해 임종석 실장을 UAE로 급파했다고 최초 주장을 한 김종대 의원은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을 놓고 사실상 UAE 의혹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자동 개입 조항은 없다. 보통 이런 정도의 국군파병이나 이런 상호방위협정을 맺을 때 이건 헌법에서 중대한 안전보장에 영향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조약으로 체결해 국회의 비준을 받으라고 돼 있다. 그런데 국회비준을 피하기 위해 비밀양해각서로 이걸 체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한 군사협정 체결 당시 외교부 관계자 증언도 들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협정문을 국문으로 번역한 외교부 관계자가) ‘국방부 걔들은 미쳤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정부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양해각서 내용이기 때문에 조항을 수정하자고 UAE에 입장을 전달했고 UAE가 원전 수주 당시하고 말이 다르다며 국교 단절을 통보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나아가 UAE 측이 석유산업을 하고 있는 우리 측 대기업 지원을 끊어버리겠다고 하자 문재인 정부는 국내 기업 피해가 크다고 판단,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8일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비공개 만남을 가진 것도 이와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의 UAE 방문 목적에 대해 속시원하게 밝히지 못한 이유도 군사협정과 관련한 UAE 측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 한달 동안 임 실장의 UAE 방문에 대한 각종 의혹은 낭설에 불과하며 이전 정부에서 문제가 돼 밝히기 어려운 군사협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수습 차원 성격의 방문이 의혹의 실체라는 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는 칼둔 청장이 9일 임종석 비서실장을 면담한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할 예정이라고 밝혀, 면담 및 접견 결과가 나오면 임 실장의 UAE 방문 의혹을 매듭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앙일보의 김태영 전 장관 인터뷰 내용에 대해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양국 관계를 한달 전으로 돌아보면 지지난 정부 돈독했던 양국 우호관계가 지난 정부 중후반 악화됐고, 복원될 필요성이 있어서 UAE를 방문한 것”이라며 “방문 결과 양국 파트너십을 복원하는데 단초가 됐다고 자평한다. 우호 증진이 다시 어떻게 강화되는지는 공식적 외교 일정으로 알려드리겠다. 오늘 (면담 및 접견 결과)결과물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UAE와 관련된 수만가지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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