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기하씨 과로사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대한항공 자회사 ‘(주)한국공항’의 산업재해 발생율이 평균 재해율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직원들이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자주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 차원의 산재 은폐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이정미 의원실(정의당)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한국공항 산재 발생 내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11월까지 약 5년 간 산재 보상을 받은 직원 수는 24명이다. 2013년 4명, 2014년 7명, 2015년 5명, 2016년 2명, 2017명 6명 등의 분포를 보인다.

연 평균 4.8명이 산재 승인을 받은 것으로, 현장 직원 수가 2750명(2016년 12월 기준·관리직 제외)인 점을 고려하면 산재 발생율은 약 0.17%로 산출된다. 안전보건공단이 산출한 2016년 재해율 0.49%의 3분의1 수준이다.

▲ 한국공항 푸드카.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기내식 카트 교체 업무 등 지상조업을 맡고 있다.
▲ 한국공항 푸드카.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기내식 카트 교체 업무 등 지상조업을 맡고 있다.

하지만 다수 현장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 해 산재사고 발생은 4.8건을 훨씬 웃돈다. 그럼에도 낮은 재해율을 보이는 이유는 사내에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관행이 형성돼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한국공항 항공급유팀에서 13년 간 일한 직원 A씨는 “10년 전에 사고로 어깨 인대를 다친 적이 있는데 팀장이 ‘산재 신청 하지 마라. 알아서 다 해줄게’ 이런 식으로 말했다”며 “산재보험 신청하지 않고 개인 연차를 써서 쉬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근무한 또 다른 급유팀 직원 B씨는 “오래 서 있는 업무인데다 무거운 장비를 갑자기 들어올릴 때가 있어 하지정맥류, 허리디스크 손상 등을 자주 입는다”면서 “한 동료가 허리를 삐끗해 병원을 가려고 하니 관리자가 ‘회사에서 다쳤다 하지 말고 의료보험으로 해라’고 말했다. ‘당연히 산재 생각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3일에 원인 미상의 심정지로 사망한 고 이기하씨 또한 같은 해 이미 두 차례 산재를 입었으나 공상처리로 끝냈다. 이씨는 2017년 10월29일 항공기 수하물 하역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 때문에 컨테이너 철제 문에 머리를 부딪혀 두피가 15cm 가량 찢어졌다.

그해 2월엔 왼쪽 무릎 연골이 파열돼 3주 가량 출근을 하지 못했다. 이씨는 과거 작업 중 오른쪽 무릎에 쇠기둥이 떨어져 무릎 연골이 심하게 파열된 적이 있다. 이씨의 아내 박미정(가명)씨는 “과거 다친 다리의 반대 쪽 연골에 무리가 왔다. 근래 인력이 감축되면서 일이 힘들어지니 무리가 가중된 것 같다”며 “산재 신청하지 않고 남은 연차를 써서 쉬었다”고 말했다.

산재 신청에 소극적인 이유와 관련해 조성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산재 신청을 하게 되면 일단 승진에서 누락된다든가, 고가를 잘 못받는다든가 하는 식이고 회사에서도 산재 신청 말고 공상처리를 하게 한다”며 “한국공항 조합원들 중 손가락 살점이 잘려나가 손톱이 남들보다 짧은 사람도 있고 팔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고 말했다.

사내 포상제도 중 하나인 ‘안전장려금’도 산재 신청을 막는 부수 효과를 내고 있다. 안전장려금은 안전 관련 벌점 200점을 넘지 않으면 기본급 50% 수준의 포상금이 지급되는 제도다. 산재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벌점이 누적돼 포상금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 산재 신청에 소극적인 분위기를 강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공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그런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어서 파악 중인데 확인된 바 없다”며 “직원이 업무 중에 다쳤으면 사고 보고서 작성하고 산재 신청이 들어온 것들에 대해선 (필요 자료를) 다 넘겨드리고 있다. 은폐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공항 램프여객팀 소속의 17년차 직원 이기하씨는 2017년 12월13일 오전 7시50분 경 출근 등록을 한 지 10분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하대학교 응급실로 후송되던 중 사망했다. 한국공항 과로사 논란은 이씨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거나 주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를 한 날이 잦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및 대한항공과 계약한 외국항공사들의 지상조업을 맡는 대한한공 자회사다. 지상조업은 수하물 탑재 및 하역, 항공화물 조업, 항공기 급유·정비 등의 서비스를 말한다. 대한항공은 한국공항 지분의 59.54%를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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