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포괄적 엠바고(보도유예) 적용과 관련해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엠바고는 안보나 경호 등을 이유로 언론 보도 주체와 협의해 보도 내용을 일정시간 유예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순방일정, 사절단 명단, 대통령 외부행사 등에 대해 포괄적 엠바고를 설정하고 엠바고가 풀리는 시간을 특정해 언론 보도 시점을 공지해왔다. 언론 보도를 통해 미리 알려질 경우 대통령의 동선이 파악되고 경호상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정상간 회담 의제 등도 엠바고 적용 대상이다. 미리 공표되면 국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하지만 포괄적 엠바고라는 이름으로 언론 보도를 막으면서 국민알권리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는 상존하고 있다. SNS를 통해 엠바고를 적용한 정보가 확산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언론의 관심사항이 높은 의제를 청와대가 포괄적 엠바고로 설정해 보도에 제한을 두면서 크고 작은 마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청와대는 엠바고 파기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이에 청와대 춘추관과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협의해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

대통령의 외국방문과 청와대 경내 밖에서 이뤄지는 외부행사 내용은 포괄적 엠바고가 적용된다. 방문 일정과 정상회담 의제, 장소(방문도시), 방문의 격, 동행기업인(경제인사 사절단)을 포함한 민간인 인사 명단, 영부인 일정, 숙소, 이색행사 등은 청와대의 별도 브리핑을 통한 공지가 있기 전에 사전 보도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 간사단은 이에 대해 “지나치게 취재의 자유를 제약하고 실효적이지도 못하다는 지적에 따라 필요 최소한도로 엠바고를 적용하는 쪽으로 개선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예를 들어 A매체는 지난해 12월 11일 대통령 방중을 수행한 국내 경제사절단 명단(기업 총수 명단)을 보도한 바 있다. 청와대는 국내 경제사절단도 대통령 수행단에 포함되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포괄적 엠바고로 설정했지만 A매체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닌 경제부 소속 기자가 보도한 것이다. 결국 A매체는 출입기자 간사단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기자실 출입정지 3일 징계를 받았다.

출입기자 간사단은 출입기자 운영규정에 따라 포괄적 엠바고를 파기한 것으로 보고 징계를 내렸지만 이 같은 포괄적 엠바고 규정이 부당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결국 기자단은 “정상회담 의제(공동성명 등 회담 결과물 포함)와 방문의 격, 경제사절단을 포함한 민간 수행단 명단, 이색행사 등은 각사의 취재역량과 판단에 따라 보도”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찾고 있다.

▲ 한미 정상회담 언론 공동 발표. 사진=청와대.
▲ 한미 정상회담 언론 공동 발표. 사진=청와대.

지난해 미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에도 포괄적 엠바고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산공군 기지를 통해 한국에 도착하는 모습이 방송 영상을 통해 나갔지만 외국 정상의 모든 일정이 포괄적 엠바고에 묶여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사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 기자는 “트럼프 일정이 청와대 엠바고는 아니지 않느냐”며 불만을 제기했지만 춘추관은 “트럼프 대통령 비공개 일정도 경호상 엠바고”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시 DMZ를 방문하려고 했던 것을 단독 보도했던 B매체도 논란이 됐다. B매체 보도가 나오고 청와대와 출입기자 간사단은 포괄적 엠바고 위반 사항이라고 공지했지만 다수의 언론들이 ‘DMZ를 방문할 듯’이라는 문구를 통해 사실상 방문을 기정사실화했다. 포괄적 엠바고 설정이 무색해지는 상황이 발생해버린 셈이다. 청와대는 외국 정상의 방한 일정도 대통령이 함께 동행하는 경우가 있고 경호상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포괄적 엠바고 설정은 정당하다는 뜻을 고수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대통령의 해외 순방시 포괄적 엠바고로 설정한 내용을 외신이 보도해버리는 경우도 많아 외신 보도 내용을 쫓아가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청와대에서 포괄적 엠바고를 걸었지만 타부서의 기자들이 자체 취재해 보도를 해버린 경우 쌍방 신뢰가 무너지는 일도 발생한다. 언론사는 타부서의 취재 내용을 알지 못했고, 타부서의 경우 청와대의 포괄적 엠바고 준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타부서에 정보를 건네주고 모른 척하며 보도해버린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일례로 지난해 대통령 국빈 방문 중 송혜교씨가 국빈만찬에 참석한다는 내용은 포괄적 엠바고가 적용돼 국빈 만찬 이후 보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연예전문 매체가 자체 취재를 통해 송혜교씨가 국빈만찬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엠바고 유지가 어려워 송혜교씨의 국빈만찬 참석은 엠바고를 푼다”고 공지했다.

▲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만찬에 초대된 송혜교씨.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만찬에 초대된 송혜교씨. 사진=청와대.

엠바고 규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우스운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포항여고를 방문한 일정은 큰 관심을 받았지만 언론은 실시간 보도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외부 행사이기 때문에 포괄적 엠바고 규정에 따라 포항여고 방문 언론 보도는 행사가 종료되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포항여고 방문 사진이 SNS에 실시간 올라오면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넋 놓고 앉아서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대통령 외부 행사 엠바고 규정을 보면 사진기사의 경우 ‘행사 종료 후’ 보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펜 기사와 방송영상은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구성한 풀 기자가 행사 내용을 정리해 공식 공지할 때 보도가 가능하다. 이미 SNS에 사진이나 사진기사로 대통령 일정이 공개됐지만 그 일정을 보도하는 기사는 한참 후에 올라오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인터넷 속보환경을 감안할 때 사진기사가 뜬 지 한 두시간 뒤에 펜 기사가 뜨는 것은 보도의 통합성 및 적시성 측면에서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들이 많다”며 “이에 대해 사진기자들은 행사종료 즉시 사진기사를 발행하는 것은 기존 관례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적절한 수준에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사진 기사가 올라온 시점부터 바로 대통령 일정을 설명하는 기사를 보도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

청와대에서 포괄적 엠바고를 적용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기자들이 착오를 일으킨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에 참석하는 일정도 외부 행사이기 때문에 포괄적 엠바고가 적용됐다.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기 전까지 행사 일정 보도는 금지됐다. 하지만 한 언론사 기자는 행사 당일 오후 2시 대통령 참석 내용을 보도해도 된다고 생각해 문재인 대통령이 시작하지도 않았던 출범식 인사말을 기사화해 보도했다.

엠바고를 파기한 언론사에 대한 징계를 둘러싸고 청와대 출입기자단 내에서 갈등도 발생한다.청와대는 출입기자 간사단과 협의해 엠바고를 설정하고 이를 파기한 매체는 간사단이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고 내용을 결정해 징계를 내리고 있다.

최근 통신사 B매체는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맞이 산행을 하다가 손학규 전 대표와 만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은 청와대 요청에 따라 당시 대통령 산행 과정에서 있었던 손 전 대표와의 만남을 보도하지 않기로 했지만 B매체가 보도해버린 것이다. 이에 청와대 사진기자단은 “해당 기자가 사진기자단에 가입돼 있지 않지만 등록된 기자로서 해당 대통령 일정에 대한 풀 취재 시스템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임의로 사진을 발행”했다며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자 B매체는 대통령 산행이 종료된 상태에서 보도했기 때문에 엠바고 파기라는 사진기자단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B매체가 사진기자단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엠바고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B매체는 사진기자가 산행을 하다 문 대통령이 손 전 대표와 조우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보도했다고 해명했다. B매체는 “엠바고 규정에 대한 소통과 일부 불합리한 점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 새해맞이 산행 모습.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새해맞이 산행 모습. 사진=청와대.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청와대와 협의해 엠바고 문제에 대해 개선점을 찾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맞는 엠바고 적용이 필요하고, 국민알권리를 위해 엠바고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출입기자들은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도 과거 관행처럼 엠바고를 적용했던 것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엠바고 적용과 관련해서도 국민 소통의 폭을 넓히려는 방향으로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과거 정부에서도 엠바고 적용 및 파기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엠바고를 남발해 관행처럼 자리를 잡았고 이에 저항하는 일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코리아타임스 김연세 기자는 한승수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순방 기간 중 CEO 간담회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사실을 정부 공식 발표보다 먼저 알렸고 이동관 대변인이 대통령의 쇠고기 발언을 빼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질문을 통해 폭로했다. 그러자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비보도 협조 요청 내용인데 김 기자가 이를 공개했다며 출입정지 1개월 징계를 내려 논란이 제기됐다.

정권이 엠바고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언론 통제를 하자 김 기자가 국민알권리를 우선 순위로 놓고 사실을 폭로한 것이지만, 동료 기자들이 엠바고 규정을 들어 징계를 내린 것이어서 논란이 커졌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선 웃기면서도 슬픈 엠바고 파기 헤프닝이 있었다. 2013년 여름 박근혜 청와대는 ‘대통령이 경남 거제의 저도로 휴가를 떠났다’는 내용은 대통령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절대 보도해선 안된다고 공지했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 휴가지를 공개해 출입정지 1개월 징계를 당했다고 으름장까지 놨다. 하지만 정작 휴가지를 공개한 건 박근혜 스스로였다. 대통령 페이스북에 저도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박근혜 사진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번 엠바고 적용 개선 작업에 기자들은 환영한다면서도 개선점을 적극 주문하고 있다.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기자뉴스> 이준희 기자는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가능하면 엠바고는 최소화돼야 한다”며 “특히 청와대 경내 행사에 무리하게 엠바고를 적용하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 외부 행사일 경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행사의 개요 정도에 대한 사전 보도의 폭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입기자단 간사인 노효동 연합뉴스 기자는 “경호상 엠바고 적용 문제를 제외하고는 청와대와 특별히 이견이 없다. 기자단에서 자율적으로 개선점을 정리하면 거기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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