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집권 기간 동안 국정원 자금 36억5천만원을 뇌물로 수수했다며 박씨를 또다시 재판에 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관리 개입 및 수수 정황을 확인한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최씨를 공범으로 기소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국정원 자금 청와대 상납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4일 박씨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과 공모해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장 3명으로부터 국정원 자금 35억 원을 수수했다며 박씨 및 비서관 3인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상 뇌물 및 국고 손실 혐의로 기소했다. 뇌물을 공여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같은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재임기간인 2013년 5월부터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6년 9월까지 정기적으로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았다. 2016년 7월까지 상납받은 33억 원 가량은 모두 이재만 전 비서관의 별도 금고에 보관됐다. 이 비서관은 이를 박씨의 지시에 따라 사용했다.
남 전 국정원장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매월 현금 5천만원 씩 총 6억 원을 안봉근 전 비서관을 통해 박씨에게 상납했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는 이병기 전 원장이 매월 1억 원 씩 합계 8억 원을 박씨에게 전달했다. 박씨는 이병호 전 원장에게 ‘국정원 자금을 계속 지원해달라’고 직접 요구해 2015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매달 1~2억 원 씩 합계 19억 원 상당의 자금을 수수했다.
박씨는 이어 한 달여 뒤인 2016년 9월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이 전 원장으로부터 2억 원을 추가 수수했다. 정 전 비서관은 2억 원을 직접 대통령 관저 내실에 전달했고 해당 자금은 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박씨가 직접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6년 6~8월 동안 이병호 전 원장으로부터 받은 국정원 자금 1억5천만 원에도 특가법 상 뇌물 및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박씨는 이병호 전 원장에게 ‘비서실장에게 매월 5천만원 정도를 지원해달라’고 직접 요구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용처 : 차명폰·기치료, 삼성동 사저·의상실 관리, ‘문고리’ 관리
구체적인 용처가 밝혀진 액수는 13억4100만 원이다. 9억 9700만 원 상당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최측근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관리비로, 나머지 3억 6500만 원 가량은 삼성동 사저 관리비, 기치료·운동치료 대금 등 박씨의 활동비로 사용됐다.
비서관 3인은 이 전 비서관이 관리하는 상납금 33억 원에서 매달 300~800만 원 규모로 총 4억 8600만 원을 활동비로 받았다. 활동비는 처음엔 300만 원씩 지급되다 500만원으로 증액됐고 대통령 임기를 1년 남긴 시점엔 800만 원까지 증가했다.
이밖에도 이들은 같은 금고에서 휴가비 1000만원, 명절비 2000만원 등의 명목으로 총 4억9000만 원 상당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검찰은 박씨의 지시로 이같은 자금 지원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 전 비서관은 박씨의 지시에 따라 매월 1000만 원을 정호성 및 안봉근 전 비서관을 통해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이 전 행정관은 이 현금으로 박씨가 최씨 및 비서관 3인, 윤전추 전 행정관 등과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51대 대금 1300만5800원을 지불했다. 1249만2000원은 사저 유류대, 보일러 기름 등 사저 관리비로 지급됐다.
검찰은 이밖에도 이 전 행정관이 △기치료·운동치료 대금 △각종 주사비용 △삼성동 사저 전기세 및 에어컨 설치비 △사저 관리인 급여 등을 전달받은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밝혔다.
최씨 지시로 운영된 ‘대통령 전용 의상실’에도 국정원 상납자금이 일부 흘러갔다. 2013년 5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운영된 대통령 의상실은 매월 1000~20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지급받았다. 검찰은 국정원 상납금 중 일부가 이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최씨가 독일로 도피한 2016년 9월 이후엔 윤전추 전 행정관이 박씨로부터 의상실 비용을 현금으로 직접 전달받아 의상실에 운영비를 지급했다. 검찰이 파악한 대통령 의상실 운영비용은 총 6억9100만원이다.
‘박근혜, 돈 받을 때 최순실과 함께 관저에 있었다’
검찰은 국정원 상납금이 최순실씨에게 흘러간 정황도 포착했다. 이영선 전 행정관은 박씨 지시로, 테이프로 봉인된 쇼핑백을 최씨 운전기사에게 수차례 전달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박씨 지시에 따라 현금이 든 쇼핑백을 관저에서 전달할 때 박씨가 최씨와 함께 있는 것을 다수 목격한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다.
해당 쇼핑백은 이재만 전 비서관이 박씨가 지정한 액수만큼 넣어 테이프로 봉인한 뒤 관저에서 피고인에게 직접 전달한 현금 봉투로 알려졌다. 매달 2000~1억2000만 원 상당이 전달됐다.
검찰은 최씨가 ‘문고리 3인방’에게 명절·휴가비 명목으로 지급된 3억 7,000만 원을 관리한 단서도 잡았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최씨 자필 메모지로, 2013~2015년 동안 비서관 3인에게 지급된 활동비 내역이 수기로 기재돼있다.
‘BH’로 시작되는 분홍색 바탕 메모지엔 “J 13. 30,─ / 14. 50,─ / 15. 50,─ / 합계 130,─” “Lee 〃(윗줄의 J와 같다는 의미로 해석됨)” “An 13. 30,─ / 14. 50,─ / 15. 30,─ / 합계 110,─” “ 남은 금액 120,─ Keep”이 차례로 적혀 있다. J는 정호성, Lee는 이재만, An은 안봉근 전 비서관을 지칭하고 ‘13. 30,─’ 등의 메모는 2013년에 3천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비서관 3인 모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메모지에 적힌 금액이 자신들이 국정원 상납금에서 받은 명절비, 휴가비 등을 ‘정확히’ 기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최씨가 박씨를 도와 국정원 상납금 관리와 사용에 개입한 사실이 일부 확인됐으나 두 사람이 조사를 거부해 관련 사실을 최종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