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집권 기간 동안 국정원 자금 36억5천만원을 뇌물로 수수했다며 박씨를 또다시 재판에 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관리 개입 및 수수 정황을 확인한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최씨를 공범으로 기소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국정원 자금 청와대 상납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4일 박씨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과 공모해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장 3명으로부터 국정원 자금 35억 원을 수수했다며 박씨 및 비서관 3인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상 뇌물 및 국고 손실 혐의로 기소했다. 뇌물을 공여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같은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민중의소리

박씨는 재임기간인 2013년 5월부터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6년 9월까지 정기적으로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았다. 2016년 7월까지 상납받은 33억 원 가량은 모두 이재만 전 비서관의 별도 금고에 보관됐다. 이 비서관은 이를 박씨의 지시에 따라 사용했다.

남 전 국정원장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매월 현금 5천만원 씩 총 6억 원을 안봉근 전 비서관을 통해 박씨에게 상납했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는 이병기 전 원장이 매월 1억 원 씩 합계 8억 원을 박씨에게 전달했다. 박씨는 이병호 전 원장에게 ‘국정원 자금을 계속 지원해달라’고 직접 요구해 2015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매달 1~2억 원 씩 합계 19억 원 상당의 자금을 수수했다.

박씨는 이어 한 달여 뒤인 2016년 9월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이 전 원장으로부터 2억 원을 추가 수수했다. 정 전 비서관은 2억 원을 직접 대통령 관저 내실에 전달했고 해당 자금은 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박씨가 직접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6년 6~8월 동안 이병호 전 원장으로부터 받은 국정원 자금 1억5천만 원에도 특가법 상 뇌물 및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박씨는 이병호 전 원장에게 ‘비서실장에게 매월 5천만원 정도를 지원해달라’고 직접 요구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용처 : 차명폰·기치료, 삼성동 사저·의상실 관리, ‘문고리’ 관리

구체적인 용처가 밝혀진 액수는 13억4100만 원이다. 9억 9700만 원 상당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최측근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관리비로, 나머지 3억 6500만 원 가량은 삼성동 사저 관리비, 기치료·운동치료 대금 등 박씨의 활동비로 사용됐다.

비서관 3인은 이 전 비서관이 관리하는 상납금 33억 원에서 매달 300~800만 원 규모로 총 4억 8600만 원을 활동비로 받았다. 활동비는 처음엔 300만 원씩 지급되다 500만원으로 증액됐고 대통령 임기를 1년 남긴 시점엔 800만 원까지 증가했다.

이밖에도 이들은 같은 금고에서 휴가비 1000만원, 명절비 2000만원 등의 명목으로 총 4억9000만 원 상당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검찰은 박씨의 지시로 이같은 자금 지원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 전 비서관은 박씨의 지시에 따라 매월 1000만 원을 정호성 및 안봉근 전 비서관을 통해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이 전 행정관은 이 현금으로 박씨가 최씨 및 비서관 3인, 윤전추 전 행정관 등과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51대 대금 1300만5800원을 지불했다. 1249만2000원은 사저 유류대, 보일러 기름 등 사저 관리비로 지급됐다.

검찰은 이밖에도 이 전 행정관이 △기치료·운동치료 대금 △각종 주사비용 △삼성동 사저 전기세 및 에어컨 설치비 △사저 관리인 급여 등을 전달받은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밝혔다.

최씨 지시로 운영된 ‘대통령 전용 의상실’에도 국정원 상납자금이 일부 흘러갔다. 2013년 5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운영된 대통령 의상실은 매월 1000~20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지급받았다. 검찰은 국정원 상납금 중 일부가 이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최씨가 독일로 도피한 2016년 9월 이후엔 윤전추 전 행정관이 박씨로부터 의상실 비용을 현금으로 직접 전달받아 의상실에 운영비를 지급했다. 검찰이 파악한 대통령 의상실 운영비용은 총 6억9100만원이다.

‘박근혜, 돈 받을 때 최순실과 함께 관저에 있었다’

검찰은 국정원 상납금이 최순실씨에게 흘러간 정황도 포착했다. 이영선 전 행정관은 박씨 지시로, 테이프로 봉인된 쇼핑백을 최씨 운전기사에게 수차례 전달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박씨 지시에 따라 현금이 든 쇼핑백을 관저에서 전달할 때 박씨가 최씨와 함께 있는 것을 다수 목격한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다.

해당 쇼핑백은 이재만 전 비서관이 박씨가 지정한 액수만큼 넣어 테이프로 봉인한 뒤 관저에서 피고인에게 직접 전달한 현금 봉투로 알려졌다. 매달 2000~1억2000만 원 상당이 전달됐다.

검찰은 최씨가 ‘문고리 3인방’에게 명절·휴가비 명목으로 지급된 3억 7,000만 원을 관리한 단서도 잡았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최씨 자필 메모지로, 2013~2015년 동안 비서관 3인에게 지급된 활동비 내역이 수기로 기재돼있다.

‘BH’로 시작되는 분홍색 바탕 메모지엔 “J 13. 30,─ / 14. 50,─ / 15. 50,─ / 합계 130,─” “Lee 〃(윗줄의 J와 같다는 의미로 해석됨)” “An 13. 30,─ / 14. 50,─ / 15. 30,─ / 합계 110,─” “ 남은 금액 120,─ Keep”이 차례로 적혀 있다. J는 정호성, Lee는 이재만, An은 안봉근 전 비서관을 지칭하고 ‘13. 30,─’ 등의 메모는 2013년에 3천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비서관 3인 모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메모지에 적힌 금액이 자신들이 국정원 상납금에서 받은 명절비, 휴가비 등을 ‘정확히’ 기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최씨가 박씨를 도와 국정원 상납금 관리와 사용에 개입한 사실이 일부 확인됐으나 두 사람이 조사를 거부해 관련 사실을 최종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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