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놀라운 발언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건 스스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발언이 정치권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 장악과 직결돼 있다면 분명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홍보본부장을 맡은 박성중 의원은 “여당시절 (방송국) 위의 두뇌는 저희들이 어느 정도 지배를 했지만, 밑에 80~90% 기자, PD, 작가들은 저쪽 편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의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넘어갔다”고 말했다.

▲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
▲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
언론에 보도된 박 의원 발언의 핵심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방송사 수뇌부는 지배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영방송사 국장, 본부장, 사장단 등 수뇌부에 해당하는 주요 간부들을 장악했다는 고백을 스스로 한 셈이다.

그동안 KBS·MBC의 ‘낙하산 사장’, ‘쪼인트 사장’ 등 정파적 인사들은 인사권을 휘둘러 주요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해고하거나 비제작부서로 배치하는 등 방송계 전반을 황폐화시켰다. 그러면서 이런 조치들이 방송사 사장의 독단적 판단이었으며 외부 개입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박성중 의원의 발언은 이런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박 의원 발언은 적어도 세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 정치권력의 방송장악은 실제로 있었다.

방송장악에 따른 기자, PD, 아나운서 등 피해자 사례는 많다. 그만큼 피해자들의 증언과 경험담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방송장악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해자들은 부인으로 일관했다. “방송장악은 있어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파면 당한 박근혜씨가 공개적으로 말했는데 이와 정반대로 ‘방송사 수뇌부를 지배했다’는 고백은 처음 나온 것이다. 피해자의 증언과 가해자의 고백이 맞아떨어지면서 ‘정치권력의 방송장악’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 지난 2017년 7월17일 재판에 출석하는 박근혜씨. ⓒ 연합뉴스
▲ 지난 2017년 7월17일 재판에 출석하는 박근혜씨. ⓒ 연합뉴스
둘째, 권력의 방송장악이 초법적으로 이뤄진만큼 수사가 필요하다.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방송장악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방송장악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그 구체적 방식은 어떤 식이었는지는 수사대상이다. 권력의 방송장악은 진실을 가리고 정의를 훼손하기 때문에 방송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송사 내부적으로도 방송법이 규정한 방송제작, 편성의 독립을 지켜야 할 사장이 어떻게 불법적으로 개입해서 공영방송을 몰락시켰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적어도 방송장악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공영방송 사장은 어떤 내용을 누구로부터 전달받아 이를 실행에 옮겼는지 국민은 알 필요가 있다. 미래의 한국 정치와 미래의 방송을 위해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분명히 수사해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권언유착의 악습을 끊을 수 있는 호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방송앵커, 언론인 등이 무원칙하게 방송윤리 강령을 어겨가며 권력의 핵심으로 이동했다. 물론 이전 정부에도 언론인들이 정치권이나 청와대로 진출하는 일은 있었다. 이명박 정부시절 SBS는 청와대 홍보수석 배출 전문기관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이제 언론인들의 무원칙한 정치권 이동에 대해 언론계 스스로 기준과 원칙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정치권력은 여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방송사를 선거 승리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내편 언론사 간부들’을 관리해왔다. 앞으로도 정치권력은 자신에게 충성하거나 우호적인 현역언론인을 필요에 따라 청와대 수석으로, 국회의원으로, 장차관으로도 데려가려 할 것이다. 그 악습을 단절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방송윤리강령이 필요하다. 방송사는 정치권에 핑계를 대기 전에 스스로 권언유착을 차단하는 내부의 기강확립과 제도적 보완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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