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 사형은 폐지된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공동위원장 김원기·김형오·김선욱)의 보고서 초안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세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정부형태(권력구조) 개편이 핵심 쟁점이지만, 조선일보 등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초점은 헌법 전문과 생명권과 참정권, 노동권 등 기본권과 관련한 자문위 제안에 맞춰져 있다. 자문위가 낸 기본권 개정안이 지나치게 좌편향적이라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에 이어 3일에도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한 복수의 지면을 할애, 개헌특위 자문위가 개헌특위에 정식으로 보고조차 안 한 보고서 초안을 입수했다고 보도하며 “한국당이 개헌 논의에 적극 뛰어들어 어이없는 좌파 개헌안을 폐기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 조선일보 3일자 6면 머리기사.
▲ 조선일보 3일자 6면 머리기사.
조선일보는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제출한 개헌안엔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등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에 반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며 “법률 전문가들은 ‘헌재가 현행 법률을 심사했는데 이와 정반대되는 내용을 상위법인 헌법에 담겠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 초안은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국회 개헌특위가 각계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들로 자문위를 구성하고, 지난해 2월2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자문위가 11개월 동안 국민 의견 수렴과 136차례 회의 등을 거쳐 낸 결과물이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개헌특위 자문위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자문위는 “우리가 종합적·통일적 개헌안을 내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으나, 매 사안에 대한 심도 있는 다양한 논의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다양한 분야의 자문위원들의 역량이 담긴 열린 보고서가 되게 함으로써 향후 본격적인 개헌 과정에서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이 폭넓게 수렴될 수 있는 활발한 논의를 가능하게 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결국 자문위 보고서는 개헌특위의 확정된 개정안이 아니라 향후 국회 등 개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다뤄질 내용을 포괄하는 참고 자료라는 의미다. 어차피 헌법이 개정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국회가 개정안을 의결한 후 국민투표에 붙여 국민 과반수 투표와 찬성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마치 자문위 보고서대로 헌법이 개정될 것처럼 한국당이 ‘좌파 개헌안’을 막지 못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물론 국회의 현재 여야 의석 비율로 볼 때 이번 개헌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자문위 개헌안은 사회민주주의식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나라를 바꿔도 되고, 인민민주주의 통일이 돼도 괜찮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특히 문제 삼고 있는 자문위 보고서 내용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헌법 전문을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로 개정하자는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로 가자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지만, 개정안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자문위가 제안한 헌법 전문 개정안에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법치주의에 터 잡은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기본 사명으로 삼아, 인류애와 생명 존중으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고,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사회정의와 자치·분권을 실현하고, 기회균등과 연대의 원리를 사회생활에서 실천하고, 지구생태계와 자연환경의 보호에 힘쓰며…”라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 초안 중 전문 개정안 갈무리.
▲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 초안 중 전문 개정안 갈무리.
아울러 일각에선 현행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 ‘4·19민주이념’ 외에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자문위 개정안에는 5·18 민주화운동은 빠지고 6·10항쟁만 추가됐다.

조선일보가 지적한 사형제 폐지(생명권) 조항에 대해서도 자문위는 “생명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적이고 근원이 되는 가치이고 이미 학설과 판례로 인정돼 왔으므로 이를 명문으로 인정한다”며 “사형 폐지는 생명권 보장과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국제적 인권 수준에 발맞추기 위해 헌법 제정권자의 결단으로 이를 헌법에 명시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사형 제도를 합헌으로 보고 있지만, 헌재의 합헌 결정은 어떤 법률이 헌법의 틀을 벗어나지 않음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합헌 결정과 헌법 개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게 복수 헌법학자들의 설명이다. 조선일보 주장처럼 현행 헌법에 따른 결정에 부합하는 내용만 포함하는 게 개헌의 취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률이 얼마나 헌법을 구현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사실 국회가 해야 할 몫이고, 대체복무제 등의 문제도 입법으로 해결하라는 게 헌재의 입장”이라며 “국회가 사형제 폐지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하지 않으니까 헌법 개정으로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것인데 국민이 결정하고 판단할 문제를 언론이 안 된다고 못 박는 건 주권자의 권력을 부정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기본권과 관련한 내용은) 자문위가 인권과 인류사적 관점에서 제안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고 인권 의식 문제를 충분히 지적할 수 있다”며 “시민사회의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구성된 자문위 의견에 국민의 판단을 봉쇄하고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 의식, 주권자 존중이 결여된 총체적인 헌법적 의식의 결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헌법학자는 “사형제 금지와 대체복무제는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도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가 많고, 헌법보다 입법부 법률로도 충분히 개정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얘기해야 입법자도 움직일 것”이라며 “개헌은 국민 과반수 찬성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해서 쉽지 않다. 현실 가능성보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적에서 넣었다고도 보인다. 한편으론 조선일보가 얘기해 주는 게 다행이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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