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한 명 죽어나가는 걸 볼 참인가.” 지난해 12월13일 원인 미상의 심정지로 숨을 거둔 고 이기하씨(49)는 6개월 여 전 부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장에선 직원을 더 뽑아달라고 아우성인데도 회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토로였다. 이씨의 아내 박미정씨(51·가명)는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남편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내년에 가게를 차릴 테니 4월까지만 다녀보자”고 약속했다.

이씨는 퇴직 준비를 하기 전에 숨을 거뒀다. 13일 오전 출근하자 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사망한 지 20일이 지났지만 시신은 아직 인하대학교병원 영안실에 안치돼있다. 유족은 ‘한국공항’이 유족에게 보여 준 ‘연장근무 35시간 자료’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씨의 출퇴근을 기억하는 유족에게 그 자료는 거짓이었다. 유족은 회사가 책임있는 대책을 세울 때까지 장례를 미뤘다.

건장한 17년차 베테랑 남성 노동자가 돌연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의 동료직원들과 유족은 한 목소리로 ‘과로사’라고 말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유족, 한국공항 노동자, 이씨의 근무기록 등을 종합해 이씨의 노동조건을 재구성해봤다.

▲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는 2017년 12월 22일 한국공항 본사 인근에서 '故 이기하조합원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조 관계자가 집회를 마친 후 이씨에게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는 2017년 12월 22일 한국공항 본사 인근에서 '故 이기하조합원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조 관계자가 집회를 마친 후 이씨에게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2017년 12월14일 새벽 장례식장

“이건 과로사다.” 박씨는 13일 밤 11시가 지나서야 인하대 장례식장에서 동료직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한 한국공항 관리직 직원이 귀가한 시각이었다.

박씨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흡연을 하긴 했지만 음주횟수는 1년에 세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었고 고혈압, 당뇨 등의 지병도 없었다. 키 180cm에 몸무게 76kg,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었다.

이씨는 한국공항 17년차 베테랑 조업장이었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및 대한항공과 계약한 외국항공사들의 지상조업을 맡는 대한한공 자회사다. 지상조업은 수하물 탑재 및 하역, 항공화물 조업, 항공기 급유·정비 등의 서비스를 말한다. 이씨는 이 중에서 수하물 탑재·하역을 맡은 램프여객부의 93조 조업장이었다. 쉽게 말하면 착륙 항공기 수하물을 ‘하차’하고 이륙 항공기엔 수하물을 ‘상차’하는 일을 맡고 있다.

12월13일 “경찰 조사 중 ‘작업 복귀’ 지시 내린 회사”

이씨는 출근 카드를 찍은 지 10여 분 후인 오전 7시50분 경 쓰러졌다. 새벽 6시30분, 집을 나선 지 불과 1시간20분 만의 일이었다. 그는 같은 조 동료와 탈의실에서 작업복을 입으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그는 119구급차에 실려 인하대학교 응급실로 이송 중이던 9시4분 숨을 거뒀다.

사망상태로 병원에 도착했기에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은 ‘미상’이었다. 시신을 검안한 의사는 이씨의 아들 이아무개 군(21)에게 ‘최근에 (이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느냐’ ‘과로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보통 이런 경우는 과로나 스트레스, 날씨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씨의 시신은 ‘무연고자’로 병원에 등록됐다. 홀로 구급차에 태워져 이송됐기 때문이다. 현장관리자가 구급차에 동승했지만 인천공항 내에서 도중 하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의식을 잃은 사람을 이렇게 홀로 태워 보내느냐. 사람 취급도 안하느냐.” 박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오열했다. 한국공항은 당일 경찰서에서 사망경위 조사를 받던 동료 직원에게 ‘인력이 모자라다’며 작업 복귀 지시를 수차례 내렸다.

사망 일주일 전 “하루 14시간 근무… 담배 필 시간 없어”

한국공항은 이씨의 과로사 논란이 보도를 통해 확산되자 지난달 18일 “해당 직원의 주간 평균 연장근무시간은 지난해 9월 9시간, 10월 9시간, 11월 8시간 수준”이었고 “정상근무시간 외 연장근로는 법 허용 범위인 주 12시간을 초과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씨는 사망 일주일 전인 지난달 6일 최소 14시간을 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의 업무표를 보면, 첫 비행기 착륙 시간이 새벽 6시29분, 마지막 비행기 착륙 시간이 저녁 6시45분이다. 램프조업조는 장비를 준비하고 게이트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고려해 출근시간보다 20~30분 일찍 출근한다. 이씨의 마지막 비행기는 대형 기종으로, 물량이 많을 시 하역에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를 고려하면 이씨는 이날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을 가능성이 높다.

▲ 2017년 12월6일, 사망 일주일 전 고 이기하씨의 작업 시간표.
▲ 2017년 12월6일, 사망 일주일 전 고 이기하씨의 작업 시간표.

이날 이씨가 수하물 작업을 처리한 비행기는 대형 5대, 소형 8대로 총 13대. 소형의 경우 상하차 작업에만 20~30분이 걸리고 대형 기종의 경우 50~70분이 소요된다. 작업량은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소형 기종의 경우 1.5톤 규모 화물이 적재될 때가 많다.

“6시29분→7시12분→9시10분→10시17분(이륙)→10시41분→11시42분(이륙)→12시4분→14시9분(이륙)→15시12분→15시52분→17시2분(이륙)→18시3분(이륙)→18시45분.” 지난달 6일 이씨의 작업 시간표다. 착륙 비행기 작업은 최소한 10분 전엔 도착해야 하고 이륙 비행기의 경우 1시간 전엔 도착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계산하면 이날 휴게시간은 8시 및 12시40분 경에 나는 30~40분 식사 시간이 전부다.

수하물 상하차 외 부대 업무도 많다. △항공기 푸쉬백 △장비 설치 △게이트 간 이동 등의 시간을 고려하면, 상하차 작업은 평균 작업 시간보다 15~30분 단축된 시간 내에 완료할 수밖에 없어 노동강도가 세진다. 현장에선 “담배 한 대 필 시간도 없이 비행기 뺑뺑이를 돈다”는 말이 나온다.

근무는 철저히 비행기 이·착륙 시간에 맞춰진다. 밥을 먹다가도 비행기가 예정보다 일찍 들어오면 “식판을 엎고” 나가야 하고 비행기가 늦게 착륙해도 다음 이륙 시각은 늦춰지지 않아 두세배로 빨리 짐을 옮겨야 할 때가 부지기수다. 식사 시간이 확보되는 날은 “운이 좋은 날”로, 그마저도 20~30분 단위로 2~3명이 교대로 먹을 때가 많다. 이들은 외부에서 작업하므로 맨 몸이 눈·비·추위에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한다. 지난해 강추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씨는 3일 뒤인 12월9일에도 장시간 일했다. “8시14분(이륙)→9시51분(이륙)→10시2분→11시37분(이륙)→11시52분→12시53분(이륙)→13시40분→14시53분(이륙)→16시15분(이륙)→16시40분→18시10분(이륙)→19시9분(이륙).” 작업시간표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적어도 오전 7시엔 출근해 오후 8시 경에 퇴근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12~13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시간 없이 외부작업을 한 셈이다. 이날 인천 기온은 -4℃였고 체감 온도는 -7.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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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하물 탑재·하역 작업 모습.
▲ 램프여객부 조업팀의 수하물 탑재·하역 작업 모습.

이씨가 지난해 9~11월 출·퇴근 기록을 보면 간 하루 12시간 넘게 일한 날은 총 25일이다. 그 중 10월25일엔 새벽 5시29분에 출근카드를 찍고 밤 9시3분에 퇴근카드를 찍어 최장 15시간34분 동안 일했다. 박씨는 “어떨 땐 17시간을 하고 온 날도 있었다”면서 “새벽 3시에 나간 사람이 밤 9시가 돼도 안와 전화를 하면 ‘아직 안 끝나서 대기 중이야. 한 대만 더 받고 갈거야’라고 한다. 그런 날은 밤 11~12시에 귀가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난해 9~11월 13주 동안 주당 12시간 넘게 연장 근로를 한 주는 5주다. 이씨는 10월 3째주에 연장근로 14시간44분, 총 근로 54시간44분으로 가장 많이 일했다. 연장 근로는 매주 발생했다.

6개월 전 “이렇게 일하다간 죽을 것 같다”

“이렇게 하다가는 누구 하나 죽을 것 같다” “사장이 어디까지 가려고 하느냐” 1여 년 전 아내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한 이씨는 지난 6개월 전부터 부쩍 불평이 늘었다. 유족과 동료들은 회사의 ‘인력 감축 기조’를 원인으로 꼽는다.

‘7→6→5→4’ 지난 1여 년간 이씨 조업조의 인원 변화다. 민주한국공항노조(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에 따르면 2016년 12월 ‘1조 7인 체제’는 6인 체제로 전환됐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이후 퇴직 등으로 자연 감소하는 인력을 충분히 충원하지 않았고 조업조는 실질적으로 4~5인으로 운영됐다. 6~7인이 분업하던 작업을 4~5인이 더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이씨가 속한 93조는 지난해 8월부터 5인체제로 운영됐다. 한 명이 연차라도 쓰면 4인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12월10일 한 조원이 다리를 다쳐 93조는 4인만 남게 됐다. 조업장은 4인만 일할 시 노동강도가 극도로 심해져 어떻게든 대체인력 1~2명을 자신의 조에 배치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휴무조에게 부탁한다. ‘없는 인력 돌려막기’가 시작된다.

조업장들은 이 경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 부조업장은 “조업장들이 ‘식권 몇 장 줄게’ ‘5~6만 원 얹어 줄게’라고 말하며 힘들게 사람을 구하는 걸 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며 “나중엔 다시 자기 조원을 투입시켜 갚아줘야하니 그걸 조율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업무량은 줄지 않는데 인력이 줄면, 업무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업 때문에 이륙이 5분만 지연돼도 항공사에서 엄청난 항의가 들어오고 조업장은 질책을 받고 경위서를 쓴다. 조업조들은 업무 강도를 견뎌가며 하루 작업을 완수해낼 수밖에 없다.

박씨는 6개월 전부터 집에서 꾸벅꾸벅 조는 이씨를 발견했다. 생전 “한 번 기상하면 졸지도 않고 낮잠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씨는 “쉬는 날 앉으면 졸고 있고… 그땐 ‘요즘은 힘에 부치나봐’ 했지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2의 이기하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2017년 3월 강영식 대표이사가 한국공항 신임 사장으로 취임했다. 박씨는 ‘6개월 전’ 남편이 격무에 시달린 이유로 강 대표이사를 지목했다. 이씨의 다수 동료들 또한 “강 대표이사가 오면서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현장 근로자들은 데스크(작업 배치 부서)나 관리자에게 아우성을 쳤는데도 회사는 전혀 듣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유족과 노조는 “제2의 이기하를 만들어선 안된다”며 한국공항에 업무 환경 개선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의 공식사과 △산재처리 △유족보상 △주 52시간 근무 준수 △적정 인력 배치 준수 및 인력충원 등이 요구조건이다. 민주한국공항노조 조합원들은 전 부서 기준 최소 200명은 확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공항 측은 이에 적정 충원 인력은 80~90명이라고 답했다.

한국공항은 지난달 18일 해명자료를 통해 “공항 업무 특성상 탄력적인 근로시간제를 도입해 운영 중으로 (이씨의 경우) 주 5일 근무 스케줄을 지키고 있으며 연장근로는 주간 12시간을 초과한 바 없다”고 밝혔다. 한국공항은 또한 “1일 근무 종료 후 연속휴게시간 최소 8시간 이상을 보장하고 있다”며 “연속 5일 근무 마지막 날엔 휴무일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후 2시 이전 퇴근을 원칙으로 해 2.5일 이상의 휴무를 보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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