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협상은 뒤치다꺼리 중에서도 난제다. 지난해 12월27일 외교부 산하 태스크포스의 발표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의 전말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 측의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요구를 수용한 듯이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내용을 비롯해 몇몇 민감한 사안을 이면합의 해주었다. 제3국의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거나 ‘성노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등 일본 측 주장이 대부분 관철된 모양새다.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협상의 “중대한 흠결”을 확인했으며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예견된 일이다.
조중동이 애써 외면한 ‘박근혜의 거짓말’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사람들의 거듭되는 거짓말에 상처받았고 이 상처는 분노로 폭발했다. 그런데 위안부 협상마저 속였다니! 어쩌면 시민들은 이면합의의 존재 자체보다 국민을 속이면서 일본과 통한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성에 더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 발표 후 나온 몇몇 신문의 사설들은 박근혜 정권의 국민 기만행위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이면합의 공개’를 문제 삼고 있다.
“비공개 합의 내용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외교 교섭에서 비공개 부분이 있는 경우는 흔하다. … 일본이 먼저 나쁜 선례를 만들었지만 외교 교섭 과정을 뒤늦게 공개하고 심지어 비공개 약속까지 뒤집는 것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지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12월29일 조선일보 사설 ‘한‧일 관계는 이렇게 해도 괜찮나’)
“정작 큰 문제는 경위 조사란 이름으로 외교상 넘어선 안 될 선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비밀에 부쳐야 할 외교문서가 2년 만에 까발려졌다.” (2017년 12월28일 중앙일보 사설 ‘위안부 합의, 협상도 경위 조사도 잘못됐다’)
“(문 대통령의 발표는) 향후 국가 간 약속을 어긴 모든 책임을 한국이 지겠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2017년 12월29일 중앙일보 사설 ‘북핵 앞에서 한·일관계 파국까지 가려 하나’)
“이번 TF 조사에서 비공개로 관리돼야 할 외교문서가 다수 공개된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신뢰를 떨어뜨릴 빌미를 주었다는 점에서 아픈 대목이다.” (2017년 12월28일 동아일보 사설 ‘위안부 합의 이면(裏面) 공개 유감…더 유감인 日 반응’)
거대신문 “이면합의 공개는 잘못” 주장, 일본에 악용될까 걱정
‘외교 관례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옳다. 그러나 외교 관례보다 더 큰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있다.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이면합의도 아니었다.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국민을 속이면서 졸속으로 거래된 위안부 합의에 ‘외교 관례’만을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외교관례에 따라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앞에서는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거듭 국민을 속이면서, 뒤로는 이면합의에 따라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옮겨달라고 시민단체를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
조중동이 “이면합의 공개는 잘못”이라고 정부를 비판하고, 한일관계를 망칠 셈이냐고 다그치지 않아도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선택한’ 안팎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일본 측의 거센 반발도 극복하고 위안부 피해자들과 대다수 국민이 납득할만한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더욱 “일본이 어떻게 나오든 이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조중동이 무슨 사설을 쓰든 이제 큰 걱정이 없다. 더는 시민들이 조중동의 주장을 쫓아다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이면합의 공개를 비판하는 조중동의 목소리가 ‘한국언론의 주장’으로 일본 측에 악용될까 걱정스럽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